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만 남아있는 쓸쓸하고 아름다운 길
귀신을 봤다는 그 길
지인들과 진양호 길을 살살 걷는데, 한 분이 호수 건너 저 섬에 배를 타고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한다. 그곳에 조성되었다는 둘레길을 걷다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혼자 한 시간이 넘도록 헤매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갑자기 다가오셨다는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선착장 방향을 물어보니 한 10분만 더 가란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셨단다. (참고로 그 할매는 구라쟁이라고, 그 뒤로도 한 시간을 더 걸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난 것 같기도하고 또 사라락 사라졌던것 같기도 했다고 스산했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 해줬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곳은 진양호를 만드느라 사람이 살지 않은, 수몰된 마을이 있던 지역이었다. 옆에서 같이 듣던 다른 분이 당신 남편이 어렸을 때 그곳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거들었다. 귀신이라니!
설마 그래서 '귀곡동'인가?! (나중에 알아봤는데 그건 아니란다.) 둘레길에 진심인 나는 길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귀곡동 둘레길에서 <톳재비> 길이라는 간판이 검색되었다. 지역방언으로 도깨비길 이란 뜻이다. 길을 넘아가면 도깨비를 만난단다. 역시 심상치 않는 길이 분명했다.
주인 잃은 기억이 헤매는 길
대대로 살아온 땅에는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이 쌓인다. 그것이 공동체의 기억이되고 마을 그 차체가 된다. 그런데 진양호가 만들어 지면서 마을이, 기억이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기억의 주인들은 그곳을 떠났는데 장소에 남아있던 기억들은 흩어지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렇게 상상하며 걸으니, 까꼬실길 귀곡초등학교 가는길이 조금은 무섭지만 그런면에서 흥미진진했다.
막막프로젝트 형제인 재윤은 원래 믿음직한 동료이기도 하지만 이런 미스터리한 숲에서 든든함이 배로 느껴지는 친구였다. 마침 느리게 걷기 운영자님과 함께 진주에 놀러 와 준 김에 심상치 않는 까꼬실 길을 함께 걸어보기로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두 사람이 없다면 절대 혼자 걷지 못했을 길인 듯한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쓸쓸해서 더 아름다웠던 길
물 위로 반쯤 나온 전봇대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앙상한 나무도 무수한 가지만 맑은 호수 위로 올라와 있다. 저 물속에 사람들이 기억이 가득하겠다. 터만 남아있는 귀곡초등학교 자리에는 졸업생들의 사진과 시가 전시되어 있다. 빽빽하지만 걷기 여행자에게 길을 내어주는 대나무 숲,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길도 사라진 숲 길, 돌보지 않는 무덤들이 즐비하여 스산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아무도 없었다. 전화도 안된다. 왕복 3시간 길이라 우습게 보고 커피와 초콜릿 몇 개만 들고 갔었다. 자만심 때문에 길을 헤메다 배고파서 죽을 뻔했다. 길안내 간판이 있지만 길이 없는 길, 길이 있는데 간판 없는 길, 어디 막걸리 파는 집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인적도 없는 까꼬실 길에서는 되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에필로그
참고로 우리는 <까꼬실 주차장> 에서 차를 세우고 갈마봉을 올라 석정상 방향으로 걸었다. 중간에 향골로 질러 내려와 귀곡초등학교로 갔다. 아직 안내 시스템은 열악했다. 이 아름다운 길을 미리 본 것에 감사하며 보다 정비가 되면 추천하고 싶다. 아름답고 독특한 분위기가 좋다.
출처 : https://blog.daum.net/yeosujsy/16796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