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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Feb 13. 2018

개막식의 그림자

메가이벤트와 정치의 함수

호칭의 이기적 편향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무사히 끝났다. 외신의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송승환 총감독에 대해 중언부언 말이 많다. 이번 개막식에서 송승환 총감독의 역할은 연출이 아니다. 보통 연출을 감독이라 부르는 편향 때문에 총감독은 최고 연출가라고 오해될 수 있다. 총감독은 총괄 프로듀서다. 무대 연출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행사의 예산을 관장하고, 개막식에 참여한 모든 인력의 갈등을 조정하는 제작자이자 총사령관이다.


개막식의 총연출은 양정웅 감독이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극단 여행자의 대표이자 상임 연출가 출신이다. 극단 여행자는 1997년 창단 이후, 2002년 밀양 여름 공연예술축제에서 '한 여름밤의 꿈'을 초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2003년 제15회 카이로 국제 실험연극제에서 '연-카르마'로 작품상을 받으며 국내를 대표하는 극단으로 성장했다. 양정웅은 극단 여행자와 한국 공연계의 중심이었다.


연출 양정웅, 배우 김연아, 제작 송승환
배우 출신 공연제작자

송승환은 1965년 KBS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1969년 KBS 얄개전, 1970년 MBC 사돈댁, 1970년 TBC 아씨, 1972년 KBS 여로 등에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에 등극한다. 송승환은 하이틴 출신으로 젊음의 행진 MC로 인기를 얻은 후, 쇼 특급, 가요톱10 등의 사회자로 명성을 얻는다. 이후 공연기획자로 변신한 송승환은 1997년 비언어극 난타로 일약 스타 제작자로 발돋움한다. 난타는 지금까지 43개국에서 46,000회 이상 공연됐다.


난타는 세계적인 비언어적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다. 미국의 블루맨그룹, 영국의 스텀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공연이다. 2015년 1월, 난타의 누적 관람객 수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난타는 류승룡, 김원해, 장혁진 등의 배우를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송승환은 난타의 연출가가 아니었다. 난타의 기획자였고, 난타의 제작사인 PMC 프로덕션의 대표다. 그의 정확한 직업은 공연 프로듀서다.


난타 20주년 특별행사
정치, 메가이벤트의 그림자

송승환은 2015년 7월, 공모를 통해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에 임명됐다. 소규모 공연을 주로 제작하던 그였기에, 주변에선 빅 이벤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2016년 1월 개폐회식 총연출로 디자이너 출신의 정구호가 임명된다. 정구호는 패션 디자이너로 브랜드 컨설팅, 비주얼 디렉팅 등을 거쳐 국립무용단의 묵향에 참여하며 공연 연출가로 이름을 알렸다. 최근 오페라도 연출했다.



문제는 2016년 8월 30일, 정구호 연출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불거졌다. 개폐회식의 콘셉트를 두고 정구호 총연출과 송승환 총감독의 시각에 차이가 있어, 정 연출이 사퇴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전 문체부 장관 김종덕은 최순실 국정농단 4차 청문회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송승환의 연출 능력을 우려했고 김종덕 장관이 추천하여 정구호 씨가 총연출 직책으로 선임됐다. 공연도 모르는 정치인들이 참 말이 많다.


메가이벤트에는 정치라는 악마가 숨어 산다.
아직 폐막식이 남았다

평창올림픽의 개막식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송승환 총감독이 밝힌 개·폐회식 예산은 668억 원이다. 당초 529억 원으로 책정됐다가 대회 개막이 임박해서 139억 원을 급하게 증액한 것이다. 이 돈은 베이징 올림픽의 1/9, 런던 올림픽의 1/3에 불과하다. 송승환은 작은 도시라 인프라가 부족해 모든 출연자의 숙박, 운송, 전기시설 등을 갖추는 데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실제 콘텐츠 예산은 200억~300억 원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개막식이 모두 끝나고, 관중석마다 설치된 발광다이오드에선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출연진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등장했다. 송승환 총감독이 수고한 출연자들을 위해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 우리에겐 아직 폐회식이 남아 있다. 저비용 고효율로 치러낸 개막식의 감동이 폐회식에서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 지금 이 시간에도 폐막식 준비를 위해 많은 공연예술인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정치는 박수만 쳐라. 당신들의 무대는 여기 없다.


송승환 총감독님께
적은 예산으로, 짧은 기간에,
최고의 올림픽 개막식을 만드셨습니다.
작년에 개막식 내용을 처음 설명 들으며,
깐깐하게 굴었던 일을 사과드립니다.
걱정하는 마음에 그렇게 됐습니다.

by 국무총리 이낙연


인면조만 보지 말고, 다섯 아이를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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