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11화
매년 새해가 되면 달력에 챙기고 싶은 사람들의 생일을 표시한다. 챙겨야 하는 사람이 아닌 챙기고 싶은 사람들만 챙기면 된다는 진리를 반생을 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일등은 당연히 가족이고 그 다음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들이다. 하는 일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다 보니 가뭄에 콩 나듯 메신저로 안부를 묻고 만날 결심을 해야 얼굴을 볼 수 있는 친구들이지만, 언제 말을 걸어도 아무 거리낌없고, 언제 만나더라도 어제 만난 것 같고 헤어질 때도 내일 다시 만날 것 같은 그런 친구들, 그런 참좋은 친구들을 참좋은 회사에서 만났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회사 이름이 “참좋은”으로 시작하는 회사였다.
쇼핑몰이 폐업하고 마지막 월급은 사용하던 컴퓨터와 쇼핑몰에서 팔던 물건들을 알아서 챙겨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또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하는구나… 이력서를 정리하고, 채용 공고를 찾아보고, 처음 이 업에 뛰어들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불안이 스물스물 다시 몰려 오려 할 때 즈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첫 조카가 태어났다. 그래, 이참에 맘 편히 쉬어보자! 언니의 산후 조리를 돕고, 조카의 똥귀저귀를 빨면서 마음의 평화를 다시 찾아 갈 즈음, 면접 연락이 왔다. 그리하여 참좋은 회사와 연을 맺게 되었고, 디자인 에이전시 업계에 당당히 첫 입성을 하게 되었다.
홍대 입구 근처 빌딩 18층에 위치한 사무실. 통유리 창 너머로 한강 뷰가 멋지게 펼쳐져 있고, 디자인 회사라 인테리어도 멋지고, 책상도 남다르고..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크리에이티브가 그냥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 갑자기 신분 상승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직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회사 이름처럼 참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나도 참좋은 사람?
나는 기획자로 입사를 했고, 내가 입사한 비슷한 시기에 기획자가 1명 더 합류했고, IT 아카데미 절친도 나의 추천으로 입사를 하고, 절친과 같은 부산 출신 디자이너까지 총 3명이 더 입사를 했다. SH, SY, SK, SA, 우연인지 필연인지 비슷한 시기에 같이 모인 사람들이 모두 S로 시작하는 이름이었고, 마치 오래된 친구들을 만난 것 같은 편안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일할 때의 궁합도 찰떡이었다. 삶의 가치관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취향도 비슷하고, 일도 너무 잘 하는 이 친구들이 내가 챙기고 싶은 20년 지기 내 친구들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생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다. 이해 관계라는 틀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같은 회사있고 같이 프로젝트를 할 때는 함께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길기 때문에 친구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회사를 떠나거나 서로가 처한 상황이 달라지면 대면대면해질 수 밖에 없다. 참좋은 회사와의 인연은 고작 1년이었지만 참좋은 회사가 내게 남긴 건 참좋은 20년 지기 친구들!
나는 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참좋은 회사에 간 걸까? 참좋은 회사에 가서 이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걸까? 연말도 되어 오고, 오랜만에 안부 인사라도 해야겠다. 다들 잘 들 지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