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하다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고작 반생을 살았네 20화

by 김선혜

과로로 인한 사망이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건강을 자신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하루에 2~3시간 자고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해도, 며칠 날밤을 새도, 정시 퇴근 한 사람처럼 정시에 출근하여 책상머리를 지키고 일해야 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삶이 참 고되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잔병치레 하나 없이 버텨주는 내 체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스스로 감탄했다. 물론 매일 샷 추가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고서 흘러내리는 다크 서클을 끌어올리며 뇌의 각성 상태를 유지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르긴 했으나, 에스프레소 수준의 커피를 들이켜도 불면으로 밤을 지새워 본 적 없고, 머리를 베개에 대기만 하면 바로 수면 상태로 들어가니, 뭐 그냥 수면량이 좀 부족해서 아침에 좀 많이 피곤한 것 말고는 크게 아프거나 불편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5개월을 버티니 약간의 안면 마비 증세와 함께 혈액 순환 장애로 다리 부종도 심해지고 급기야 면역력 저하로 생전 없던 아토피까지.. 여기저기 몸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코, 이러다가 어느 날 책상에 머리를 박고 세상과 이별할 수도 있겠구나!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야근하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프로젝트 파견지 근처 피트니트 센터를 향해 달려갔다. 불과 프로젝트 론칭을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돈을 내고 운동을 한다는 것은 내 사전에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운동할 곳은 천지에 널렸는데 굳이 비싼 돈 내고 실내에서 운동을 한다고? 게다가 퍼스널 트레이닝이 웬 말이냐? 게으르고 의지박약 한 사람들이나 찾는 곳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스스로, 그것도 내 발로 피트니스센터를 찾아갔다. “운동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제가 3개월 후면 파견지에서 철수를 하는데… 그래서 말인데… 연간 회원권 등록은 안 하고 PT만 3개월 등록할 수 있을까요?” 이 상황에서도 프로젝트 매니저 기질이 발동하여 현실에 입각한 협상을 하기 시작했고, 상담하시는 분도 짠하게 느끼셨는지 나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래서 그날로 퍼스널 트레이닝까지 등록하고 생존을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물론 저녁 식사를 반납하고, 1시간 운동을 하고 돌아와 다시 야근을 해야만 했지만 그래도 그 한 시간이 나에게는 생명 연장을 위한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프로젝트는 15일이 연장되어 8.5개월로 종료를 했고, 나는 운동 전도사가 되어 귀환을 했다. 본사에 와서도 회사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등록을 하여 계속 PT를 받았고, 회사 동료들에게까지 널리 전파시켜 함께 운동을 다녔다. 그러나 몸의 건강은 되찾은 듯했으나 마음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결국 회사에 무급 휴가를 간청하기에 이르렀고, 간신히 허락을 얻어 무기한 한 달 휴식에 들어갔다. 요즘으로 말하면 ‘번아웃’이라는 증상이 찾아온 것인데, 당시에는 그런 용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신 상태가 약해빠졌다는 이야기만 듣기 십상인 그런 시대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도 아니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주영 회장님 정신이 내 인생철학도 아니고, 그래봤자 2010년대 초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던 시기인데 나는 왜 그리 몸도 마음도 부서질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을까. 좋아하는 일이라? 잘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서?


2주 정도 지나고 나니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고, 어렵게 받아낸 한 달 무급 휴가의 반을 반납하고 다시 일을 하러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회사도 참 너무했다 싶고, 나도 나한테 참 너무했다 싶네. 아직 반생도 채 못 살았는데 일만 하다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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