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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Sep 29. 2015

작가가 건네 준 탱자 한 알에 이렇게 깊은 뜻이!

글쓰기 기본기 일깨워준 김서령작가와의 고마운 만남

 김서령. 일간지에 연재된 <이야기가 있는 집 家>를 놓치지 않고 찾아 읽은 뒤부터 글쓴이가 궁금했더랬다. 사람 이야기에 특히나 열광하는 나는 주인과 집을 씨줄 날줄의 세트로 엮어 촘촘히 풀어낸 그의 인물탐구가 흥미로웠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통해서, 집이란 분명한 매개체가 있으니 수월하면서도 깊이 있게 인물을 들여다 볼 수 있구나’를 배웠다. 그때부터였다. 그가 궁금했고 글의 한 수를 배우고 싶었다. 4년쯤 가슴에 품고 사니 재미있게도 만남이 현실이 되었다.


 5년 전부터 이어 오고 있는 문화기획자들 모임에서 일반인 대상 오픈 클래스를 열게 되었고 강사 섭외 권한이 내게 주어졌다. 자연스럽게 강사 1순위로 그를 떠올렸다. 


 연애편지 쓰듯 구구절절 내 마음을 담아 이메일을 보냈고 단번에 오케이 승낙을 받았다. 가슴이 쿵탕쿵탕 뛸 만큼 엄청나게 기뻤고 ‘거봐,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된다고!’라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특강 당일, 스타일리시한 옷차림(화려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관, 차별화가 분명하다는 뜻)으로 나타난 예순을 앞둔 그의 첫인상에서 ‘여자’를 느꼈다. 게다가 바로 옆자리에 앉은 덕에 세밀하게 관찰까지 할 수도 있었다. 어디를 가든 꼭 함께하는 듯 작가의 작은 노트 안은 글자로 빽빽했고 참가자들이 던지는 질문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 후 하나하나 짚어가며 빠짐없이 답했다.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철두철미한 성격이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머릿속에 스캔해 나갔다. 


 그가 글쓰기에  도움되는 책으로 추천하며 가방에서 꺼낸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읽고 또 읽은 듯 겉표지가 닳았고 포스트잇이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작가도 저렇게 수련하니까 늘 현역인 거구나’ 당연하지만 신선한 깨달음을 그 책을 보며 느꼈다.


인터뷰이 열 번 만나고 인터뷰 글 써라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늘 인물 인터뷰 방법론이 제일 궁금했다. 인터뷰이가 던지는 말만 받아쓰는 하수 인터뷰어가 아니라 상대방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후 은유적인 해설을 곁들이는 그만의 인물론은 글맛이 남다른 고수의 솜씨였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자 혹독하게 글쓰기 수련을 받은 월간 <샘이 깊은 물> 시절의 일화를 들려준다. 한국적인 미색을 갖춘 여성을 표지 모델로 실어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그 잡지는 한국적인 가치를 찾아 전국을 샅샅이 훑은 발품과 글 품이 인상적이라 내가 20대 시절 꼬박꼬박 챙겨본 잡지였다. 


 그 시절, 그는 발행인 한창기 선생에게 글쓰기의 기본기를 제대로 배웠다고 고백한다. 인물 인터뷰 기사 한 꼭지 완성하려면 ‘인터뷰이 열 번 만나라’는 보스의 지시대로 열 번을 만났다고 한다. 헉~


 상대방을 꿰뚫고 꿰뚫어 맨 밑바닥까지, 아마 본인도 모를법한 ‘그 무엇’을 캐내기 위해 인터뷰어로서 고군분투했다는 의미리라. 사람은 누구나 페르소나로 무장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인터뷰이로 선정될 만한 사람이라며 그 가면은 더 더욱 빈틈없이 견고했을 것이다.


그걸 깨트리기 위해서는 숱한 만남의 횟수와 심리적인 밀착으로 인터뷰이를  무장해제시키고 가면을 스스로 벗을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을 터. 추억이 서려있는 유년시절의 의식주를 매개로 다가가면 좀 수월하게 인터뷰이의 ‘스팟’을 건드릴 수 있다는 팁까지 슬쩍 흘려준다. 덧붙여 인물의 과거 안에서 현재를 녹여내면 글의 설득력과 감동의 무게가 훨씬 묵직해진다는 고백도 두고두고 곱씹고 싶은 대목이다.
 

이게 내가 그렇게 목말라하던 통창력이구나!

 

  글쓰기 팁에 목말라하는 내게 그는 탱자 몇 알을 건네며 오감을 총동원해 관찰한 후 글로 묘사하라는 미션을 내주었다. "맛을 아는 것과 그 맛을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라는 친절한 부연설명까지 곁들이면서.

 국어책에서만 만났던 탱자를 난생 처음 손 안에 쥔 나는 꾹꾹 눌러보고 향을 맡아보며 관찰하는 사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무엇’을 만났다. ‘아, 이게 내가 그렇게 목말라하던 통찰력이구나!’  


 나는 글을 쓸 때 시각과 청각에만 충실했다. 내가 본 것, 그리고 들은 것을 가지고 글로 재배열하다 보면 늘 아쉬움과 찜찜함이 남았다. ‘정리는 잘됐는데 허전함은 무얼까?’ 바로 후각, 미각, 촉각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관찰력이 부족했고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대충 알고 쓴 거였다. 글을 쓸 때 오감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내겐 달큰한 향의 탱자와 함께 쉽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글쓰기 통찰력을 목말라했던 내게 김서령 작가는 ‘명주재장(明珠在掌)’, ‘정관자득(靜觀自得)’이란 시원한 얼음물 같은 8글자를 선물했다. 보석은 내 손 안에 숨어있고, 집중해서 보면 결국 얻는다는 뜻이리라.  귀한 시간이었고 고마운 만남이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선물한 탱자 한 알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비쩍 말라 비틀어진 탱자는 늘 김서령이란 이름 석 자와 오버랩된다. 내가 평생 품고 사는 글 공부 길에 근사한 글선생님을 운 좋게 만났다는 생각을 매일 탱자와 눈을 맞추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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