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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뷰 Feb 11. 2021

휴대폰과 비밀번호

하루의 삶은 비밀번호로 시작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휴대폰을 본다. 거기에 비밀번호를 걸어둔 적이 있었다. 휴대폰은 프라이버시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비밀번호 4자리를 매번 입력하는 것이 점차 번거로워졌다. 그래서 비번을 풀어버렸다. 휴대폰 속에 있는 각종 내용물들을 다른 사람이 보아도 무방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비번을 쓰고 있다. 번호 입력 식이 아닌 선을  긋는 패턴식이다. 아내의 휴대폰 비번으로 인해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내는 아침 7시 기상 알람을 설정해놓고 6시 55분에 일어나 목욕하러 들어갔다. 7시가 되니까 알람이 울렸다. 먼저 일어나 글을 쓰다가 가서 껐다. 7시 5분이 되니까 또 올렸다. 또 가서 껐다. 아내는 5분마다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놓은 것이다. '5분 후 반복' 설정을 해제하려면 아내가 걸어둔 비밀번호 패턴을 그려야 했다. 그것을 모르니 10분이 넘게 지나서 아내가 해야 했다.


자료:YTN영상


부부간에도 비밀번호는 공유할 수 없다. 서로 공유하기로 합의하지 않으면. 법원 판결도 그렇게 되어있다. 어느 남편이 아내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나 몰래 들어가 아내가 어떤 남자와 카톡 대화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 아내가 자신의 개인정보가 무단 열람되었다며 고소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남편은 배우자의 불륜사실의 증거를 수집한다며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인 사정이 딱하기는 하나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부부간에도 비밀은 유지되어야 할 정도로 비번에 대한 법의 보호는 상당한 수준이다. 


비번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때로는 깜박 비번을 잊어버릴 수가 있다. 이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등이 그렇다.


그런데 애플의 아이폰은 그렇지 않다. 아이폰의 비번은 미연방수사국(FBI)도 못 뚫는 강력한 보안성을 자랑한다고 한다. 비번이 기억나지 않아 애플의 상담사에게 전화해도 알려주지 않고 재설정도 안된다고 한다. 이는 애플 측이 아이픈의 보안성을 차별화된 상품화하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개인정보를 철저히 지키고 싶으면 우리 것을 사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실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아이폰을 구입하 데는 그런 이유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높은 보안성은 아이폰의 장점이기는 하나 단점이기도 하다. 아이폰의 비번을 잊어버릴 경우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초기화 후 백업에서 복원하면 자료들은 건질 수 있다고 한다. 비밀번호 분실 혹은 망각의 대가가 상당한 것이다. 그나마 초기화하는 방법이 있으니 다행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였던가? 아이폰의 비번 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나 이것을 해결한 기업들이 있다. 지난해 3월 검찰은 청와대 '하명 수사·선거 개입' 의혹 수사를 받다가 숨진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소속 검찰 A 수사관의 아이폰 잠금을 약 4개월 만에 풀었다. 청와대의 지방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하여 그가 사건의 핵심 관련인과 통화한 내용을 검찰은 증거자료로 확보하려 했다.  


자료: 연합뉴스TV


검찰은 아이폰 잠금을 푼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정보통신업체 셀레브 라이트(Cellebrite) 사의 소프트웨어를 포함, 검찰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업체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대검 포렌식센터는 2018년 셀레브 라이트사와 휴대전화 잠금해제와 정보 추출 기능이 담긴 소프트웨어를 빌려 쓰는 방식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수사관이 사용하던 휴대전화는 아이폰10으로 6개 숫자를 이용한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아 숫자만으로 구성할 경우 100만 개, 영어 알파벳을 포함되면 560억 개가 넘는 경우의 수가 있어 해제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아이폰은 한번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면 다음에 입력할 때까지 시간 간격이 점점 커지지만, 일부 회사 소프트웨어는 이런 시간 간격이 늘어나는 ‘데이터 초기화’ 코드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이 있어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박원순 전 서울 시장의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도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의 잠김 장치를 유족과 협의 후 디지털 포렌식 작업으로 풀었다. 박 전시장의 아이폰은 성추행 의혹과 피소 인지 정황이 담겨있는지가 관심사였다.


휴대폰 비밀번호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추미애 법무장관은 검언유착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한  '휴대폰 비밀번호 해제 법' 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거센 역풍에 직면했다. 지난해 6월 한 검사장 휴대폰을 압수한 검·언 유착 사건 수사팀은 한 검사장이 비밀번호 제공을 하지 않는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포렌식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추 장관이 무리수를 둔 것이다. 


이에 대해 각계에선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헌법상 자기부 죄 거부 원칙 등과 정면충돌하는 지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검사장의 아이폰 11의 비번은 기존의 것으로는 풀 수 없었으나 셀레브라이트사가 최근 이것을 해결한 프로그램을 출시해 수사에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과문인지 모르나 아이폰의 고향인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아이폰 비번으로 시끄러워진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어쩌다가 우리나라에서 휴대폰 비밀번호가 상당한 휘발성을 가진 민감한 뉴스의 소재가 되었을까?  


정치 탓? 그럴 수 있다. 청와대의 지방선거 개입 의혹,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 정권과 검찰의 갈등 등 정치적인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증거를 확보하는데 휴대폰 비밀 번호가 결정적인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관련된 정보는 디지털화되고 있고 휴대폰은 정보 디지털화와 유통의 첨병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휴대폰 비번은 더 이상 비번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첨단 디지털 포렌식으로 다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인이나 개인이나 정도를 걷고 언행이 일치하며 법과 도덕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해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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