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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Oct 03. 2017

‘내 속도 내 방식’대로 그림 인생, 화가 손유선

[예술동물원 작가 인터뷰3] 그림과 짝사랑하며 세상을 그림에 담다

선유도공원 이야기관에서 열린 <동물, 예술을 만나다> 전시가 잘 마무리됐습니다. 예술동물원 아카데미 참여부터 전시 준비, 전시장에서 다양한 시민과의 만남까지... 이번 전시의 의미와 개인적인 소회를  참여 작가에게 들어봤습니다. 예술동물원 작가 인터뷰 세 번째 주인공은 화가 손유선입니다.



 

 두 번째 그림 인생을 사는 손유선 작가. 끝없이 파고들어야 하는 그림 공부에다 줄줄이 잇따르는 전시회 준비, 틈틈이 참여하는 재능기부, 여기에 예술동물원 프로젝트까지 더해 경험이란 레이어를 층층이 쌓느라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그래서 신명 나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소중하다.


 

선유도공원 이야기관 ‘동물 예술을 만나다’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는 수줍음, 뿌듯함이 교차했다. 작품 속 의미, 표현 기법을 물어오는 관람객과 이야기 나누며 말미에는 “고맙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내 작품에 관심 가져주니 감사하지요. 24명의 작가들과 함께한 예술동물원 공동 작업이 개인적으로 뜻깊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 스라소니를 테마로 했습니다. 왜 이 동물에 주목하게 됐나요?

 예술동물원 아카데미에 참여하며 내가 몰랐던 야생동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알게 됐습니다. 거친 등산객 때문에 설악산에 살던 산양이 서식지를 잃고 쫓겨 다니는 사연이 특히나 마음 아팠습니다. 강자의 이익을 위해 약자는 늘 희생돼야 하는 걸까? 우리 인간의 삶에 약육강식 논리를 그대로 대입했을 때도 다들 수긍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멸종위기 동물에 대해 자료 조사하던 중 스라소니를 만나게 됐습니다. 고양이과 동물인데 호랑이처럼 맹수는 아니고 그렇다고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도 아닌 어중간한 포지셔닝의 중형 동물이지요. ‘몸길이 90cm에 야행성 동물로 공격적이고 교활하다’는 설명 문구를 보자 화가 치밀더군요. 교활하다고? 동물의 본능, 습성을 인간 관점에서 제멋대로 판단해도 되는 걸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유화, 드로잉, 입체 조각을 선보였는데요. 스라소니의 무엇을 작품 속에 담고 싶었나요?

 유화, 조각 작품은 종전 작업 방식대로 손목 움직임을 이용한 붓 터치로 스라소니 그 자체를 담았습니다. 대신 드로잉은 일부러 잘 찢어지는 종이에 연필의 가냘픈 선으로 스라소니를 표현했습니다. 완성작은 일부러 찢은 다음 다시 이어 부쳤습니다. 멸종위기 동물의 위태로움을 드러낸 내 나름의 표현 방식이지요. 



미대 입학 후 식어버린 그림 열정

 손유선. 그의 그림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고 한참 동안 끊어져 있기도 하다. 



 일곱째 중 막내딸이었던 손 작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 있다는 소리를 줄곧 들으며 자랐다. 미대 진학까지 욕심 내지 못했던 그는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그림이 눈에 밟혔다. 미련 없이 다니던 대학 그만두고 1년 꼬박 입시 미술 공부에 매달려 간절히 원하더 미대에 들어갔다.


 “참 이상하지요. 막상 입학하고 보니 오롯이 그림에만 집중해야 할 화가로서의 삶에 자신이 없더군요. 재수 생활 1년간 쏟아붓던 열정이 사그라들더군요.” 졸업 후 곧바로 결혼했고 두 딸을 키우느라 그림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집 근처 환풍기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는 걸 봤어요. ‘너는 왜 나뭇가지가 아니라 위험천만한 환풍기에 앉아있니? 그러다 빨려 들어가면 어쩌려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참을 쳐다봤는데 문득 ‘그럼 내 자리는 어디지? 그동안 뭘 하고 살았지?’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 후 지독하게 마음의 병을 앓던 그는 무작정 친구 화실을 찾아가 다시 붓을 잡고 싶다고 매달렸다. 돌고 돌아 그가 꽉 붙잡고 싶었던 건 역시 그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40대 중반 무렵이었다.


