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옷장지기 소령님 Apr 09. 2019

인터뷰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8화.

"열린옷장은 틀기만 하면 나와요."


지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연예인도 아닌 사람들이 방송에 꽤 자주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운이 좋게도 TV 방송 뿐 아니라 라디오, 신문, 잡지 등 온갖 매체에 우리도 정확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노출이 되었다. 여기까지 읽고 '에이~자랑 참 대놓고 하네'하며 불편해하실 분들이 계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방송 많이 탄다는 자랑을 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방송과 취재요청에 열심히 임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사실상 방송 촬영을 한 번 하기 위해 준비를 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절반 이상이 정장으로 가득한 열린옷장은 정장을 대여하기 위해 오신 방문자들조차 앉을 자리가 부족하다. 그런 공간에 촬영을 위해 오신 분들까지 섞이면 서있을 자리조차 찾기가 어려워진다. 우리 스탭들은 사람과 옷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겨우겨우 일처리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전쟁이라도 난 듯 뒤죽박죽인 혼란 속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동시에 문의전화를 받고, 대여자분들을 맞이하고, 옷을 골라드리다보면 '이게 지금 뭐하는 거지?'하는 멘붕이 오기도 한다.  


게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보통 반나절은 인터뷰며 자료 협조 등등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상 업무가 삐그덕거리기 마련이다. 늘 일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이 또한 난감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면 방송과 일상업무를 동시에 차질없이 하려다 너무 지쳐 버려서 모두들 녹초가 되버리기 일쑤다. 


tvn <리틀빅히어로>를 촬영할 당시에는 방송 촬영 때문에 옷장지기 전원이 휴일도 없이 7일간 연속으로 출근을 했을 뿐 아니라 거의 매일 밤 12시까지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인데도 우리가 방송 요청에 열심히 임하는 이유는 뭘까? 찍히는 걸 좋아하는 체질이라서? 아니면 열린옷장을 유명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도 아니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물론 모두 아니다. 우리가 조금 무리하면서도 방송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정장 기증을 한 벌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이다. 홍보 활동을 따로 비용 들여 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방송이 한 번 나갈 때마다 몇 건씩 들어오는 기증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정장이 급히 필요하다며 찾아오시는 구직자분들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옷은 항상 부족하다. 그러니까 방송활동은 기증을 받기 위해 우리가 벌이는 최후의 고군분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청이 오는대로 그냥 오케이 하지는 않는다. 우리 나름대로의 미디어를 대하는 원칙은 있다.  


일단 인터뷰나 촬영 요청이 오면 상대방이 조금 불쾌해할 정도로 자세히 묻는다. 어떤 취지의 프로그램인지, 우리를 섭외하는 의도가 뭔지, 어떻게 표현하려고 하는지 들어보고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일단 '정장을 싸게 빌릴 수 있는 곳'이라는 정보에만 관심이 있다면 정중하게 거절한다. 혹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하는 활동은 단지 '싼 정장'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기증한 '가치있는 정장'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라는 취지에 공감해야 취재는 진행된다. 물론 이렇게까지 하고도 편집되어 방송된 걸 보면서 후회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알뜰 생활정보' 정도로 생각하고 취재요청을 했다가 긴 통화를 마친 후 취재 방향을 바꿔서 꼭 진행하고 싶다고 하시는 고마운 작가님이나 피디님들도 계시다. 취재를 오며 기증할 정장을 가져와 우리를 감동시키는 촬영팀도 있다. 


이렇게 믿는 구석도 없이 까탈스럽게 구는 우리가 무조건 "좋습니다. 언제 오실래요?''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학생들의 취재 요청이다. 학생들이 과제를 위해서나 교내 신문을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응한다. 어떤 사심도 없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거라고, 청년들을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줄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어설픈 인터뷰 진행에도 기꺼이 즐겁게 임한다. 


긴 이야기를 했지만 '인터뷰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보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열린옷장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멋진 말로 인터뷰를 잘 하면 잠깐 빛나고 말겠지만

진심으로 늘 최선을 다한다면 영원히 빛날 수 있을테니 말이다.  





Tip for your start. 

"순간의 선택이 두고두고 클릭된다"

홍보의 기회를 잡기 어려운 작은 스타트업이 취재 요청을 거절하기란 사실상 쉽지않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한번 나간 기사나 프로그램이 인터넷에서 계속 검색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인터뷰나 취재에 임해야한다. 자칫하면 졸업앨범 속의 숨기고 싶은 옛날 사진처럼 두고두고 후회가 남는 기록이 될 수도 있다. 누가 보는 미디어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미디어인지, 취재하는 기자나 작가의 의도가 뭔지 차분히 따져보는 여유를 가지고 선택해보자.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8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빨리 유명해진 비결이 뭐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