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미국행 (1)

고작 반생을 살았네 21화

by 김선혜

2016년, 나이 42살에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행을 선택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굳이 회사를 그만 둘 이유가 전혀 없었다. 프로젝트는 승승장구, 프로젝트팀이라 하기에는 다소 거대한 거의 40여 명 규모의 팀을 이끌면서 프로젝트 매니저, UX 디자이너로서도 인정받고 있었고, 회사 매출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상황에 “박수 칠 때 떠나라.“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의 소리가 계속 나에게 ”이제 그만 떠나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1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유학센터에 가서 상담받고, 대학원 과정을 준비하는 어학 과정인 Pre-master program에 등록하고, 비자 발급을 위한 준비를 하고, 비자가 리젝 될 수도 있는 리스크가 있긴 했지만 프로젝트 규모가 크다 보니 적당한 후임자를 잘 뽑으시라 회사에 미리 이야기도 해야 하고.. 연초부터 준비를 해서 드디어 10월, 한방에 5년짜리 학생 비자를 받았다. 가장 최악의 조건인 40대 여자 싱글, 1년 공부하고 돌아온다는 증빙을 포함하여 나는 너희 나라에서 절대 불법으로 체류하지 않을 것이라는 온갖 증빙자료들을 챙겨서 인생에 가장 모멸감이 느껴지는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무사히 통과하고 나니, ‘아, 이거 정말 떠나라는 신의 계시인가?’ 마음의 소리가 보내온 신호에 정당성을 찾기 위한 온갖 이유들을 갖다 붙이며 혼자 자축을 했다.


대학교 다닐 때 가고 싶었던 어학연수를 이제 가나 싶기도 하고, 기회가 되면 대학원 과정에 진학해서 공부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반드시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집착을 절대 하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우선은 “1년 살아보고 결정합니다!“ 땅! 땅! 땅!


말로만 듣던 이민 가방에 한국에서 반드시 공수해 가야 하는 여성용품들, 당장에 가서 쓸 생필품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1년 치 콘택트렌즈--미국은 한국과 달라서 안 질환을 치료하는 안과의사(ophthalmologist)와 시력 검사를 하는 검의사(optometrist)가 구분되어 있고, 의사 검진 진단서가 있어야 콘택트렌즈와 안경을 맞출 수 있다--그리고, 옷가지들... 처음 떠나는 타향살이라 좀 너무 많이 챙기긴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쌀과 한국 음식에 집착하지 않아 남들처럼 한국 음식을 공수하지는 않은 게 그나마 다행.. 그리하여 좌 32인치 캐리어, 우 이민가방을 양손으로 달달달 끌면서 미국땅을 밟았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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