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리라이터 Jan 01. 2016

중국여행가로 두 번째 인생 사는 중국통 윤태옥

중국역사여행가, 중국통 작가, 중국인문역사 강연가로 삶 확장

'석세스 스토리를 쫓아가면 안된다' 왕초 윤태옥이 그의 삶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다. 마흔 여섯부터  그의  화두이자 좌표는 중국이었다. 그 전까지 치열하게 쌓았던 커리어를 싹 버리고 제로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를 알게 된 건 블로그였다. '왕초 윤태옥의 왕초일기 인문기행 중국(blog.naver.com/kimyto)' 의 포스팅 갯수는 5700여개가 넘는다. 2003년부터 시작해 쉼 없이 자신의 지식, 경험, 느낌을 매일매일 올렸으니 블로그는 윤태옥의 아바타인 셈이리라. 글은  그 사람의 껍데기와 속살까지 정직하다 못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가 쓴 포스팅을 하나씩 읽으며 사색과 고민의 깊이, 삶을 대하는 치열한 자세, 자랑거리, 소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의 석세스 스토리를 쫓지 말라

거대 중국을 동서남북으로 쪼개 두 발로 구석구석 훑었다. 실크로드, 황하발원지, 삼국지 무대, 마오쩌둥 대장정, 타클라마칸 사막 기행 등 테마가 분명하고 뚜렷한 기행기의 값진 사진, 정보, 찰나의 느낌이 오롯이 저장돼 있는 블로그는 미스터 왕초의 데이터베이스이자 베이스 캠프다.


 그에게 꼭 묻고 싶었다. 왜 중국을 파고드는가?, 40대 중반까지 쌓아온 아까운 커리어와 아듀를 고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힘은 무엇인가?


 답을 찾기 위해 만난 그는 아담하면서 탄탄한 체구를 가졌다. 1년의 절반은 한국에서 절반은 중국을 여행중인 그에게 체력은 필수. 암사동 집에서 아차산을 늘 오른다는 그에게서 철두철미한 자기 관리의 고집이 엿보였다. 유머 코드를 녹여낼 줄 아는 논리적인 달변가인데다 발군의 추진력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눈빛이 맑았다. 나는 낯선이와 만날 때 눈을 뚫어져라 마주치며 눈빛부터 살피는 버릇이 있다. 경험 상 깊고 또렷하고 힘 있는 눈동자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중국통으로 두번째 인생을 사는 그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생활의 텃밭을 일군 첫 번째 인생을 차근차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 엘리트 커리어 내던지고 제로부터 시작한 용기 

성균관대 사회학과 졸업 후 방송위원회에 입사한 그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빠른 승진을 거듭해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케이블TV 시대가 열리자 음악전문채널 M.NET으로 옮긴 윤태옥. 케이블 개국 초창기 시절, 구성원들의 끼와 열정은 넘쳤으나 시스템 정비가 필요한 시점에 그는 기획국장, 편성국장을 거치며 방송국의 체계를 잡아나갔다고 한다. M.NET의 모기업인 CJ가 추가로 푸드채널 론칭을 준비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팍스TV 총괄 부사장, 팍스인슈 대표이사까지 숨가쁘게 직선 인생을 살았다.  미디어 엘리트로 보낸  이 시간 동안 치밀함과 추진력, 콘텐츠의 감을 갈고닦은 듯 싶다.


40대 중반 인생 나침반을 중국에 맞추고 제일 먼저 시작한 건 중국어 공부였다. 먼저 한국에서 젊은이들과 뒤섞여 어학원 집중코스를 이수한 뒤 북경으로 건너가 1년 어학코스를 밟았다. 그 당시 심경을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밝혔다.


"낡은 능력을 조금씩 보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외국어를 배우는 의미는 뭘까? 그 사람의 인생무대를 넓히는 일이다.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고 사람 사는 것의 다양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여행이든 사업이든 생활이든 그 사람의 존재영역을 넓히는 거다." 


