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고작 반생을 살았네 17화

by 김선혜

도시락 dosirak을 아는 분들이 계시려나?

지금과 같이 010 휴대폰으로 전국민이 대동단결되기 전에 SKT는 011, KTF는 PCS폰 기반 016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했다. KTF의 첫 알파벳 두 글자에서 느껴지듯이 KTF의 모회사는 KT였고, 도시락은 KTF에서 런칭한 온라인 음악서비스였다. 지니 뮤직의 전전전신이라고 해야 할까? 당시에는 패킷 단위로 데이터 요금을 부과하던 시절이라 모바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스트리밍은 PC에서, 모바일로는 MP3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MP3 플레이어에 넣어서 듣곤 했다.


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KTF뮤직의 도시락이었는데 KTF가 KT로 통합되어 올레(olleh)로 재브랜딩을 하면서 덩달아 올레 뮤직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정권의 변화가 몰고 온 조직개편의 피바람이 한차례 몰아치고 간 자리에는 층층시하 새로운 식구들이 자리를 했다. 피바람이 몰아치던 날, 내 직속 상관은 출근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마치 화마 속에 홀로 남겨진 전쟁 고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일상을 살아 나가야 했다. 물론 내 업무에도 변화가 찾아왔는데, 음악 포털 서비스 기획에서 마케팅으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이벤트, 프로모션, 광고 집행 같은 업무들이 주어졌고, 전혀 낯선 업무는 아니었기에 일을 하는데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영화만큼이나 음악을 좋아했기에 음악 서비스를, 그것도 디지털 음악 포털 서비스를 운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나에게는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음악이 디지털화되면서 1곡의 음악이 스트리밍될 때, 1곡의 음악 파일이 다운로드될 때 그 음악과 관련된 저작권자, 실연권자, 제작자 간의 수익 분배에 따른 이해관계 구조를 보면서 정산 정책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등 매장에서 플레이되는 음악 패키지를 판매하는 B2B 사업 모델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도 향후 디지털 음악 시장에 대한 전망을 논하며 서비스와 마케팅을 함께 바라보며 기획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MP3 파일의 소유의 종말을 예견하며 스트리밍 서비스의 다변화를 강력히 주장했었는데… 쩝… 시대를 약간만 앞서갔을 뿐인데 당시에는 씨알도 안 먹혔던 기억이 떠오른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무제한 데이터 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 디지털 음악 서비스 기획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대기업의 자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고, 일이 좋고 재미있으면 뭐든 다 감당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가 속한 조직의 환경과 문화라는 것을 조직개편의 쓰나미를 겪고 나서야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일은 재미있지만 매일매일 숨통이 조여오는 이 기분은 뭐지? 조직을 박차고 나온 후에야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조상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요즘 후배들에게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조언과 더불어 나에게 맞는 조직문화를 찾아가라는 이야기도 늘상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좀 오지랖이 넓고 자율을 지향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면 거대 조직보다는 좀 더 작은 규모의 조직, 그리고 최대한 정치가 덜한 조직을 찾아 가시라 이야기드리고 싶다.


나의 결말이 어찌되었냐고? 전쟁통을 겪고 살아 남긴 했지만 9개월 정도 생존자 증후군 상태로 일하다가 마지막 생존자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퇴사를 했다. 그 길로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배낭 하나 둘러메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길을 떠났지요. 그럼, 다음 연재에는 첫 지리산 둘레길 추억 팔이를 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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