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15화
생물이 좋아서 선택한 생물학 전공, 고등학교 주입식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학교 주입식 교육에, 전공에 대한 흥미는 입학과 동시에 순식간에 날아갔고, 무사히 졸업을 할 정도의 학점만 간신히 유지하며 비싼 등록금 내고 학사 졸업장을 거머 쥐었다. 어찌되었건 학점을 받기 위한 일말의 노력은 있었기에 잔디깔고 학사 졸업장을 획득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력서 학력란에 ‘학사’를 써 넣으려고 나는 4년이라는 시간과 돈을 투자한 걸까? 전공과 전혀 다른 영화 산업과 디지털 디자인 분야 종사하며 과연 내 인생에 있어 대학교 4년은 어떤 의미일까 곰곰 생각하던 차에, 생각이 지나치면 삼천포로 빠진다고 불연듯 ‘대학원’이라는 키워드에 다다르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대학 4년도 제대로 공부 안 한 놈이 무슨 대학원이냐… 내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을 퍼부어 댔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의지는 점점 불타 올랐고, 내 인생에 있어 4년제 대학교 졸업장이 대학원을 갈 수 있게 해 주는 또 하나의 쓸모로 작용하게 될 줄이야, 기왕이면 학점이라도 좀 더 잘 받을 걸 그랬나…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쳐 지나갔다.
당시 나의 고민은 직장을 그만두고 풀 타임으로 HCI 공부를 하기 위한 대학원 진학을 할 것이냐, 아니면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 MBA를 갈 것이냐 두 갈래 길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고, 결론은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유인 즉슨, 박사까지 염두에 둔다면 모를까 단순히 석사만을 위해 2년 반,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한창 일이 재밌던 시절이라 일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HCI 다음으로 관심있었던 MBA 전략 경영 전공으로 진로를 선택하고, 해당 대학원의 교수님을 찾아가 지금으로 치면 커피챗같은 면담도 하고, 그 길로 바로 행동으로 돌입, 얼마나 치열한 경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수님의 12인의 제자 중 1인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반드시 칼퇴하고 학교로 달려가야 했고, 과제에, 시험에, 지나고 보니 어찌 그걸 다했나 싶은데 그래도 대학교보다는 훨씬 더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서 가방끈이 좀 더 길어지게 되었다. 인생이란 참 모를 일이다. 그닥 공부에 취미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에는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란 걸 하게 된다. 그리고, 부모님 덕에 그나마 학사라는 가방끈을 손에 쥐었다 생각했는데 내 스스로 가방끈을 늘이는 짓을 하게 될 줄이야... 나도 내 자신에 놀랄 노 자다.
대학 졸업을 앞 둔 대학생들, 오랜 취업 준비로 방황하는 취준생들, 회사를 다니면서 가방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 아무런 목적없이 목표없이 그냥 대학원이나 가볼까를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원 학비도 공부도 만만치 않으니 그냥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가는 허덕허덕이다 중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공부에 뜻이 없어도 좋지만 그러면 적어도 2년 반 투자해서 석사 졸업증을 산다는 일념으로라도 임한다면 그래도 시간과 노력에 대한 값어치는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