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날의 사고.

지옥 속에 갇혀버린 부모님

by 날달말

사진 속 내 이마는 깨끗했다.

5살 초여름까지는.


1995년, 우리 집은 동네에서 작은 슈퍼를 하고 있었고, 4살 차이여동생은 첫 번째 생일을 몇 개월 앞두고 있었다.

슈퍼와 왕복 4차선 도로를 마주 보고 외삼촌 댁이 있었는데, 심심하면 놀러 가곤 했다..


외삼촌댁은 널찍한 당구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나에게는 놀이터였다. 당구 치러 오는 아저씨들도 재밌고, 빈 당구대에서 공을 만지고 놀기에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에 자주 오며 가며 지냈다.

사실 당구장에서 웰컴 드링크로 나오는 요구르트를 먹기 위해 가는 것도 있었다. 하얗고 얇은 빨대를 꽂아서 아저씨들에게 가져다주는 재미도 있었던 거 같다. 가끔 내기 당구에서 이긴 분들이 용돈을 주시기도 해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길 건너 외삼촌 댁으로 가려면 횡단보도가 70미터 이상 올라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고, 엄마는 혼자서 카운터를 보셔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늘 손잡고 도로를 건너서 나를 외삼촌 댁으로 데려다주곤 하셨다. 그 시대라 가능? 했던 어쩔 수 없는 무단횡단이었다.


그날도 같았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고, 길을 건너기 위해 슈퍼 앞 도로에 섰다. 그 순간 슈퍼에 손님이 오셨고 , 엄마는 나에게 “여기 잠깐만 서 있어”라고 하고 슈퍼로 들어가셨다.


5살 꼬마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고, 혼자서 4차선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도로를 다 건넜을 때 즈음, 승용차와 꼬마아이가 충돌했다.

짐작하건대 , 5살 아이가 뛰어갔을 확률이 높고 , 운전자가 보지 못했거나 봤더라도 이미 늦은 시점이었을 것이다. 작은 꼬마아이는 승용차에 부딪힌 충격으로 튕겨져 날아올랐고 , 1톤 트럭 밑에 깔려서 일정거리를 끌려갔다. 옷이 트럭밑에 걸린 모양이다.


누가 신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119가 왔고, 소도시였던 우리 동네에서는 처치가 불가했나 보다. 나는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실려 갔다.

머리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기에 1차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5살의 나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겨졌지만, 이동 중 긴급처치만 되었을 뿐 세부 검사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응급실이라 정신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 5살 꼬마아이가 피를 많이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는 융통성이? 조금 부족했나 싶기도 하다.


엄마는 충격으로 여러 번 기절했고, 아빠는 병원에 호소했다.


내 딸 좀 살려달라고……

내 딸내미도 봐달라고 ……


나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로 순서가 올 때까지 대기했고, 아빠는 울부짖으셨고 … 엄마는 여러 번 혼절한 탓에 정신이 혼미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는 버텨냈다.

그 당시, 응급실에서는 내가 살아나기 힘들다는 말도 들렸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 소견이 아닌, 피를 흘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판단하고 말을 흘렸나 보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나 보다...


나는 머리와 얼굴에 출혈이 있었기에 머리카락을 모두 밀었다.

다행히 머릿속은 문제가 없고, 두피만 찢어진 상태였다. 머리카락대신 흰 붕대를 머리전체에 휘감았다.

혓바닥은 절반 이상 찢어졌다.

쇄골은 금이 갔고, 왼쪽 어깨는 탈골, 왼팔은 부러졌다.

나머지 몸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행이었다. 머리를 크게 다쳐서 비관적인 분위기였는데 정말로 천만다행이었다.


여름이 오기 시작할 때즈음 5살짜리 여자아이와 엄마의 대학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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