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18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것 같은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감행한 퇴사. 그런 딸의 모습이 엄마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는지 엄마는 뜬근없이 책 한권을 선물로 주셨다. 제기랄.. 부부싸움을 해도 밥은 차린다는 엄마의 철학을 대변이라도 하듯 책 제목도 참 잔인하다. 생. 존. 력.. 힘든 회사 생활 끝에 퇴사한 딸에게 주는 엄마의 선물이라니..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호한 책을 받아들고 홀로 지리산 둘레길 하이킹을 떠났다.
당시에는 남원 ~ 함양을 가로지르는 5개 코스가 개통되고 나머지 구간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던 시기라 이래저래 선택해서 갈 코스도 없었거니와 뭔가 첫 시작은 1코스부터 하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여 40리터 배낭에 4박5일 생존할 짐을 챙겨 무작정 남원으로 내려갔다. 백두대간의 중심이자 수많은 봉우리와 계곡으로 이루어져 산세가 깊고 험해 빨치산의 근거지로 사용되었던 지리산을 감히 종주해 보겠다는 엄두는 나지 않아 지리산행을 망설이고 있던 차에 둘레길 정도쯤이야, 꿀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걷는 거 하나는 자신있으니 묵직한 배낭을 짊어지고 첫 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시작은 수월했다, 둘레길이니까.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왜 등산을 하고 있는거지? 길을 걷는다 하여 집에서 가장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가장 편한 청바지를 입고 왔건만 길은 생각보다 편하지 않았다.
‘지리산 둘레길이 맞나?’에서 시작한 의문은 ‘둘레길이라메…’라는 원망으로 이어지다 ‘지리산 둘레길이란 산의 둘레를 걷는 길이니라’라는 해석에 이르러 마음의 평화를 찾고 ‘옹…’ 급기야 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음.. 앞으로 이런 길을 4코스나 더 걸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 어깨엔 40리터 배낭이 있다. 고작 40리터 배낭이 인생의 무게만큼 힘겹게 나를 짓누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무거운 건 무거운 거다.. 이러니 도의 경지에 이를 수 밖에… 엄마가 왜 나에게 <생존력>이란 책을 주셨는지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또 한번의 깨달음을 얻는다. 시골 마을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길이 산으로 이어지고, 잠깐 한눈 판 사이에 표지판을 지나쳐 잠시 길을 잃기도 하고, 주천-운봉(14.7km), 운봉-인월(9.9km), 인월-금계(20.5km), 금계-동강(11km), 동강-수철(12km),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가로지르는 장장 70km의 대장정(?)에서 나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팔팔해져서 서울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삶이 힘들고 속세와의 단절이 필요할 정도의 응급 처방이 필요할 때마다 훌쩍 길을 걸으러 떠나는 아주 건전하고 건강한 취미를 갖게 되었다. 한 때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깨달음을 얻겠다고 산티아고로 몰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에 가면 깨달음이 훅 나에게 그냥 주어질거라는 참으로 어리석은 기대감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너도나도 하는 말이, 깨달음은 커녕 힘들기만 하다고 원망섞인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깨달음이 무슨 산티아고 패키지 상품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깨달음이면 깨달음이 아니지요. 육체의 힘듬을 생존의 에너지로 전환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어야 깨달음이 찾아오기 시작한답니다. 팔정도(八正道, Noble Eightfold Path)—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을 통해 번뇌를 떨치고 지혜를 얻어 도의 경지(Nirvana)에 이르러야 깨달음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깨달음을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다고 할 수 있겠지요. 깨달음은 얻는 게 아니라 찾는 겁니다.
자, 그동안 반생의 길을 달려왔으니 이제 좀 걸어도 되겠지요?
대한민국 전국 둘레길 개통 이후로 해파랑길과 서해랑길은 종종 걷고 있는데 대한민국 둘레길 걷기도 다시 시작해야겠네요. 어쩌다 종주(brunch.co.kr/magazine/storywalker)에서 대한민국 둘레길 걷기를 가뭄에 콩나듯 연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걸어볼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