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22화
“가방 안에 김치 있어요?”
공항 보안 요원이 양손 묵직한 캐리어를 쳐다보더니 농담 반, 진담 반 웰컴 그리팅(welcome greetings)을 날린다. 보통 외국에 나가면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LA 공항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한국인으로 알아봤다는 것에 가산점을 주고, 질문이 참 참신하여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I’m afraid I don’t have Kimchi.”
한국에서 남가주 대학이라고 불리는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기숙사 짐을 풀고 오~랜만에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첫 독립이자, 첫 타향살이인 미국살이를 시작했다. 학교 부설 어학원에 대학원 준비 과정이라 일반 ESL 코스보다 커리큘럼이 탄탄하고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과정이 대학 전공 수업 듣는 것처럼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영어식 사고방식과 문화를 접하며 공부를 하니 새로운 영어 학습의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내돈내투 늦깎이 학생이다 보니 부모님의 은덕을 입고 유학길에 오른 한참 어린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일 수밖에 없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보다는 안 하는 친구들의 비율이 더 많음에 나도 모르게 어른으로서의 한숨이 나오긴 하더라. 1월에 입학해서 8월 초까지 진행되는 봄, 여름학기 과정을 수료하면서 대학원을 진학하고 몇 년 더 눌러앉을 것이냐, 1년 살이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결국, 1월 초 귀국하는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홀가분하게 미국 여행을 떠났다.
샌디에고부터 시작해서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3개 주에 있는 그랜드, 앤텔롭, 아치스, 브라이스 캐니언과 그 외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동부로 날아가서 시카고, 워싱턴 D.C., 뉴욕, 보스턴 5개 도시 투어까지 1개월 동안 여행을 하고, 거취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4개월 간의 종일반 어학원 생활을 하고, 미국땅을 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 여행을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시애틀에서 2016년의 마지막 밤과 2017년 새해를 맞이한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캘리포니아에서 현지인으로서의 삶, 9개 주 9개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자로서의 삶, 그리고, 오랜만에 행운처럼 다시 찾아온 학생으로서의 삶, 1년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기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참 많은 것을 배웠고, 참 많은 것을 깨달은 내돈내투가 아깝지 않은 1년이었다.
40대 초에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나 1년 살이를 하고, 막판에 망막에 빵꾸가 나서 귀국 전 수술 일정 잡고, 귀국하자마자 다음날로 수술실로 직행한, 인간 극장이나 인생 다큐멘터리 같은데 나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1년 살이를 하고 왔는데,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잘한 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꽤 지나긴 했지만 좌충우돌 1년 미국살이 연재도 조만간 해볼까 싶다.
고작 1년의 미국살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공부한 영어가 아까워 지금까지도 영어를 놓지 않고 꾸준히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미국살이가 나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 꾸준함! 그래서 지금도 나만의 루틴들을 만들어서 꾸준함을 실천하고 있다. 자, 2026년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혹시라도 잠시 한눈팔고 계셨다면 다시 꾸준함의 궤도에 올라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