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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Sep 29. 2015

홍차 보이의 홍차에 빠진 삶

홍차 마니아 문기영에게 배운 실천력


 나는 ‘바리스타’다. 으쓱으쓱~

솔직하게 정정하면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다. 호호


 복합문화공간 북카페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뒤 커피를 1년가량 배웠다. 커피 믹스만 애용하던 나는 이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드립으로 즐겨 마시며 예멘, 과테말라, 콜롬비아 산 원두 맛을 따져가며 마시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왜 성장인가 하면 커피, 설탕, 프림까지 골고루 섞은 커피 믹스는 싸구려 원두로 ‘믹스’한 단맛이고 생두의 산지별 특징이 분명한 스페셜 커피는 출신 성분이 ‘고급 지다’는 것을 눈과 귀로 배워 혀로 익혔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커피를 넘어 홍차의 세계도 야금야금 넘보는 중이다. 덕분에 <홍차수업>의 지은이 문기영을 만날 수 있었다.


홍대 앞 오피스텔에 자리 잡은 그의 홍차공방. 홍차를 공부하고 홍차를 맛보며 홍차를 강의하면서 사람과 만나는 공간인 동시에 홍차 책을 집필하고 수집한 홍차를 저장해 놓는 그만의 홍차랜드다.


홍차의 2,3,400을 꼭 기억하라


  “떫고 맛이 없다는 홍차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은 차를 제대로 우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홍차는 과학입니다. ‘2, 3, 400’부터 기억하세요. 차 2g을 3분 동안 400cc의 팔팔 끓인 물에 우리면 되지요. 이 기준점을 가지고 개인의 기호에 따라 차를 더 넣거나 덜 넣으면 됩니다.” 홍차 마니아의 첫 마디다. 

 그의 입에서는 홍차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동시에 그의 손은 나를 위해 영국산 포트넘 앤 메이슨 차를 우렸다. 저울로 계량해 시간까지 재서 정석대로 우려낸 차맛은 은은하고 부드러웠다. 아마도 홍차 마니아의 매력적인 입담이 더해진 덕분이겠지. 


 내친 김에 나는 밀크티까지 청했다. 진하게 우린 홍차에 뜨끈하게 데운 우유를 붓고 설탕까지 넣은 밀크티는 달콤했다. 사실 나는 ‘우유 친’ 음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이 매력적인 카페라떼도 아주 가끔씩 기분이 꿀꿀하거나 허기가 져 당이 급속도로 떨어질 때만 찾는다.


홍차에 우직하게 바친 1만 시간의 법칙


 홍차에 빠져 사는 남자 문기영. 홍차 이야기 풀어내는  중간중간에 그가 살아온 삶을 밀당하듯 하나씩 캐물어 들어갔다.
 

 커피의 대명사 동서식품에서 16년 동안 커피 마케터로 일했던 그. 퇴사 후 헛헛한 마음을 줄곧 동고동락했던 커피가 아니라 가끔씩 마셨던 홍차가 보듬어주었다고 한다. 어디엔간 몰입의 대상이 필요했던 지라 곧바로 홍차에 빠져들었다. 


 1만 시간 법칙을 우직하게 지키며 원서로 된 홍차 개론서를 찾아 읽고 티모임에 나가 혀를 단련시켰다는 그. 내친 김에 인도, 스리랑카, 중국 등 세계적인 차 산지를 훑고 홍차 문화를 꽃피운 런던, 파리의 유명 티브랜드를 고루 답사했다. 땀으로 모은 자료와 오감에다 새긴 홍차의 모든 것은 그에게 가 보지 않는 ‘새 길’을 선문해 준 모양이다.


 <홍차수업>을 펴낸 뒤 여러 군데서 강의 요청이 잇 다르고 있으며 틈틈이 원서도 번역 중이라고 귀띔하는 그는 즐거워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당당한 50대 남자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은 요즘, 모든 걸 털어내고 빈털터리 상태에서 홍차에 올인해 치열하고 치밀하게 파고든 작은 체구의 문기영이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점점 커 보였다. 4년간 홀로 고군분투했을 그 시간의 외로움이 조금은 짐작됐기 때문이다.

 


 작별인사를 마친 후 헤어진 며칠 뒤 나는 그의 홍차 열정의 온도를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홍차를 제대로 알고 싶은 호기심도  한몫했지만. 백화점 문화센터의 홍차 원데이 클래스 강의장에서 다시 만난 그는 참가자들 모두에게 홍차를 서빙한 후 특유의 빠른 어투로 홍차개론 강의를 열정적으로 풀어냈다.


 문기영의 자기 강화 담금질과 홍차와 함께하는 삶의 현장을 보면서 나는 좋아하는 걸 매우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갈 ‘나의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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