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내 자신을 알고 준비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 들고, 간신히 꺼져가는 불씨를 유지하며 하루하루 버텨가던 어느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회사의 규모를 떠나 무엇이든 열심히 하자는 의지로 면접을 보러갔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결혼 비디오 촬영 회사, 직원은 사장님, 개발자 1분, 그리고 디자이너 1명을 채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규모를 생각하면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장님의 진정성과 열의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음 날부터 출근을 흔쾌히 수락하고 웹디자이너로서의 나의 첫 걸음마를 시작했다.
내 업무는 회사의 홈페이지 디자인과 운영, 사장님이 촬영해 온 웨딩 영상을 뮤직 비디오로 만들고, 완성된 비디오를 CD로 굽고 CD 자켓 디자인까지 제작하는 일이었다. 신생 회사다 보니 간판 디자인, 명함 디자인도 하고, 말은 직원인데 월급받는 동업자같은 기분이랄까? 지금으로 치면 스타트업인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럴듯한 레이블이 없다 보니 직원 3명인 듣보잡 신생 회사였지만 나름 디자이너같아 보이는 사장님의 패션 스타일 때문인지 잘 만든 홈페이지 디자인 때문인지(?) 회사를 유지할 정도의 적당한 일거리가 조금씩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업은 웹디자이너지만 웨딩 비디오 편집도 나름 재미있었다. 촬영 영상을 보고 스토리텔링을 생각해서 편집을 하고 영상에 어울리는 배경 음악을 넣고, 엔딩 피날레까지! 내가 만든 작품이긴 하나 타인의 소중한 웨딩 영상이기에 개인 포트폴리오로 소장을 하진 못했지만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내가 편집한 영상 속 그 분들은 지금 잘 살고 계실까..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첫 걸음마를 할 수 있게 해 준 회사에서의 인연은 아주 오래 가지는 못했다. 웹디자이너 모임에서 만난 지인의 러브콜을 받아 지금으로 치면 커머스라는 카테고리의 패션 쇼핑몰로, ABC마트, 유니클로, 뉴발란스 같은 브랜드들이 국내에 없던 시절에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는 한정판 상품들을 소량 판매하는, 지금으로 치면 온라인 편집샵의 웹디자이너로 또 한 발짝 내딛게 되었다.
물론 이 곳에서도 웹디자인만 하지는 않았다. 웹 기획도 하고, 이벤트와 프로모션 기획도 하고, 상품 등록, 주문 접수, 박스 포장, 배송 등 온/오프라인 전반의 운영 업무에 동참해서 쇼핑몰을 만들고 성장시키는 과정을 함께 했다. 안타깝게도 무리한 확장으로 폐업을 하게 되었지만, 살아 숨쉬는 운영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본래의 컨셉을 퇴색시키는 욕심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의 부작용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금로 치면’, ‘지금으로 치면’.. 마치 ‘라떼는’과 유사한 용어가 계속 반복 노출되어 내 연식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 나도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지만, 아시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