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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Aug 03. 2017

초상화로 참(眞)가치 찾는 화가 이은규

[예술동물원 작가인터뷰1] 동물보호 가치, 그림으로 스위치 켜다

 예술가 인터뷰 연재를 시작하며 >>>>

  서울시와 동행숲네트워크의 협치사업으로 예술동물원 아카데미에 이어 9월 선유도공원에서 전시가 열립니다.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이 동물보호, 생태, 사람의 쉼터인 동시에 동물의 터전이기도 한 공원의 가치를 예술로 재기 발랄하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를 만나 진솔한 속내를 들어봅니다. 인터뷰 첫 주인공은 이은규 작가입니다. 


  날카롭게 쏘아보는 삵, 선한 눈빛이 매력적인 담비, 위풍당당한 호랑이... 이은규 작가는 동물 연작시리즈를 선보인다. “터럭 한 올까지 하나하나 세서 그대로 그렸다”는 작가의 고백이 그대로 그림과 겹쳐진다. 무엇보다 동물의 눈빛이 강렬하다. 


 작가로 기획자로 그림 선생님으로 치열하게 사는 그를 일산 화실에서 만났다. 공간 속에는 주인장의 성향이 고스란히 담기는 법. 벽마다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있고 붓이며 색색의 석채 등 온갖 화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정갈하게 정돈돼 있다. 공간이 작가를 위해 늘 스탠바이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인물화와 동물화, 가끔씩 모사화도 그려요. 호기심과 욕심이 많은 편이죠(웃음). 여러 장르를 효율적으로 작업하려면 공간 배치와 정리정돈이 중요해요” 빙그레 웃으며 그는 말한다. 


 

 예술동물원 전시는 9월 중순 선유도공원에서 열린다. 전시 기획을 맡은 그는 참여 작가 24명과 의견을 조율하며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동시에 작가 본연의 작업도, 수강생 가르치는 생업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생기발랄하다.


예술동물원 아카데미 


 “전시회를 앞두고 그림 작업이 즐거워요. 서양화, 디자인, 공예처럼 나와는 다른 장르의 작가들과 협업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받습니다. 동물과 생태에 관심 많은 작가들끼리 모이니까 서로 통하는 게 많아요. 작가로서 ‘표현’에만 주력했다면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관람객에게 ‘전달’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전시 방법에 따라 작품이 달리 해석될 수 있지요. 가령 액자 프레임, 갤러리 벽 색깔, 디스플레이 순서, 관람 동선까지 모두 세심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이제 내 작품 속에 기획자의 관점까지 녹여낼 수 있으니 작가로서 신나죠.”  


‘이은규 스타일’로 채색하는 그림 인생

  클래식한 동양미에 매료돼 한국화를 전공한 이은규는 먹보다는 채색이 중심이 되는 진채화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늘 뭔가를 그렸지요. 막상 미대에 가야겠다고 결심을 굳힌 건 고3 때입니다. 서양화보다는 동양화에 끌려 뭘 공부할지 탐색하다 한국화 가운데서도 희귀 장르인 진채화를 택했습니다.”

 

30대 중반 청년 작가의 이력은 다채롭다. 한국화가, 고미술박물관과 전통회화복제연구소 연구원, 의대 해부학과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편집디자이너까지... 왕성한 호기심으로 활동 반경을 계속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다양한 일터에서 부딪히고 터득한 경험치는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든다.


 “학생 시절에는 ‘나는 유명 작가가 돼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용을 쓰듯 그림을 뽑아내려 하니 슬럼프가 찾아오더군요. 욕심을 내려놓으니 서서히 그림과는 편안한 동반자가 됐습니다. 작가의 주관보다는 기술과 순서, 기법이 중요한 고화(古畵)를 모사하기도, 연대 의대 해부학과에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도 일했지요. 안정적인 직장에서 또박또박 월급 받으며 ‘그림일’ 하는데 밤에 악몽을 꾸는 거예요. 내 삶을 온전히 나답게 살지 못한다는 괴로움이 커지자 곧바로 사표를 썼어요.”


 뒷배가 있으면 몰입이 안 되는 본인 성격을 잘 알기에 그는 안정된 직장이란 선택지를 과감히 지워버렸다. 일산에 화실을 연 뒤 수강생 가르치고 자신만의 그림을 맘껏 그리며 생활인으로서, 작가로서 홀로 섰다. 


초상화와 질긴 드잡이, 왜?

 ‘이은규 작가’하면 떠오르는 초상화 연작 시리즈. 유독 초상화에 몰입한 사연이 궁금했다. “꼬맹이 시절부터 종이만 보면 무의식적으로 사람 얼굴을 그렸고 특히 눈에 집중했어요. ‘종이가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인물화와 질긴 드잡이가 시작됐다. 사람에 집중적으로 관심 갖게 되니 인물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심리학을 파고들었다.


