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고작 반생을 살았네 12화

by 김선혜

19살이 꽉 차 20살이 되어갈 때 즈음, 나는 내 얼굴을 처음 보았다.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때 이미 시력은 0.4/0.5. 자꾸 앞으로 가서 TV를 보던 아이를 혼내기만 했던 엄마는 뒤늦게 마음 아파하셨다고 한다.


나의 안경잡이 인생은 8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어 19살 대학교에 당당히 합격하기까지 계속 되었고, 고도 근시 안경을 통해 보여지는 자그마한 눈을 가진 통통한 내 얼굴, 다소 범생이같고 못생긴 내 얼굴이 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합격을 하고 나서야 부모님은 나에게 콘텍트 렌즈를 사 주셨고, -8.0/-8.5 범생이 안경에서 탈출한 나는 난생 처음 진짜 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은 채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 각막 이식 수술을 하고 처음 눈을 떴을 때, 갑자기 밝아진 세상과 처음보는 모든 것들이 오히려 두렵고 무섭게 느껴졌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거울 앞에 선 나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분과 나를 직접적으로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난 지금 거울 앞에 서 있는데 거울 속에 있는 나는 그동안 내가 봐왔던 내가 아니다. 넌 누구니? 내 스스로가 내 얼굴에 적응하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이야 일회용 렌즈가 많이 저렴하게 보급되어 하루 착용한 렌즈를 아무런 죄책감없이 휴지통에 과감히 버리지만 당시만 해도 콘텐츠 렌즈는 안경처럼 장기간 사용하는 안경 대용품이었고, 나에게는 상당히 비싸고 번거로운 사치품이었다. 리뉴와 같은 단백질 제거와 세척을 한 번에 해주는 제품도 없었고, 단백질을 제거해 주는 용액과 식염수를 함께 사용해서 매일 세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단백질 제거제를 사용해서 다시 깔끔히 렌즈에 쌓인 단백질을 제거하고 식염수에 렌즈를 담궈 열소독까지 해야 다음 일주일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자칫 조금이라도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면 바로 눈병이라는 고통이 찾아오는데 사실 눈병보다 더 무서운 게 다시 그 두꺼운 안경을 끼고 외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쪽 눈에 눈병이 걸리면 렌즈를 한쪽만 끼고 다니기도 했다. 양쪽 눈의 시력이 극과 극이니 걷는 것도 사물을 보는 것도 고난도의 서커스를 하는 기분이었지만 곧 죽어도 다시 범생이 안경을 끼고 싶지는 않았다.


안구건조증에 시달릴지언정 라식은 하고 싶지 않아!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의 유교사상을 쓸데없이 고수하며, 어언 30년, 아무도 내가 군대도 면제받을 정도의 고도 근시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콘텍트 렌즈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데, 왜! 어찌하여! 21세기 AI가 판치는 이 시대에도 눈이 작아지지 않는 고도 근시 압축 렌즈는 발명되지 않는 걸까? 나는 언제까지 순식간에 내 눈이 콩알만해지는 매직쇼를 하며 함께 여행 간 친구들과 지인들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걸까? ���

이전 11화참좋은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