 친구에게 판화를 배우며 무뎌진 손 감각을 깨우며 그림의 매력을 하나씩 재발견해 나갔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두 딸과 남편에게 이제부터 그림 인생을 살겠노라 선언하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간절함은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40대 중반에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 그림 

 딸 뻘 되는 학생들과 어울리며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강의실과 학교 작업실을 오가며 그리고 또 그렸다. “테크닉에만 의존하지 말고 좀 더 고민하며 실험하는 자세로 그리라고 지도 교수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다채로운 실험을 하며 서서히 ‘손유선 스타일’의 화풍을 만들어 나갔다. “똑같은 사물이라도 낮에 볼 때와 밤에 실루엣으로 만날 때 형체, 색, 느낌이 달라요. 결국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거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과 끈질기게 드잡이 하면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기호’가 탄생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사물 하나하나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인 기호를 부여했다.


 그림에 몰입하면서도 이미지 작업에 대한 회의감은 불쑥불쑥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우연한 인연과 계기가 그를 단단히 붙잡아 줬다.

 강연을 통해 만난 이승태 화가 역시 손 작가에게는 고마운 인연이다. “산에 올라가 빨간 천을 휘날리면서 바람을 표현하고 강물에 물감을 푸는 퍼포먼스로 자연을 작품 속에 담더군요. 80대 노화가의 자유로운 발상과 작업 방식이 신선한 충격이었지요.” 그를 통해서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유연한 그림 작업의 귀한 힌트를 얻었다.


 아버지 일생을 그린 경험도 손 작가가 그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다. “올해 88살 아버지 생신을 맞아 가족들끼리 영상 자서전을 만들기로 했어요. 남아 있는 사진이 없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내가 목탄화로 그렸지요.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추억, 6.25 전쟁 직후 북한군 피해 고향 황해도에서 목숨 걸고 월남한 사연.... 아버지가 가끔씩 띄엄띄엄 들려주던 과거사를 한 장 한 장 그려서 5분 내외의 영상으로 완성했지요. 부모님과 친구 분들, 게다가 우리 가족까지 생일 축하자리에서 다들 그 영상을 보고 뭉클했다고 하더군요. 눈물을 흘린 분들도 계셨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게 이미지의 힘이구나! 이미지 과잉 시대라지만 한 컷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 마음속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구나! 그 당시가 내 그림 작업에 회의감이 몰려왔던 시절이라 위로가 됐고 용기를 얻었지요.”  


영원한 짝사랑 ‘그림’

 뒤늦게 그림을 시작해 남 보다 뒤처졌다는 조바심으로 스스로를 닦아세운 적도 있었지만 이젠 고요한 마음으로 작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됐다. 

 “돌이켜보니 두 딸을 키우는데 집중한 20년 넘는 세월이 내게 ‘예술’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어요. 내게 온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그런 경험 덕분에 세상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됐지요. 예술동물원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예요. 야생동물과 서식지 보존, 생태에 눈 뜬 단초가 됐습니다. 지난여름 우리 동네에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를 새소리가 시끄럽다는 주민 민원 때문에 베어버리겠다는 거예요.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일부러 가서 따졌지요. 값비싼 공기청정기 집집마다 들여놓으면서 천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는 아까운 나무를 왜 굳이 없애야 하냐고. 나무에 사는 새도 자연의 일부라고요. 이렇게 배운 걸 그림 속에 녹여내면서 내 방식대로 세상과 부딪히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습니다.”



 늘 그림 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한다는 손 작가. 맨 밑바닥부터 담금질하는 심정으로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말하며 한 마디 덧붙인다. “그림은 영원한 내 짝사랑이에요.”


글, 사진, 영상 _ 오미정 (스토리라이터)

작품 _ 손유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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