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16화
난 헐리우드 키드다.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서슴없이 스타워즈를 이야기했고, 줄줄이 외어대던 감독들과 배우들의 이름도 모두 헐리우드 출신 거장들이었고, 헐리우드 영화 속 배우들이었다. 물론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홍콩 느와르를 탐닉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왕가위 감독의 등장으로 잠시 홍콩 영화의 매력에 다시 빠져 지냈던 시절이 있긴하나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를 통틀어 9할은 헐리우드 영화라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지금은 그 자리를 넷플릭스가 빼앗은지 오래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리 본 영화를 또 보는 것이 재밌었는지 비디오를 한 번 빌리면 2번 보기는 보통이고, 3번은 보고 반납해야 본전을 뽑는 것 같았고, 3번을 봐도 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고 새로운 재미가 느껴졌다. 지금 토이를 사모으 듯 소장용 비디오 테이프를 사 모으던 시절이 있었고, DVD 시절을 거쳐 AVI 파일로 VOD를 즐기는 시대에 이르러 미드와 영드가 물밀듯이 한국 시장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불법 다운로드(캐쉬를 구매해서 파일 다운로드를 받았으니 나름 좀 억울한 감이 있긴 하나 어찌되었는 합법적인 유통은 아니었으니...)로 드라마와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아마 드물지 않았을까... 남들이 프렌즈를 열렬히 시청할 때 나는 주로 심리 스릴러물, 수사 추리물, 퇴마 판타지에 열광했는데 최근 OTT에 올라온 시리즈물들을 다시 봐줘야 하나 싶어 마이 리스트에 담아놓긴 했는데 아직 정주행을 하지는 못했다.
영화를 사랑했던 헐리우드 키드가 영화 홍보마케팅으로 쓰라린 첫 사회 생활을 경험하고, 영화는 고로 즐기기만 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은 후, 웹이라는 새로운 직종으로 전환한지 5~6년이 되어 오던 때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헤드헌터를 통해 씨네21 온라인 팀장 자리를 제안받게 되었다. 당시 씨네21은 영화 주간지 시장에서 탑이었고, 영화판을 떠나도 씨네21은 매주 가판대에서 정기구매를 해오던 잡지였다. 내가 그 회사에 입사를 한다고? 한 치 앞 인생도 모른다더니 10년전에 영화 홍보한다고 왔다갔다 하던 한겨레 신문사에 온라인 팀장으로 입성하게 될 줄이야.
오프라인 세계에서 탄탄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신문사에서 온라인의 역할이란 고작 포털에 헐값으로 컨텐츠를 판매하며 부가적인 수익 모델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당시 신문사, 잡지사들이 자체 DB를 구축하고 온라인 사업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시기였는데, 기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값진 컨텐츠를 월 300, 500으로 납품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포털에 이의를 제기하는 언론사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것이 매거진 T, 엔터와 드라마 중심의 컨텐츠를 온라인으로만 서비스하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면서 씨네21에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컨텐츠를 돈을 내고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어도 수익을 내기 어려워 근근히 사업을 유지하다 인수되거나 폐업을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였다. 컨텐츠 유료화가 처음부터 뿌리를 내렸으면 좋았으련만... 그나마 지금이라도 구독 문화가 자리를 잡아 컨텐츠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바람직한 세상이 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문화를 만드는 데 OTT가 한 몫을 했고,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료화의 칼을 빼들고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온 컨텐츠 제작자들과 사업자분들께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아직은 이렇게 소셜 채널에 끄적끄적 글을 쓰는 재미에 취해 정식 ‘작가’라는 타이틀로 ‘유료’를 선포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좋아하는 팬들이 생겨서 글 쓰는 일을 밥벌이로도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흐뭇한 상상을 해 보곤 한다. 언젠가가 조만간이 되면 더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