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Gone #4

1화 #콜드스테이지 #04

by 생각

31. 기획무대 회의실 / 낮

혜성과 금익이 마주 앉아 있다.

금익이 노트북을 혜성 쪽으로 돌린다.


금익

이건 작년도 내일시스템즈 제안서예요.

뭐 제안대로 실행되지 않았기는 한데..

전에 준 시디에도 있을 거예요.


혜성

네? 아직 다 못 봐서..


금익

됐고, 이걸로 대충 공부하고.

내일 회의 때까지 컨셉 몇 개만 만들어봐요.


혜성

제가요?


금익

내가 바빠서 일일이

프로젝트 브리핑을 해줄 수는 없고..

내일 덕션*하고 회의하는데..

일단 우리가 쪽팔리면 안 되고..

작년 거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부가 될 테니까.

아니다 뭐 학교도 아니고, 그냥 특훈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노트를 꺼내 메모를 하며)

오.. 사수의 특훈.. 멋진 카피야.


혜성

그냥 제 맘대로 만들면 되나요?


금익

논리를 맞춰야죠. 그리고 발표시간도.

발표는 언제나 발표자 리듬에 맞춰야 하니까.

내일 태종이 먼저 하고, 내가 하고,

자기는 할지 안 할지 모르고..

마지막엔 대표님이 하실 거예요 아마.

길게 하면 안 되고

한 3분 발표로 생각하고 만들어봐요.


혜성_Na

시간.. 리듬..


혜성의 귀에 잠깐 밴드 음악소리 같은 환청이 들린다.


금익

지금 듣고 있어요?


혜성

(정신을 차리며)

네, 그런데 원래 광고회사는 이런 식으로 일하나요?


금익

이런 식? (후-하며 참는다)

절대 아니죠. 여긴 작으니까 기회가 많은 거예요.

아니지.. 기회가 많다고 볼 수도 있고,

뭐 일이 많다고 볼 수도 있고.. 아무튼

이쪽은 대부분 유일기획을 가고 싶어 하긴 하지만..

거긴 뭐 경쟁률이 어휴.. 끈도 있어야 하고..


혜성

유일기획이요? 유일그룹하고 관계가 있나요?


유일기획의 전경이 보인다.


금익_E

인하우스 에이전시 자나요. 아.. 모르겠구나.

유일그룹의 광고회사.

즉, 광고만 전담하는 계열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획사.




32. 유일기획 소봉헌의 방 / 저녁

창밖으로 서울 시내가 보인다.

와이셔츠 차림의 헌.

노트북을 덮고 기지개를 켠다.

헌의 노트북 덮개에 스티커가 붙어 있다.


스티커

‘Concept is Everything’


노트북 옆에 리모컨이 있다.

진영의 것과 같은 모양의 리모컨이다.

리모컨에도 노트북과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다.




33. 기획무대 회의실 / 낮

혜성, 진영, 금익, 원철이 앉아 있다.

태종프로덕션 종희순 실장(38, 여)이

발표를 하고 있다.


희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원철

매대표~ 어때? 죽이지?


진영

올킬. 건질 게 없다.


원철

야.. 그래두..

‘내일은 내 일’

이건 세컨안으론 괜찮지 않아?


진영

그게 제일 구려.

어카피 니꺼 보자.


금익

넵!


어두운 표정의 희순.


혜성_Na

헐.. 살벌하네. 첫 월급도 못 받고 사라지겠다..


자신의 장표를 클릭해서 여는 금익.


금익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금익.

화면에 윤동주의 시 ‘내일은 없다’가 뜬다.

흠흠- 하며 시를 읊는 금익.


금익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진영

다음


금익

(바로) 네


금익이 장표를 넘긴다.


장표

당연한 내일은 없다.

당연함을 바꾸는 기술, 내일시스템즈.


진영

(혜성을 보며) 너도 있냐?


원철

매대표, 담배 한 대 피고 하지?


혜성

제꺼 하고 피시죠? 어차피 죽을 건데요 뭐.


탐색기에서 파일을 클릭해서 여는 혜성.

어쭈- 하는 표정의 금익과 원철.




34. 유일기획 회의실

프로젝터가 켜져 있다.

헌이 스크린 옆에 서있다.

