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고작 반생을 살았네 13화

by 김선혜

“내 한 몸만 책임져도 되는 시절에는 내 인생이 어떻게 되든 별로 두려울 게 없었는데, 내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니 두려운 게 많아져.”


언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책임감이란 무게가 가져오는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 전 언니는 본인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아무 생각도 아무 계획도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같아 보였다. 한 때는 그런 인생을 사는 언니가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고리를 의도적으로 끊어내는 연습을 해야만 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뇌구조를 가진 언니가 참으로 신기했고, 나와 다른 전지적 능력을 가진 언니가 새삼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는데, 부러우니 더 짜증이 났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도 못할 것 같았던 언니는 결혼을 하여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어린 아이에게 알러지가 있던 나는 조카를 볼 때마다 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까꿍’을 연사하는 이모가 되었다.


그래도 난 이모니까, 난 엄마는 아니니까 내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꼬물이들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나의 소중한 인형 곳간을 스스로 내어주게 될 줄이야… 토이 스토리 우디의 부츠 한짝이 실종되어도, 몬스터 주식회사 설리반의 태엽이 고장나서 팔을 들어올리지 못할 지경이 되어도 나는 마냥 행복했다. 내 인생 최고로 자애로웠던 시절, 나를 돌아보며 가장 많은 반성을 했던 시절,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조카들을 보며 내 인생을 성찰하게 될 줄이야…


혈연 관계로 돌봐야 하는 아이들은 없지만 사회적 관계로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혈연 관계로 맺어진 책임감의 무게와 사회적 관계로 맺어진 책임감의 무게를 단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업에 있다 보니, 맡아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나 임무의 개념보다는 삶의 연장 선상에서 사람과 일을 바라보게 되고 자발적인 책임감이 발동하게 된다. 자녀가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지나친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자율적으로 일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할 때 개입할 줄 아는 지혜로움과 일을 일로서 바라보며 공사를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함 또한 필요하다. 한 사람만의 책임감만으로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없듯이 한 구성원의 책임감만으로 지속 가능한 조직의 발전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이 있어야만 건강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시절 나는, 자라나는 꼬물이들을 보며 소크라테스도 울고 갈 정도로 깊은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땅굴파고 지상으로 나오시게. 누가 내 등에 풍선이라도 좀 달아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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