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난 내가 제다이인줄 알았다. 내가 아직 스승 요다를 만나지 못해 그냥 이러고 사는 거지. 루크 스카이워커도 그랬잖아. 그러니 조금만 더 참고 살아 보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가 어느덧 대학 졸업반에 이르렀고, 스타워즈로부터 시작된 나의 영화 사랑은 영화 보기는 일상, 크고 작은 영화제 순례는 취미, 영화 정보 탐색과 이론 공부로까지 파고 들다가 4학년 여름방학, 작은 영화사에서 홍보마케터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4학년 2학기에는 당시로는 나름 큰 영화사 인턴으로 입사하는 기회까지 얻었다. 그리하여 나의 4학년 2학기는 학교 등하교가 아닌 회사 출퇴근으로, 생물학이란 전공에 대한 나의 애정은 졸업장으로 갈무리 되었다.
영화 홍보마케터의 일이란 것이 외국 영화의 경우 개봉 전 보도자료를 만들어서 신문, 잡지사에 전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영화 시사회 진행, 프로모션 제휴사 섭외해서 이벤트 진행, 개봉 임박하면 기삿거리 만들고 작성해서 기사 좀 실어달라고 굽신 굽신, 개봉 당일 *종로 3가 극장 거리에 출동하여 개봉관마다 돌아다니면서 분위기와 관객수 체크하고 관객몰이를 위한 행사 진행과 홍보 기사 작성해서 계속해서 돌리는 일이 주 업무다. 한국 영화의 경우 제작을 시작하면서 홍보사가 정해지거나 자체 홍보팀이 움직이거나 하는데 제작 발표회부터 개봉까지 진행되는 과정 과정마다 기사가 될 만한 것들을 계속 양산하고 미디어에 배포해서 관객들에게 사전 인지도와 기대감을 심어주고, 흥행을 위해서는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 내야 하고, 행사도 기획해야 하고, 여차하면 전단지 배포하러 거리로 나가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술이 빠질 수 없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접대와 회식판이 벌어진다.
요즘이야 디지털 미디어를 중심으로 홍보와 마케팅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대중 매체란 것이 신문, 라디오, 잡지가 주요 광고, 홍보 매체였고, 홍보마케터들의 베프는 단연코 매체 기자들이었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판에 뛰어 들었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내가 담당한 영화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열악한 영화판의 현실과 오묘하게 매체와 얽혀있는 홍보판의 실체를 몸소 체험하니 이것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내가 원했던 길인가… 회의가 몰려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과 함께 IMF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나는 백수가 되었다.
감정은 없고 평화만이
무지는 없고 지식만이
격정은 없고 고요만이
혼돈은 없고 조화만이
죽음은 없고 포스만이
이것이야 말로 백수 코드가 아닌가? 이것도 제다이 트레이닝인가요? 근처에 계시면 대답 좀 해주시죠?
*90년대 말 종로3가는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을 주축으로 영화와 극장의 메카였고, 영화 흥행의 척도를 가늠하는 주요 채널이었다. 대형 멀티 플렉스 극장과 OTT의 등장으로 과거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한국 영화의 중요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