손에 리모컨이 들려 있다.

테이블에 팀원들이 앉아 있다.

가장 끝자리에 동방우가 앉아 있다.


스크린

‘1998년 유일시스템즈 광고제안’
- 유일기획 -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유일기획 소봉헌입니다.


헌이 리모컨을 누른다.

'0'과 '1'이 가득 채워진

디지털 숫자들이 스크린에 보인다.


시스템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은 과학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진다.

흡족한 모습의 동방우.




35. 기획무대 회의실 / 낮

혜성이 스페이스 바를 누른다.

스크린에 장표가 뜬다.


장표

Tomorrow


혜성

내일은 영어로 투머로우입니다.

투머로우의 어원은

‘해가 사라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참 멋대가리 없는 단어죠. 뭔가 패배자의 느낌?


진영이 가만히 있다.

혜성이 장표를 넘긴다.


장표

One Day More


혜성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넘버입니다.

똑같이 내일이라는 뜻이지만, 승리자의 느낌이 들죠.

뭔가 혁명이 성공하는 그런 리듬?


장표가 넘어간다.

일출 사진이 보인다.

원데이모어 전주가 깔린다.

그 위로 텍스트가 서서히 올라온다.


장표

One More Systems

시스템 그 이상, 내일시스템즈


혜성

여기에 노래 가사를 좀 손보면..


진영

쇼하구 있네. 킬.


회의실을 나가는 진영.

따라 나가는 원철.


혜성_Na

그래, 오늘 끝내자 씨발


혜성의 핸드폰이 울린다.


cut to


문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는 혜성.


비수_통화음

누나, 나 비수.


혜성

왜 제대라도 하냐?


비수_통화음

아니, 재검 신청 해놓긴 했어.


혜성

용건만 말해. 나 일하는 중이야.


비수_통화음

누나! 나 꿈이 생겼어!!

내 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잖아?

물론 음악 하느라 전공수업은 제대로 안 들었지만..


혜성

그래서 뭐?


비수_통화음

여기서 친구를 하나 사귀었는데,

그 친구가 엄청 유명한 해커더라구.

열라 멋있어. 나 꿈이 생겼어!

나 세계적인 해커가 될 거야.

드럼도 치는 거고, 키보드도 치는 거니까!

음화화화화하하하!!


전화를 끊어 버리는 혜성.


혜성

꿈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C/B. 군부대 공중전화박스 / 낮

비수가 통화가 끝난 전화기를 들고 있다.


비수

그래도 나는 우리 언니 사랑해~


흐뭇하게 웃으며 수화기에 키스하는 비수.

비수가 공중전화박스 옆 벤치에 앉아

요구르트를 입에 문다.

윗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내 곱게 펴서

무릎에 올리는 비수.

펴진 서류의 내용이 보인다.


서류

재검신청서

성명 : 누비수

군번 : 97-ㅇㅇㅇㅇㅇㅇㅇㅇ

과목 : 정신과 / 평가등급 : 5급

사유 : 성주체성장애 및 성선호장애

의견 : 위의 사병은 징병 신체검사에 관한 규정에 의거 질병 및 기타 심리적/신체적 장애의 평가기준에 따라..

(하략)




36. 기획무대 옥상 / 낮

진영과 원철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원철

쟤 이틀 됐다며? 대학도 안 나왔구?


진영

중퇴


원철

저 나이에 저 정도면.. 낫배드 아냐?


진영

생각이 음악으로만 꽉 차 있어.

그래서 너무 신파야. 너무 무겁고.


원철

야 진영아, 너 첫 피티 기억 안 나냐?

너무 진지하다고 동방불패한테

아주 개작살 났지 아마?


진영

그날은 뭘 해도 깨지는 날이었어.

사부님도 일부러 그런 거고.. 나랑 헌이랑 둘 다 깰려고.


원철

뭐야? 그럼 너두 아까 일부러?


진영

갑시다. 시간 없어.




37. 기획무대 회의실 / 낮 (35.에 연결)

혜성, 금익, 희순이 앉아 있다.


희순

혜성 씨라고.. 맞죠? 아직 명함을 못 받아서..


시큰둥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혜성.


혜성_Na

명함 받을 일 없을 겁니다. 오늘 그만두니까.


