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홀로서기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홀로서기 2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홀로서기 3
위태위대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히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홀로서기 4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홀로서기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홀로서기 6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홀로서기 7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란 것이 찾아왔을 때 유난히도 이놈의 <홀로서기>에 심취해 있었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이 문장을 되뇌이고 되뇌이며 내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을 어찌나 해댔던지 지금은 오히려 혼자가 더 편한, 혼자 너무나 잘 놀고 너무나 잘 사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당시를 떠올려 보면 나는 참 많이 외로운 아이였던 것 같다.
매일 친구들이랑 밖으로만 싸돌아 다니고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소설 말고는 글과 그닥 친하지 않았던 아이가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집 안에 틀어박혀 미치도록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집 구매가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는데, 계몽사 소년소녀 문학전집, 한국 역사전집, 안데르센 전집... 엄마의 컬랙션으로 전락할 뻔한 전집들이 한권 한권 나의 소장품이 되어 갔다. 그리고, 감수성 충만했던 어린 소녀에게 ‘시’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가장 좋은 친구였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시 중에, 왜! 하필이면!! 홀로서기냐고!!! 전생도 ‘고독한 선비’였는데 현생도 외로운 홀로서기 인생이라니... 뭔놈의 팔자가 이다지도 기구한지.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장래에 대한 꿈도, 미래에 대한 망막함도, 그 어느 것도 누군가와 속시원히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가장 가깝다고 느껴야 할 부모님은 오히려 더 멀게만 느껴졌고, 하나뿐인 언니는 나와 노선이 너무 달랐고, 그나마 친구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는 늘상 같은 곳만 맴돌았다. 그러다보니 그 당시 나의 베프는 내 일기장이었다. 유치한 이야기부터 심각한 이야기까지, 때로는 부모님과 언니에 대한 불평불만까지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대화 상대, 하지만 결국은 이또한 나 자신인 것을... 그리하여 어느덧 나의 홀로서기 경력은 35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요즘 유난히 혼자 놀고 혼자 사는 인구가 급증하여 사회적으로 좀 많이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어찌하다 보니 그놈의 홀로서기 때문에 프리한 슈퍼 싱글의 삶을 즐기고 있고, 그놈의 홀로서기 덕분에 독서와 글쓰기가 취미가 되어 지금도 이렇게 끄적거리고 있지만, 그래도 종종 ‘같이’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더해졌을 때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서기의 의미는 단순히 혼자놀기가 아니다. 홀로서기는 삶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하나의 독립된 나다운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홀로 인생길, 마치 의무처럼 반드시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삶이 좀 팍팍하다는 이유만으로 홀로살기를 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나치게 타인 의존적인 삶을 살지 않기 위한 홀로서기는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