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고작 반생을 살았네 30화

by 김선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CGV 극장 한켠에 영화 홍보 전단지가 꽂혀 있는 걸 본 것 같은데 요즘은 모두 자취를 감춘 것 같다. 디지털에서 대부분의 정보를 찾아보는 시대가 되다 보니 지류로 홍보물을 접하는 경험마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좀 슬프기도 하다. 일상생활이 디지털화되기 전에는 영화 티켓도 극장에 가야 살 수 있었고, 지류 티켓에, 홍보 전단지에, 영화 팸플릿에, 영화 포스터에, 영화 엽서에.. 영화를 홍보하는 온갖 지류들이 넘쳐났고, 신문과 잡지에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가 항상 있었고, 영화 주간지나 월간지에서 영화 관련 정보들을 탐색하곤 했다. 영화판에서 일을 하던 시절에는 길을 가다 지하철이며 버스며 곳곳에서 영화 광고만 보이더니 UX로 업종 전환이 하고 나서는 곳곳에 불편한 사용성만 눈에 띈다. 직업이 바뀔 때마다 직업병도 바뀌나 보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 중 가장 중요한 공간은? 다양한 공간이 떠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공간은 화장실이라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중요한 용무를 보는 루틴이 있고, 밖에서도 화장실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으로서, 국내/국외, 도시/시골 어디를 가든 화장실에 앉아서도 UX가 눈에 밟힌다. 일단 변기의 높낮이가 장실마다 다르다. 낮은 곳보다는 높은 곳이 많아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자세를 취하려면(상상하지 말기) 발 밭침이 절실하다. 화장지의 위치도 가지각색이다. 왼쪽, 오른쪽, 심지어 양쪽, 방향뿐만 아니라 화장지와의 거리가 상당한 곳도 경험해 봤다. 강원도에 친구와 등산하러 갔다가 신장 오픈한 호텔급 모텔에 갔는데 화장실이 안방만큼 넓고 욕조가 공중목욕탕 급인데 화장지가 불러야 올 것 같은 거리에 위치하여 처음엔 상당히 난감하였으나 다음에는 들어가면서 일단 두루마리 화장지를 빼들고 이동하는 UX가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더라. 물 내리는 레버의 위치는 또 어떤가? 자동/수동, 뒤쪽/옆쪽, 오른편/왼편/뒤편, 대/소… 나름 신식(?) 화장실들은 앉아서 일단 공부를 해야 될 지경이다. 휴지통과 가방걸이의 위치와 모양도 제각각, 가방걸이가 없어서 배낭 메고 앉았던 기억도 있다(상상하지 말기). 이런저런 UX, 사진 찍어 개선을 해볼까 싶다가도 화장실에서 사진 잘못 찍었다가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 생각만 하고 앉아 있다가 물 내림과 동시에 불편한 경험도 같이 쓸어내려 버린다.


요즘 음식점에 너무 흔해진 키오스크 주문기와 자리에서 주문하는 태블릿도 요주의 인물이다. 디지털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도 불편한데 디지털 약자라 불리는 분들은 당연히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키오스크 앞에서 꾸물거리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뜨끈뜨끈해져 오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셨으리라. 자리에 앉아서 주문한다고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태블릿으로 하는 곳도 있고 QR 코드로 주문을 해야 하는 곳도 있다. 태블릿으로 주문만 가능하기도 하고, 결제까지 가능한 곳도 있고, 따로 결제 기능까지 있는 곳도 있다. 주문과 결제를 하면서 캡처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마음속에 간직한 개선 사항도 한 두 건이 아니다. 어디 키오스크나 테이블 주문 개선 프로젝트 안 들어오나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온/오프라인, 피지컬/디지털 할 것 없이 UX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그나마 사기업은 쌈짓돈 꺼내서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국민들의 혈세로 돌아가는 공공 서비스들은 21세기 서비스인가 싶을 정도로 노후된 것도 있고, 여기저기 불편한 서비스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올해 예산으로 만들기 때문에 올해 반드시 오픈을 목표로 그냥 오픈하고 그냥 방치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작년 말부터 두루누비 앱을 깔아 대한민국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이 또한 직업병이 발동하여 눈에 밟히는 부분들이 하나둘씩 보이는데 개인 프로젝트로 한 번 해 볼까 싶기도 하다.


매주 브런치에 고작 반생 연재를 한지도 벌써 반년 되어 온다.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계속 쓰다 보니 점점 더 글씨기의 재미와 매력에 푹 빠져 연재 거리를 계속 찾게 되고 다른 연재 욕심도 계속 내게 된다. 이것저것 보다 보면 글쓰기 소재들이 눈에 띄고 머릿속에 맴도는 글감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스마트폰 메모장에 간단히 메모를 하게 되는데 이것도 그럼 직업병? 그럼 난 김작가? 기왕이면 스테디셀러 김작가면 참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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