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디지털 미니멀리즘

by 김선혜

물질주의 시대를 비판하며 극도의 ‘절약’이 아닌 진정한 ‘필요’를 강조하며 너도나도 ‘Minimalist(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외쳤던 시절이 있었다.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는 정리의 기술로 큰 인기를 누린 마리에 콘도의 ‘Sparkling Joy’도 ‘Minimal Life(미리멀 라이프)’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나를 설레이게 하는 물건들만 남겨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자며 ‘Minimalism(미니멀리즘)’에 동참했다. 트렌드를 쫓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나 집안에 가득가득 쌓여 있는 옷, 가방, 신발, 그리고 생필품들까지,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싸다고 사서 쟁여두고, 뭔가 같은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는 것에 대한 지루함을 핑계로 나를 설레이게 하는 것들이 보이면 과소비를 하던 그동안의 삶을 깊이 반성하며 마음먹고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한 김에 책장과 CD까지 정리를 했는데 정리란 것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것을, 사는 것보다 정리하고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그나마 책과 CD는 중고로 팔기라도 했는데, 재활용이 될지 폐기가 될지 모르는 옷과 가방과 신발은 보면서, 좀 심한 표현을 쓰자면 쓰레기를 한가득 사고, 쟁여두고 살았구나. 게다가 이것들을 사기 위해 소비한 돈 뿐만 아니라 발 품, 손 품 팔며 보낸 시간까지 생각하면 살짝 내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어지기까지 하네. 이렇게나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잔뜩 쌓여있는 옷가지들을 보며 불필요한 소비근절을 위한 결심을 했다.


1. 바지와 자켓은 모두 행거에 걸어 놓고 입기 (눈에 보여야 더 이상 안 살 것 같은 생각에)

2. 상의는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모두 돌려가며 입기 (안 입고 쳐박아 두지 않기 위해)

3. 신발은 여름/겨울용 각 두 켤레로 돌려신기 (단 켤레는 조금 리스크가 있으므로)

4. 가방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다 낡아 찢어지기 전까지 사지 말기 (그래도 파타고니아는 수선해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5. 필기구는 다 쓸 때까지 사지 말기 (죽을 때까지 안 사도 될 듯)

6. 생필품은 반 정도 남았을 때 사고 브랜드를 바꿀 때는 이 전 상품을 다 쓰면 바꾸기 (단촐한 욕실, 단촐한 화장대)


지난해 여름엔 오랜 추억의 잔재들도 모두 정리를 했다. 어린시절부터 간직해온 편지들, 일기장들을 모두 태워버리는 의식을 거행하고 나니 약간 허전한 마음도 들었지만, 죽고 나면 누군가에게 망설임을 줄 수 있는 것들은 그냥 내 손으로 떠나 보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뭔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 나름 흐뭇했다. 앞으로 10년 주기로 이 의식을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네.


삶이 좀 가벼워졌다 생각을 했는데, 왠걸, 매월 3,300원을 내면서 사용하던 나의 아이클라우드 200GB가 조만간 만땅이 될 거라는 이메일을 받고 아차!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세계에서의 미니멀리즘만을 논하고 있던 사이, 일상의 또 한 영역인 나의 디지털 세계에 일명 ‘디지털 폐기물들’이 쌓여가고 있었구나! 월 3,300원/200GB 다음은 월 14,000원/2TB, 4.5배의 갑급작스런 구독료 인상에 약간의 동공지진이 왔다. 이제는 TB가 공공연한 세상이 되었고, 월 구독료와 월 멤버십 이용료를 지불하는 것에 익숙해 지다보니 그래, 월 14,000원 낼 수도 있지. 하지만 나의 클라우드에 있는 200GB에 달하는 파일들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와 쓸모가 있을까? 우리가 그동안 외쳐왔던 미니멀리즘의 범위를 디지털로 넓혀서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지컬한 상품들은 눈에 보이고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살 공간을 넓히지 않는 이상 더 많은 물건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삶의 공간을 넓힐 수 있을 만큼 금전적인 여유가 있지 않는 한,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면 울며 겨자먹기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현상과 인화를 하는데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니 그냥 무조건 셔터를 눌러대고 수백만, 수천만장의 사진 파일들이 쌓여간다. 문서를 출력할 필요가 없는 일터에서 파일들은 디지털 산출물의 형태로 쌓여간다. 개인적인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보니 한 때는 컴퓨터 하드 용량을 대체하기 위해 CD로 구워댔고,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외장 하드, 그리고, 요즘 세상은 클라우드에 모든 것들이 올려져 있다. 어디서든 꺼내 보고 쓸 수 있다는 편리함도 있지만 어딘가에서 쉰내를 폴폴 풍기며 썩어가고 있어도 세상 알 수 없다. 그냥 계속 쉽게 쉽게 생산하고, 아무 생각없이 저장해 둔다. 디지털 장례, 디지털 장의사가 생겨난 이유를 알 것 같다.


구독료를 올릴까 하다가 이참에 마음먹고 파일들을 정리하려고 이 폴더, 저 폴더 둘러봤다. 언제 저장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파일들, 하나하나 들여다 보며 휴지통에 버리고, 또 들여다 보고 휴지통에 버리고… 폴 더 몇 개 들여다 보지도 않았는데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게 무슨 짓이람. 사고 버리는 데 시간과 돈을 쓰는 것도 모자라, 생산하고 저장하는데 또 시간과 돈을 쓰고 있구나. 나름 미니멀리즘의 실천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디지털 미니멀리즘 실천을 위해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네. TB의 인생을 살 것이냐, GB의 인생을 고수할 것이냐. 이러다 조만간 디지털 구독료 미니멀리즘 운동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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