금익

(메모장에 적으며) 아차차, 명함을 주문 안 했군.


희순

아까 발표.. 전 좋았어요.

뭐 결정은 매대표님이 하시는 거라 의견은 못 냈지만.


금익

실장님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아시잖아요 우리 대표님 성격. 이해하세요.


희순

알지, 벌써 몇 년인데.

그런데 나 이번 건까지만 하고 일 그만둬.


금익

네? 왜요??


희순

애들 학교도 가고..

뭐 그거야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컨셉이 뽑히질 않아.

그냥 빙빙 도는 느낌이야.

예전에 만든 것들만 다시 찾아보고..

그냥 텅 빈 것 같아.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고 ‘병’으로 산 게

벌써 십오 년이네.

그래도 프로덕션은 벗어나고 그만두고 싶었는데..

아.. 내가 별 말을 다하고 있다.

혜성 씨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서..

참, 아직 태감독님께도 말씀 안 드렸으니까

비밀로 해주고.


진영과 원철이 들어온다.


원철

종실장, 혜성이랑 좀 친해졌어?

경쟁사가 워낙 큰 곳 들이니까

우린 작아도 똘똘 뭉쳐서 응!!


희순이 원철을 보며 웃는다.




38. 유일기획 방우의 방 / 낮

전무 동방우라는 명패가 보인다.

통화 중인 방우. 소파에 앉아 있는 헌.

통화를 마친 방우. 소파 쪽으로 와서 상석에 앉는다.


방우

내용은 아까면 된 것 같고.

방금 시스템즈 대표랑 통화해 뒀으니까,

부담 없이 발표해.


네, 사부님.


방우

요즘 내부거래다 일감 몰아주기다

뭐니 해서 말들이 많아.

우리 그룹일 주고 싶은데 주겠다고 해도 참 시끄러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넌 그냥 아까 하던 대로 해.

나머진 내가 알아서.


네, 사부님


방우

진영이는 뭐 하고 산대? 들은 거 있어?


저도 만난 지 좀 됐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방우

만나면 다시 들어오라고 해.

야전에서 그만큼 굴렀으면 정신 차렸겠지.


네, 전달하겠습니다.




39. 유일호텔 바 / 밤

헌이 지은과 바텐더 테이블에 앉아 있다.

둘의 앞에 마티니 두 잔이 놓여 있다.


지은

올해 실적 다 채웠고?


(고개만 끄덕인다)


지은

동방불패님은 여전하시고?


(웃으며 고개만 끄덕인다)


지은

진영이 하곤 자주 연락하시고?


안 그래도.. 넌 최근에 안 만났어?


지은

문자만 가끔. 그것도 정보 교환차원.


요즘 어디 거 한데?


지은

내일시스템즈 들어간다던데?

넌 유일시스템즈 한다며?

친구끼리 헤어져서도 경쟁 광고주 피티하고

아주 피 튀기네.


어.. 그렇구나..


지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요즘 연애는 어떠시고?




40. 기획무대 회의실 / 낮

진영의 장표가 열린다.

리모컨을 손에 꽉 쥐는 진영.


진영

이번 컨셉은 의외로 간단해요.


진영이 리모컨을 누른다.


장표

내일 vs 유일

다윗 vs 골리앗


진영

유일이 죽어야 내일이 산다.


원철

경쟁사를 언급하자고?

그거.. 도박 아니야? 동방불패도 한 번인가 성공했다고..


진영이 리모컨을 누른다.


진영

당연히, 경쟁사 언급은 버리는 카드고.

(리모컨을 누른다)


장표

내일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장표가 넘어간다.


장표

내일하다


진영

세상에 없던 단어를 하나 만들어 보자는 거

경쟁사와 차별화되면서 도전자인

광고주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혜성의 귀에 드럼소리가 두두둥쾅- 하고 들린다.


원철

좋다!


금익/희순

좋네요~


혜성_Na

씨발.. 좋네..


진영

그럼 각자 내일하다로 준비해 주시고.

어카피, 쟤 임시로 명함 하나 파줘.


금익

네 안 그래도..

그런데 직책하고 직급은?


진영

그냥 AE*

옆에 인턴이라고 박고.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