찌릿하게 와 닿는 말이다. 그를 만난 뒤 나도 내 인생무대를 넓히고 싶다는 욕심을 품고 먼지 뽀얗게 쌓인 어학책을 꺼내들고 짬짬이 공부하는 중이다.



여행에서 발견한 '살아있는 중국학'

중국의 껍데기만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에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5천년 역사 동안 가장 많이 교류한 중국을 우리는 표피적으로만 안다. 중국인들은 돈만 밝히고 더럽다거나 1당 독재의 후진적인 정치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깎아내리는가 하면 경제, 군사 대국 중국 파워에 지레 겁먹기까지 한다. 세계 무대에서 잠시 퇴장했다가 21세기에 초강대국으로 부활한 중국을 담담한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거대 대국을 이웃으로 둔 우리는 중국을 종적으로 횡적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중국인들의 허술한 위생 관념은 경제 성장통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하며 중국의 정치는 공산당 1당 독재지만 10년 마다 지도자들이 물갈이를 깔끔하게 완성할 수 있는 이면에는 체계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편 중국을 공자, 맹자 시대의 고전지향적인 잣대로만 이해하는 것도 경계했다.


중국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 두 발로 훑는 그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중국의 인문역사기행가로서 우선 의식주부터 파고들어 <중국음식기행-중국식객>, <중국민가기행-당신은 어쩌자고 허락도 없이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란 책으로 정리했다. 그 뒤 실크로드 역사기행, 탁발선비, 북방초원, 황하발원지 기행을 차근차근 해나가며 <인문기행 중국>, <북방대기행-바람의 제국을 가다> 등의 다큐멘터리로도 차곡차곡 업력을 쌓아나가는 중이다.


특히 마오쩌뚱의 1만2500km에 달하는 고난의 대장정 루트 그대로 59일간 완주한 최초의 한국인이기도 한 그는 그 여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길 위에서 읽는 중국 현대사 대장정> 책은 묵직한 의미로 다가온다.  

"중국 현대사는 마오쩌뚱의 대장정에서 잉태됐다. 1934년 마오쩌뚱이 이끄는 홍군은 장제스를 추격을 피해 368일간 장시성 루이진에서 시안까지 대장정을 펼쳤다. 절대적인 열세였던 마오쩌뚱이 어떻게 승리를 거머쥐었는지 모든 면에서 우위였던 장제스가 패하고 대만으로 쫓겨간 이유를 역사 현장 속에서 찾고 싶었다."

극도의 기아, 피로 속에서 잠시 쉰다고 앉았다 700~800명의 홍군이 그대로 죽어버린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반유열사 기념탑 앞에서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는 그의 고백이 가슴 찡하게 와 닿았다.

보통 답사 출발 전 그는 관련 책들을 샅샅이 찾아 읽으며 집요하게 공부한 덕에 현장에서 느끼는 감흥은 깊고 넓다.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한국사 알고 싶다'는 소망

이 같은 내공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조선의용대 등 중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독립운동사 흔적을 쫓는 답사를 준비중이다.  이처럼 그가 중국을 종횡무진 파고 다니는 진짜 이유는 남의 역사를 통해 우리 역사를 폭넓게 이해하고 싶기 때문. 


“우리 역사를 국경에 가둬 둔 국사가 아니라 세계의 역사, 동아시아 역사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그의 고집스런 고백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아마도 통일 한국을 염두에 두고 남한, 북한의 공통의 역사 공감대가 될 독립운동사를 두 발로 훑고 싶다는 속내가 슬쩍 엿보인다.


중국기행에 동참하고 싶은 일반인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공지한다. 역사에 관심 많은 일반인, 사학자, 영화제작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청해서 따라나선다. 기동성 있게 차 한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예닐곱 명만 받는데 중국 역사, 문화를 풍성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각자의 지식들이 보태지기 때문에 여행이 재미있다”고 귀띔한다.   


