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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Sep 30. 2015

'꿈은 꾸는 게 아니라 이루는 것'
실천한 세계여행가

김치버스 세계 여행가 류시형

 시시 때때로 여행앓이를 하는 나. 로망으로만 간직하던 유럽을 한 달간 샅샅이 여행할 수 있었던 건 류시형의 펌프질이 한몫을 했다. 모든 일상을 스톱하는 용기를 그에게 배운 덕분에 나는 로마 판테온 신전의 신비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르네상스 정신의 발원지 피렌체를 활보할 수 있었다. 


 그를 만난 건 2011년 늦가을이었다. 자칭 ‘못생기고 뚱뚱하며 키 작은 삼총사’가 김치버스 타고 400일간의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자리였다. 


 셋 중에 가장 노련하고 매끄럽게 여행의 포부와 의미를 20명 남짓한 ‘어른들’에서 설명한 청년이었다. '겁 없는 젊은이네! 젊음이 참 부럽구나' 그 당시 첫인상에서  받은 솔직한 느낌이었다.


그 후 3년의 세월이 흘렀고 팀의 리더 류시형은 ‘김치버스 세계여행’을 시즌3까지 성공시킬 만큼 단단하게 성장했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 내 맘대로 내 인생


두 번째 만남에서 3년 전의 비화를 웃음과 함께 들려준다.  웃으며 확신에 찬 어조로 김치버스 세계여행의 성공을 자신하던 당시, 암투병중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가슴 아픈 가정사에 후원금을 약속한 대기업들이 차일피일 계약을 미루는 통에 출국 자체가 불투명했던 피 말리는 시간이었노라고. ‘어라, 이 청년 보기보다도 훨씬 돈키호테구나!’ 무엇보다 인생을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갈 줄 아는 용기가 그에겐 있었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라는 닉네임 그대로 ‘내 맘대로 내 인생’을 신나게 질주 중인 그에게 비결을 캐물었다. 요리사이자 여행 작가며 사진작가, 기획자의 삶을 동시에 사는 류시형이 좋아하는 다섯 가지는 여행, 사진, 요리, 사람, 술. 그의 인생 북극성인 5개의 키워드를 조합한 게 김치버스 프로젝트란다. ‘요리사니까 한국을 상징하는 김치를 알리며 세계 곳곳을 여행해 보면 어떨까?’ 치기 어린 아이디어가 발단이었고 결국 그는 꿈을 이뤘다.  


  시간을 거슬러 유별난 DNA를 맘껏 발산한 그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물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어릴 때부터 혼자서 요리할 기회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미도 요리, 특기도 요리, 장래희망도 요리사였어요. 막상 대학생(경희대 조리과학과)이 된 뒤에는 요리보다 사진과 여행에 빠져 살았고요.”

 

대학생 시절, 달랑 3만 원 들고 219일간 유럽 일대를 무전 여행할 만큼 배짱이 두둑했고 호기심이 남다른 그였다. 노숙생활부터 처음 만난 외국인과 부대끼며 그들의 문화를 속속들이 체험한 후 깨알같이 기록해 <26유로> 책을 펴내자 어느덧 여행 파워블로거로 불리게 되었다.


  “어느새 20대 여행작가란 타이틀을 얻게 된 뒤부터 세계 구석구석을 협찬받아 여행 다니고 그런 노하우로 전국을 돌며 강연자로 살았어요.” 어느 날 강연장에서 만난 낯선 젊은이가 던진 “앞으로 뭐 하고 살 겁니까?”란 질문이 그의 가슴에 아프게 박혔다.

 

“아뿔싸! 여행과 강연으로 하루하루 바쁘기는 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어요. 더군다나 5년 후, 10년 후 나의 인생 계획조차 없더군요.” 



꿈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거다


  자기 반성의 시간을 보낸 뒤 진짜 꿈을 찾아 김치버스 팀을 꾸려 호기롭게 길을 나섰습니다. “김치버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뤄진 ‘꿈’이에요. 여행하고 요리하고 낯선 사람들 만나고 멋진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꿈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400일간의 여행길은 희로애락이 뒤범벅된 롤러코스터였다. 여행경비는 아껴도 늘 모자랐으며 김치버스는 수시로 고장 나 애간장을 태웠다. 스페인에서는 도둑을 만났고 러시아에서는 비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으며 북유럽 고속도로를 달리다 죽을고 비도 넘겼다. 허나 꿋꿋하게 고난의 행군을 자청해서 이어갔다. 보석 같은 인연과 삶의 깨달음을 길 위에서 얻었기 때문에.


  “모스크바 문화원에서는 손바닥만 한 도마와 무딘 칼로 밤을 꼬박 새우며 김장 100포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러시아 최고의 조리학교에선 한식 강의로 박수를 받았어요.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에선 프랑스 미식가 100명에게 한식 뷔페를 멋들어지게 선보였지요. 요리사로서 꿈같은 경험들이 여행 내내 이어졌지요.” 

 

 여행을 통해 그는 훌쩍 자랐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 기획력, 리더십, 여기에 글로벌 감각까지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그의 상품가치를 알아본 대기업은 외식업체 팀장 자리를 제안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단다. “고민이 깊어지면 예스라고 답할까 봐 얼른 NO 했어요. 안정된 직장, 연봉 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고 삶의 방향을 세웠어요. 인생의 길이 여러 갈래라는 걸 여행에서 배웠기 때문에 선택이 쉬웠지요. 무엇보다 김치버스에 애착이 컸고요.”

 

고난과 뿌듯함이 버무려진 김치버스 행군은 2011년 첫 여행에서 27개국 130개 도시를, 2012년 두 번째 여행에서는 한국, 일본 전역을 돌았다.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2014년 5월부터는 남미 6개국을 100일간 돌며 김치버스 시즌3까지 선보였다. 


 “김치버스 여행이 거듭될수록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해요. 기업 후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거든요. 그래서 김치버스 브랜드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요.” 대학 3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경제적으로 자립했던 그는 생활비 벌랴 여행경비 모으랴 늘 고단한 하루하루지만 덕분에 비즈니스 촉을 벼릴 수 있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브랜드로 성장시키려 했던 그의 바람대로 김치버스는 지금 건대입구역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그라운드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낡을 대로 낡아 더 이상 여행길에 오르기 힘든 원조 김치버스는 푸드트럭으로 개조해 매콤한 타코와 쿼사디아 메뉴를 선보이며 인기몰이중이다.

 

 30대 초반의 청년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제 식대로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부러움을 넘어 얄밉다는 생각까지 들 만큼이었다. 허나 자청해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며 터득한 생존력이고 자신감이라 ‘You win!’을 인정할 수밖에. ‘나답게’를 놓지 않고 계속 자기 진화해 나가는 그를 보며 ‘류시형 스피릿’을 한 수 배웠고 소심하게나마 나의 삶에 그의 스피릿을 녹여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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