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25화
영화업계에 발을 담그고 싶을 만큼 영화를 좋아했던 시절, 영어라는 언어는 학습해야 하는 외국어라기보다는 습득하고 싶은 언어였다. 코로나 이후로는 극장에 가고 싶어도 개봉하는 영화가 없어서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볼 영화가 차고 넘쳐 주말에 영화 몰아보기를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극장에서 2~3편을 연달아 보는 시간표를 짜기도 하고, 특정 영화관에서만 상영하는 영화가 있는 경우 이동하는 동선까지 고려해서 극장과 극장을 오가며 영화 관람을 하는 계획을 짜기도 하고, 시간 텀이 좀 있는 경우에는 전시회를 하나 끼워 넣거나 독서나 글쓰기 같은 특별활동을 넣어 하루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커다란 스크린을 응시한 채 2~3편의 영화를 몰아보며 심하게 안구 운동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항상 드는 생각이, ’언제쯤 나는 자막을 무시하고 영화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영화를 즐길 수 있을까?‘ 하지만 20년 넘게 배운 영어가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이다 보니 언어라는 관점에서 영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기까지에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돌연 미국행을 선택한 것이 한국어 자막 없이 영화 보는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영어를 언어로 접하고 영어라는 언어에 본격적인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 기세를 몰아 귀국 후에도 열심히 언어로서의 영어 습득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며 언어를 공부할 수 있는 한국 외국어 대학교 사이버 대학에 통번역 전공으로 편입을 하는 일을 또 저지르고야 말았고, 통번역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우리말로 확장되면서 ’기왕 공부하는 김에‘ 한국어까지 섭렵하고 한국어교원 2급 자격증까지 덥석 거머쥐게 되었다.
공부 전도사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이버 대학교 이야기하다 보면 전공이 뭐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영어 통번역과 한국어 복수전공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질문이 ‘한국어요? 국문학이 아니고요?’ 한국 사람들에게도 국문학 전공과 한국어 전공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긴 하나보다. 우리는 국어를 배웠지 한국어를 배우진 않았다는 걸, 비록 학창 시절에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내 몸이 기억하고 반사적으로 반응을 하는 거라 볼 수 있겠지요? 그리하여 나의 버킷 리스트에 60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또 하나를 추가했는데, KOIKA 한국어 봉사 참여하기! 반생을 맞이하는 해에 산티아고를 걸으러 가겠다고 동네방네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아직 못 갔습니다 -_-) 과학 및 의료의 발전으로 인간 평균 수명이 120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니, 그럼 나는 반생에 산티아고도 가고 한국어 해외 봉사도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정말 바쁜 반생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