그는 스스로를 일반인과 역사 현장을 이어주는 옛날의 입담 좋은 전기수 같은 존재인 설서인(設書人)으로 자칭한다. 국내 동양사학의 거인 박한제 서울대 동양사학과 명예교수와의 인연도 답사를 통해 깊어졌다. '역사의 현장을 찾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책에서만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을 만끽할 수 있다. 현장을 버린 역사 연구는 진실의 반을 포기한 것이다'는 박 교수의 학문철학과 '역사와 문화는 전문가들만의 몫이 아니다. 일반인들이 알고 느끼고 참여하고 공유하면서 이뤄진다'는 윤태옥의 역사철학이 의기투합한 결과 둘은 좋은 길동무가 된 모양이다.


중국 여행 10년, 여행가, 작가, 다큐 제작자, 강연가로 인생 진로 확장

여행가로 출발해 저술가,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 그는  논리적이며 유머 있는 말솜씨에 풍성한 현장 자료를 지닌 중국 역사, 여행, 인문학 관련 인기 강연가기도 하다. 

 

40대 중반, 홀연히 인생 나침반을 중국에 맞추고는 두 번째 윤태옥 커리어를 호기롭게 시작했고 10년 쯤 지나자 ‘중국통’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매김해 나가는 중이다. 처음부터 재고 따지며 로드맵 그려 시작한 건 결코 아닌 마음 가는 대로 주위에서 뭐라 훈수 두던 개의치 않고 끈질기게 외길을 판 결과인 듯 싶다. 

 “나의 에너지원은 재미와 호기심이다. 물론 ‘재미있는 그 분야’를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파고든다. 모르는 길이라도 10년 쯤 열심히 가다보면 내 길을 찾는다. 남의 성공 스토리를 쫓아가면 결코 안된다. 이런 철학은 본인의 인생 뿐 아니라 자식 키울 때도 필요하다.” 


 그는 자기 인생을 주관대로 산 것처럼 현재 31살, 27살 두 아들도 소신대로 키웠다. 고교 자퇴 후 외식업의 길을 찾기 까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큰 아들, 고교 시절 홀연히 중국 유학을 감행한 둘째 아들을 흔들림 없이 응원해주었다.  


"부모에게는 숙명적으로 자식 걱정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 엄친아든 문제아든 부모는 자식 때문에 속을 섞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식을 가두지 말라. 남들이 가고 안 가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뭔가에 몰두하는 듯하면 무조건 밀어줘라. 범죄만 아니면 된다. 모르는 길에도 길은 있는 법이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한 10년 쯤 꾸준히 파다보면 남들과 엇비슷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선배 부모로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당부였다.


제 흥에 겨워 일년의 절반은 중국 도처를 돌아다니며 독생(獨生)하는 남편을 늘 지지해주는 아내에게도 무한한 고마움을 표하는 윤태옥. 내 눈에는 본인 인생도 단단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으로서도 스스로 정한 자신의 룰대로 사는 ‘자유인’인 그가  편안해 보였고 내심 부럽기도 했다.




♠재미와 호기심

 인생의 키워드가 분명하다. 단 겉핥기식 재미와 호기심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수준까지 '그 분야'를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파고든다. 스스로 정한 인생 룰을 순수한 열정으로 쫓는 뚝심이 인상적이다.


♠기록 정신

 중국 답사 10년의 여정을 담은 사진, 지도, 사료, 소감문을 고스란히 블로그에 모아 놓았다. 방대한 역사 데이터베이스를 기꺼이 100% 공개한다. 답시 현장에서도 치밀하게 기록을 남기고 다시 재정리하는 투철한 마인드가 답사가에서 작가, 다큐멘터리제작자, 강연가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토대가 되었다. 


*게재된 모든 사진은 윤태옥 선생에게 받은 자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느질 취미를 창업으로! 여성스타트업기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