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을 끝낼 시간

by 김선혜

2004년 2월 16일, 설레이던 첫 만남.

정말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기회에 소개를 받았고, 너무나도 동경했던 만남이었기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래,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기다리면 ‘시크릿(The Secret)의 우주의 법칙’처럼 우주가 나를 위해 움직여주는구나. 그리고, 1년 6개월, 간절했던 바람에 대한 결과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4번의 여름이 니자고 겨울로 접어들 무렵, 또 한번의 우연으로 인연의 다리가 다시 만들어졌다.


다시 찾아온 기회인 만큼 또 다시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온 몸이 바스러질 정도로 불철주야 최선을 다했다. 불연듯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운동에 금전적인 투자를 했고, 운동으로 버티다 버티다 결국 면역력 저하로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 잠시 휴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채 3주를 채우지 못하고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병원을 전전하며 간신히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또 3년을 버텼다. 그리고, 또 다시 1년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지나고 보니 요즘 말로 심하게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1년동안 미국 살기를 했다. 태어나서 첫 독립인데 내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독립이라니… 내 나라나 남의 나라나 서바이벌 모드인 건 매 한가지고, 오히려 낯선 곳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니 오히려 더 홀가분하고 오랜만에 다시 학생의 위치로 돌아가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친구도 사귀면서 나름 힐링을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거기서도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느닷없이 망막에 검은 점이 스물스물 올라오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하다고 망막에 빵구가 났다는 진단을 받았는데도 2개월을 더 버티고 딱 1년을 채운 후 귀국을 했다. 물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잘못하면 실명할 수도 있는데 바로 귀국 안하고 버텼다고 먼지 날 정도로 잔소리를 들었다.


귀국하자 마자 수술을 받고 난 후, 나의 일상은 또다시 예전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또 9년째 짝사랑 중이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언젠가는 변하겠지 하며 순간순간 희망의 에너지 충전을 해보지만 밑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견디다 견디다 숨을 한 번 몰아쉬기라도 하면… 아니 어쩌면 내가 괜히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뭔가 누적된 것이 터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제동을 건다.


간혹 신끼에 가까운 예민함이 발동하여 삶의 방향을 전환하거나 쉼표나 마침표를 찍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예민함이 일이나 사회생활, 인간관계에 좋은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남들과는 좀 다른 방식의 쉼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 업으로 방향 전환을 했을 때도 그랬고, 돌연 미국행을 택했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요즘 또 그런 기분이 밀려온다. 이 조직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은… 그리고, 이제는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닌 내 스스로 자립하여 제 2막을 시작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나는 무엇이 아닌가?”

최근 읽은 류시화님의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나오는 질문을 본 순간, 마치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던지는 질문 같아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직업에 관련된, 일에 관련된 레이블을 다 덜어낸 나는 과연 뭐라고, 누구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일하지 않는 나도, 나다.”

최근 접한 최다은님의 아티클을 보며 같은 질문을 떠올려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아닌가?”


어쩌면 미국에 가서도 살던대로 살아서 망막에 빵꾸가 난 것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 계속된 최선을 다하는 쳇바퀴가 나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아직도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 나로 가득 채우다 보니 내가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멍’만 때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조만간 회사와의 지리한 짝사랑을 끝내야 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내가 가진 재능, 역량, 에너지를 좀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쓰고 싶다는 것!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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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지 않는 나도, 나다" 이명을 겪은 라디오PD가 깨달은 것

https://www.folin.co/article/1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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