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승부 마케팅 제안서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말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체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by 영화 '달콤한 인생' 中
영화의 선택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는 없다. 2005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은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흥행은 평단의 기대와 어긋났다. 전국 관객 1,112,950명, 전작인 '장화, 홍련' 3,146,217명의 1/3에 불과한 성적이다. 이런 결과는 영화가 훌륭하지 못해서였을까?
결론은 아니다. 어떤 평론가도 이런 결과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다. 수천만 관객의 마음을 일일이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어떻게 영화를 선택하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지금까지 영화가 선택받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개봉관을 많이 확보하는 일이었다.
개봉관 확대는 고객 접점을 늘리는 유통 전술이다. 그런데 이건 감독과 제작사의 영역이 아니다. 그리고 개봉관 확대는 별로 훌륭한 마케팅도 아니다. 고객의 심리를 모른다고 증명하는 일일 뿐이다. 스크린 독과점은 한마디로 말하면 무식한 마케팅이다. 인간의 선택 기준만 알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관객의 선택은
체계적이지 않다.
가장 유명한 선택이론을 살펴보자. 1977년 행태경제학의 거장 트버스키(Tversky)와 카너먼(Khaneman)은 속성비교이론(Feature Matching Theory)을 통해 인간의 선택이 어떤 경로로 결정되는지를 증명했다. 인간의 선택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선택의 수많은 대안들을 좁히는 과정이다.
1단계는 대안을 2개로 압축하는 과정이다. 속성비교이론은 최종적으로 2개의 대안만 남은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증명한다. 인간은 남은 2개 대안의 공통되는 속성(common feature)을 0.5초 만에 찾아내서 선택의 기재에서 삭제한다. 즉, 공통점은 삭제되고 독특한 속성만 남는다.
공통 속성이 제거되면, 대안 A의 차별 속성(unique)과 대안 B의 차별 속성만 남게 된다. 그럼 인간은 하나의 차별 속성을 나에게 좋다(good)고 규정하고, 다른 하나를 나에게 나쁘다(bad)고 단정한다. 그럼 마지막에 선택받는 것은 뭘까? 바로 유니크 굿(unique good)이다. 이것이 바로 핵심경쟁력이다.
영화 '인랑'
핵심경쟁력에 집중할 때!
개봉일에 영화 '인랑'을 관람했다. 인랑의 핵심경쟁력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성공적으로 원작을 변주했다는 점이다. 인랑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설이라 불리는 '오시이 마무로'가 각본을 쓴 '人狼, JIN-ROH'가 원작이다. 원작자는 할리우드에서도 리메이크된 바로 그 '공각기동대'의 감독이다.
인랑의 두 번째 핵심경쟁력은 등장만으로도 설레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주연을 맡은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과 주연급 조연인 한예리와 최민호, 신예 신은수와 최진호, 김법래, 정원중 등의 베테랑 중역들, 그리고 특별 출연한 실미도의 '허준호'까지. 인랑의 출연진은 대한민국 명배우들의 열전이다.
인랑의 세 번째 핵심경쟁력은 김지운 감독의 멈추지 않는 스타일 도전이다. 사람들은 70% 이상의 순간에 믿는 것을 보는 경향을 가지고 산다. 다시 말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관성으로 살아간다. 익숙함을 벗어나려는 독특한 스타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멈춘 것은 도태되고, 오래되면 썩는다.
경쟁이 기회다.
비교해야 보인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 여름 극장가의 경쟁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첫 타석은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 2'였다. 예상보다 높은 흥행으로 경쟁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현재 관객수 1,773,059명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이번 주에는 '인랑'과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 개봉하며 경쟁에 불을 지핀다.
그리고 다음 주, 드디어 2017년 관객 14,410,931명을 기록하며 당해 한국 최고 흥행 영화로 기록된 '신과 함께'의 2편 '인과 연'이 개봉한다. 그다음 주에는 이름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황정민, 조진웅, 이성민, 주지훈 주연의 영화 '공작'이 경쟁의 대미를 장식한다.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이다.
삼국지보다 치열한 이 경쟁에서 인랑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우선 경쟁상대를 직시해야 한다.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 2'와의 차별성, 외화 '미션 임파서블'과의 경쟁력, 대작 '신과 함께 2'와의 비교우위, 영화 '공작'의 틈새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여름 경쟁은 피하면 먼저 죽는다.
인랑의 정면승부
비장의 히든카드는?
배우 정우성은 유니크하다. 대부분의 스타가 회피하는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거의 유일한 배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핫이슈고, 그의 한 마디는 SNS의 타임라인을 장식한다. 그의 핵심경쟁력은 잘생긴 외모에서 연기력으로, 그리고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소셜테이너로 변해왔다.
얼마 전, 그런 그의 독특함(Unique)에 잠시 제동이 걸린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마케팅에서 배제되었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독특함이 선호도가 되는 마지막 선택의 단계는 그다지 체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정우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인랑의 관객이 아니다.
정우성의 생각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버려야 '인랑'이 산다. 인랑의 손익분기점은 그들 없이도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다. 그들의 악플을 우리가 먼저 볼 필요도 없다. 정우성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그런 댓글은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바뀌지 않을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우리의 관객에 집중해야 한다. 끝.
인랑, 방아쇠를 당겨라!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by 영화 '달콤한 인생'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