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24화
영어에 "once-in-a-life-time"라는 표현이 있다. “인생 단 한 번의, 인생에 한 번쯤은” 정도의 의미인데, 보통 버킷 리스트에 담아두고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경험일 때가 많다. 혼자 감행하기 힘든 경험에 누군가가 불씨를 댕긴다면? 뭘 망설이나? 당장 떠나야지! 새로운 프로젝트가 이제 막 시작되어 여차하면 주말도 휴일도 반납하고 추석 연휴에 일해야 할지도 모르는 리스크가 있긴 했으나 에라 모르겠다. 친구의 제안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오케이!“ 그렇게 8박 9일 네팔 푼힐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인천 공항에서 방콕을 경유해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면 다시 네팔 국내선을 갈아타고 포카라로 이동을 하는 꽤 복잡한 여정이었으나 원스 인 어 라이프 타임 트레킹을 앞둔 마당에 비행기 몇 번 갈아타는 거는 일도 아니었다. 베이스캠프인 ‘해리네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하룻밤 숙식을 한 후 다음날부터 하이킹을 시작했다. ‘해리네’ 사장님은 네팔분인데 한국에서 거주하며 일을 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말이 상당히 유창하셨고, 트레킹을 하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숙박업을 하고 있어서 네팔 트레킹 통행증부터 셰르파를 구하고 트레킹 시작점까지 가는 지프차 예약도 직접 다 해주셔서 편하게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며 가며 경유하는 일정을 제외하고 실제 트레킹은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해발 1025미터 Birethani에서 시작해서 Ulleri, Ghorepani를 거쳐 3210미터 고지 Poon Hill을 찍고 Ghandruk을 거쳐 Kimche로 내려오는 여정이었다. 9월 말 네팔은 거의 여름 날씨에 가까웠다. 그래도 습하지는 않아 트래킹을 하기에는 안성맞춤. 첩첩산중을 배경으로 굽이굽이 산 길을 걸어가는데 산새와 분위기가 너무 한국 같아서 상당히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트래킹은 아침 일찍 시작해서 오후 2-3시면 끝이 났고 종료 지점에서 셰르파가 미리 알아봐 둔 로지(lodge)에서 늦은 점심에 맥주 한잔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생각보다 트래킹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 놀랐고, 거지꼴로 3박 4일을 보내는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숙소가 좀 허름해서 그렇지 따뜻한 물도 나오고 씻고 먹고 자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보통 등산은 당일에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데 네팔은 특이하게 새벽 일찍 푼힐 고지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푼힐 정상은 360도 뷰 맛집으로 안나푸르나 산맥의 15개 봉우리를 모두 볼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15개 고지를 오르진 못해도 멀리서나마 15봉을 다 볼 수 있는 게 어디람, 게다가 무엇보다도 안나푸르나 산맥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건 인생일대 최고의 경험이었다. 다행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너무나 맑았고, 어둠 속에서 천천히 벌건 태양이 떠오르고 주변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하나둘씩 눈 덮인 산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진정 내 두 눈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 맞나... 이게 꿈이냐 생시냐... 실감 나지 않는 시간이 한동안 흐르고, 마지막 트래킹 여정을 위해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산을 했다. 마지막날은 최고로 힘든 8시간 롤러코스터 산행... 트레킹을 끝내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종아리가 그날로 땡땡 알이 차올라 귀국해서도 회복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2018년 9월, 7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날의 한치의 망설임 없는 “오케이”는 정말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사는 인생, 어찌 보면 오늘, 지금, 이 순간도 원스 인 어 라이프 타임 모먼트인데 우리는 이 찰나의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순간이라 생각하고 오늘 하루, 한 시간, 일 분, 일 초 재미나게 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