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대~한민국
나는 외치고 싶다
승리의 함성은 언제나 벅차다. 함께 하는 응원은 심장을 뛰게 한다. 국민이 부르면, 선수들이 화답했다. 2002년은 잊혀지지 않는 축제였다. 이후 4년마다 서랍장에 고이 잠든, 붉은 티셔츠와 태극기를 깨웠다.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16년이 흐른 오늘, 나의 함성은 사라졌다.
아니, 우리의 함성이 사라졌다. 붉은 물결이 사라졌고, 광장의 응원이 사라졌고, 축구라는 축제가 사라졌다. 오직 성적을 향한 갈망만 남았다. 더불어 기업들의 월드컵 마케팅도 사라졌다. 오직 남은 건 끊기지 않는 치킨집 전화 벨소리뿐이다. 갑자기 축구가 싫어진 걸까? 왜왜왜?
이기적인 마케팅
‘앰부시 마케팅’은 교묘히 규제를 피해 가는 마케팅을 말한다. 매복 마케팅이라고도 불리는데, 공식 스폰서 기업이 아님에도 공식 스폰서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말하기도 한다. 한국 앰부시 마케팅의 대표 사례는 2002년 월드컵에서 벌어진, KTF와 SKT의 대결이었다.
2002년 월드컵 무선 통신 분야의 공식 스폰서는 KTF였다. 따라서 경쟁사인 SKT는 FIFA의 로고는 물론 월드컵이라는 세 글자조차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SKT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때, 앰부시 마케팅의 전설이라 불리는 'Be the Reds' 캠페인이 탄생한다.
SKT는 전속 모델이었던 한석규를 데리고 붉은 악마를 출연시켜 빨간 티셔츠를 입힌 채 구호나 노래만을 외치는 컨셉으로 광고를 진행했고, 방영 이후 온 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캠페인은 순식간에 화제를 만들고, 대~한민국을 국민 응원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큰돈을 들여 공식 후원사를 선점하고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펼친 KTF는 SKT의 교묘한 매복(?)에 참패한다. 문제는 이 사건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이 비공식 후원사들의 앰부시 마케팅을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월드컵 마케팅이 사라지게 된 이유다.
축구의 마피아, FIFA
국제축구연맹(FIFA)은 1904년 설립됐다. 초대 회장은 프랑스의 로베르 게랭, 처음으로 주관한 대회는 1906년 국제 경기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후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8개국이 참여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연맹은 위기에 봉착한다.
하지만 3대 회장 쥘 리메가 등장하면서 반전이 시작된다. 리메는 1930년 우루과이에서 최초로 FIFA 월드컵을 개최했고 가입국들을 적극적으로 늘려나갔다. 이런 그의 업적을 기념하여 월드컵 우승컵을 ‘쥘 리메 컵’이라고 부른다. 이후 피파는 상업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피파의 위세는 유엔에 가입된 국가보다 FIFA에 가입된 국가(정확하게는 축구 협회)가 많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고인 물은 썩듯이, 피파도 부패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몇 년 전, 미국과 스위스 수사당국이 국제축구연맹의 부패 혐의를 수사하면서 후원업체들이 개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축제의 주인은 누구인가?
2018 러시아 월드컵 축제의 열풍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도대체 왜 이럴까? 대표팀의 저조한 성적, 경기침체로 인한 기업 마케팅의 부재, 축구협회와 피파의 부패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결과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원인은 복합적이다.
축제의 주인은 관객이다. 관객이 즐겁지 않으면 축제는 반드시 실패한다. 월드컵을 주최하는 곳은 피파이지만, 월드컵의 붐을 조성하는 일은 기업이 담당해왔다. 물론 정부와 지자체도 좋은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어디에서 불협화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번 축제는 꽝이다.
그래서 나부터 반성한다. 촛불광장에 너무 오래 도취되어 있었고, 평화를 만드는 정상회담에 너무 크게 환호했고, 월드컵 전야에 벌어진 지방선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집중했다. 나의 무관심 속에서 내가 주인이어야 할 월드컵이라는 축제가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다 내 탓이다.
그런데 어쩌나.. 이미 이번 축제는 망했는걸. 정말??? 아니야.. 아직 아니야!!! 오늘 밤이 남아 있자나. 성적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나의 축제다. 나만 즐거우면 된다. 붉은 옷을 꺼내자. 목청을 다듬자. 사람들을 모으자. 무조건 함께 즐거워야 한다. 우리의 축제다. 가즈아~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