<꿈속의 엄마>  51*73 _순지에 채색, 복합 재료, 2014 

 

  “모티브는 엄마예요. 어릴 적 나는 가족과 떨어져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어요. 엄마 초상화를 그리면 지인들은 엄마랑 닮았다고 하는데 유독 엄마 본인과 아빠, 오빠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때 퍼뜩 깨달았죠. 같은 집에서 먹고 자며 함께 생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갭이 있구나. 그럼 진짜는 뭐지? 란 의문이 들더군요. 엄마의 수십 년 삶 중에서 나와 연관된 것 일부일 뿐이고 내가 아는 엄마가 진짜 엄마의 모습일까? 란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때부터 엄마와 외할머니, 내 얼굴을 미친 듯이 그렸어요. 정면, 측면, 멀리서, 가까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죠.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의 ‘참(眞) 얼굴’을 찾았습니다.”


좌) <류희 초상> 62*50 _ 비단에 진채, 2015              우) <남옥환 초상> 62*50_ 비단에 진채, 2015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2015년에 북촌의 한 갤러리에서 수년간 얼굴 그림에 몰입한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개인전을 열었다. “우연히 전시장을 찾은 어떤 할머니는 마치 자신을 그린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시더군요. 낯선 할아버지는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 같다고 고백하고요.” 작가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그림이 낯선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다는 걸 개인전에서 터득했다.


그림 그리며 동물과 교감

 인물화에 이어 관심을 갖게 된 게 동물 그림이다. 입양한 길고양이 세 마리와 화실에서 동고동락하는 그는 식구 같은 고양이들을 화폭에 자주 담았다. 우연히 전시회에 출품한 길고양이 그림이 예상 밖의 호응을 얻자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사람의 감화를 일으키기에 좋은 수단이라는 걸 경험하니까 내가 가진 재주를 쓸모 있는데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고양이부터 시작해 멸종위기 동물까지 점점 영역을 넓혀나갔지요.”


좌)  <삵> _ 한지에 채색, 2015                                                         우) <담비>_ 한지에 채색, 2016

 

  동물 그림 역시 ‘진짜(眞)’를 표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대중의 선호 취향대로 귀엽게 그린 그림이 마뜩잖은 그는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려 공을 들인다. 인물화 그릴 당시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쌓은 내공 덕에 동물 초상 작업은 한결 수월하다.  

 

 동물 생태 공부는 필수. 사진 자료며 다큐멘터리 영상 구해다 보면서 최대한 가까이서 동물을 관찰한다. 스케치를 거듭하며 형태를 잡아나간 후 채색까지 마무리하면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된다. 삵 그림처럼 1년이나 매달린 작품도 있다. 

<호도(糊塗)>, 54*54, 지본 채색 후 직조, 2016 

 

 이런 방식으로 담비, 호랑이를 차례차례 완성했고 앞으로는 멸종위기 동물과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을 그릴 계획이다. “온종일 그림 속 동물과 눈 맞춤하고 있노라면 서로 교감하고 혼이 통한다는 묘한 느낌이 들어요.”



 오랜 담금질의 시간 덕분에 지난해부터 참여한 동행숲의 예술동물원 프로젝트에 쏟는 애정이 각별하다.


 Q. 서울시 협치 사업으로 예술동물원 아카데미와 9월의 선유도공원 전시가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지난해 여름의 한강 ZOO 예술동물원은 축제란 틀 안에서 시민들에게 체험을 통해 동물보호, 생태 이슈를 던지는 게 주목적이었죠. 역시 가을에 열린 와우북페스티벌 기간 중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동행책 행사도 전시보다는 강연이 메인 행사였습니다. 두 행사 모두 예술동물원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 흡족했지만 솔직히 작가로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올해 전시는 오롯이 예술 작품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보람과 묵직한 책임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때문에 24명의 작가 모두 적극적이지요. 작품을 여러 점 출품하겠다고 의욕을 보이는 작가도 있으니까요. 

 순수 회화, 드로잉, 디자인, 공예, 조형, 캐리커처, 삽화 일러스트 등 작가마다 전공도 개성도 다양한 만큼 동물보호란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독창적일 겁니다. 작가와 시민이 파트너십을 이룬 시민 도슨트도 색다른 기획이지요.

 

 올해 처음 시도한 예술동물원 아카데미는 ‘시작’의 의미가 큽니다. 올해 만들어진 작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내년에는 보다 밀도 있게 소통하면서 작가들이 갈증을 느끼는 지점을 정확히 꿰뚫어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는 아카데미로 업그레이드가 되겠지요. 전시회 역시 한 단계 더 도약할 거고요.


Q. 관람객들에게 예술동물원 전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예술이 캠페인의 도구가 되는 걸 경계합니다. 우리 엄마는 아들(한국야생동물생태연구소 이상규 씨가 이 작가의 오빠)이 야생동물을 조사·연구하는 일을 하고 딸이 멸종동물을 그리는데 야생동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내가 화실을 비울 때마다 우리 고양이들 먹이 주러 들르다 정이 흠뻑 들었죠. 이제는 길에서 만난 낯선 길고양이들의 밥까지 챙겨주시죠. 


 엄마가 길고양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처럼 예술동물원 전시가 시민들에게도 ‘특별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선유도 공원에 바람 쐬러 왔다가 우연히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공원에 새가 살고 있지. 아! 이런 동물도 사는구나’ 작은 깨달음을 얻는 거지요. 예술이 생명과 생태보전의 가치에 신호등 켜주는 역할을 하면 그걸로 족해요. 



글, 사진, 영상 _ 오미정 (스토리라이터)

작품 사진 출처 _ 이은규 작가 (blog.naver.com/ee_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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