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을 하여 어깨뽕이 하늘로 승천하신 것도 모자라 좋아하는 영화쪽 일을 하게 되는 행운까지 얻게 되니,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비상하는 용이 된 것 같은 자신감에 하늘을 날아다닐 기세였으나, 채 제대로 날아보기도 전에 땅으로 고꾸라져 백수의 신세가 되고 나니, “막막”하다는 어떤 기분인지 온몸으로 체감이 되었다.
첫째,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다.
둘째, 밥 먹고 나서 할 것이 없다.
셋째, 아무 생각이 없다.
집에서 눈치주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눈치가 보이고, 할 일없이 빈둥거리는 것 같아 최책감이 들고, 무엇보다도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일을 시작했는데 영화판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영화 일은 더 이상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것 같은 좌절감이 찾아왔다. 이럴 땐 누군가가 뭐라도 하라고 등 떠밀어 주면 좋으련만 왜 늘상 나는 능동태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걸까. 그러던 와중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영.어.선.생.님.
놀면 뭐하니, 뭐라도 해야지. 당시에는 벼룩시장이라는 신문에 구인 광고가 꽤 많이 올라왔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신문을 살펴보다 영어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광고에 시선이 꽂혔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이력서라도 내밀어보자. 그리고 몇일 뒤 시범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시강 주제는 수.동.태.
잠시 수동태의 삶을 꿈꾸었던 나는 또 스스로 등 떠밀어 능동태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초, 중고생을 가르치는 영어 선생님. 너무나도 뜻밖이라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가 누구인가. 카멜레온 K 아닌가. 난생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지만 너무나도 뿌듯하고 흐뭇한 경험이었다. 동료 선생님들도 너무 좋고, 학생들도 너무 좋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타인의 성장을 돕고 응원한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참 가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으니 그때의 그 아이들은 모두 성장하여 그때의 나보다도 더 어른이 되었겠구나.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늘 유난히 더 궁금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