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의 시작

고작 반생을 살았네

by 김선혜

10, 9, 8, 7, 6, 5, 4 3, 2, 1 � 2000년!!!


밀레니엄이 시작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1999년 마지막 밤,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밀레니엄을 맞이했다. 데이 마케팅 따위에 그닥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긴 하나, 그래도 역사적인 21세기는 누군가와 함께 맞이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래, 고독한 선비의 팔자를 타고난 홀로서기 인생, 찬란한 밀레니엄을 홀로 맞이하는 것쯤이야 그냥 일상이지.


PC 통신 시절이 지나고 초고속 인터텟 시대가 도래하면서 IT 기업들이 버블버블, Yahoo!코리아, 다음, 라이코스, 네이버, 프리챌, 파란, 드림위즈… 지금은 대부분 역사속으로 사라진 포털 사이트가 지금의 AI 만큼이나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중학교 때 이미 부팅 디스크를 넣다 뺐다 하면서 운영 체제를 가동시켜야 하는 컴퓨터가 집에 있어서 일찌감치 IT 기술 사용에 눈을 뜬 탓일까, 여기저기서 뽀글거리는 IT 거품들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부글부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신내림을 받은 것처럼 반드시 이걸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운명같은 기운에 이끌려 모 기업에서 하는 IT 아카데미 웹디자이너 과정에 지원서를 냈다. 결과는? 너는 내 운명이니 당연히 덜컥 붙을 수 밖에!


6개월 과정의 수강료가 대학 한 학기 등록금에 육박했지만 그동안 모아둔 쌈지돈을 탈탈 털어 내 미래를 위해 과감히 투자를 했다. 포토샵, 일러스트, 플래시, 에프터 이펙트, 프리미어같은 디자인 툴을 배우고, html 코딩도 마스터 했다. 개인 프로젝트도 하고 팀 프로젝트도 하고, 지금의 구직자, 재직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에는 오프라인 출석이 디폴트라 매일 매일 9시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고, 과제와 프로젝트로 날밤을 새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의 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이렇게 나의 운명같은 인터넷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웹을 기획하고 설계할 수 있는 감각있는 웹디자이너로 인터넷이라는 바다 앞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안되면 차라리 빠져 죽겠다고 선언을 했다. 빠져 죽을 각오로 뛰어들었건만 늦깍이 신입 디자이너를 환영해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100군데도 넘는 곳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건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1개월… 2개월… 계속 시간만 흐른다.


망망대해를 홀로 표류하는 것 같은 이 기분… 이 심정을 누가 알까? 타들어가는 이 속을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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