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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이작가 Aug 07. 2018

이거 작업인가?

대용량 배터리, 왜 줬어요?


먼 길을 취재간 적이 있다.

초행길이라 차량 내비로는 마음이 안 놓여서

휴대폰 내비까지 켜서 찾아간 곳.


다행히 30분 정도 미리 도착할 수 있었지만

중요한 건 배터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취재 내용을 녹음해서 글을 쓰기 때문에

배터리가 없는 것은 큰 일이었다.


건물 안에 커피숍도 충전은 어렵다고 했다.

그날 처음 휴대폰 배터리가 이렇게 빨리 닳을 수 있음을 경험한 터라, 보조배터리는 커녕 충전잭도 없었다.


30분을 초조해하며,

과연 배터리가 녹음할 때까지 갈 것인지,

녹음이 안 된다면 나는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지

방안을 재촉하던 그때,


전화가 왔다.

1%도 아쉬운 상황에서 온 전화였지만,

게다가 모르는 번호였지만, 받아야 했다.

프리랜서는 받아야 한다....


알고 보니 그날 함께 취재할 사진작가였다.

원고작가와 사진작가는 보통 랜덤하게 배정되는데,

각자의 일정이 있기에 에디터의 조율에 따라 짝이 지어질 뿐이다.


마침 그날 배정된 사진작가는 처음 보는 분이었고,취재 시간까지 20분정도 남은 상황에서 어색한 대화를 해야만 했다.



소개팅이라도 된 양, 어색한 공기를 대화로 채워야했지만, 소개팅보다는 명확하게 대화의 주제가 제한된다. 보통은 그날 할 취재 이야기, 업계 이야기. 뭘 타고 여기까지 왔는지 정도.


그리고는 곧 소재가 고갈됐다.

‘이제 또 무슨 얘기를 하지?’


그러다가 보조배터리가 생각났다.

오면서 핸드폰 내비를 켜고 오느라 배터리가 다 닳아 버렸다고(나는 결코 준비성이 없는 게 아니라는 변명같은 변명을 하고는) 혹시 보조배터리가 있으시냐 물었다.


그러자 사진작가 왈,

‘운전할 때는 충전하면서 와야해요.’ 하는 게 아닌가.


뭐지, 이 친절함은?

마치 아빠가 딸에게 세상사는 노하우를 꼼꼼히 알려주는 뜻한 따스함.


‘아,그렇군요. 몰랐어요. 이런 적이 처음이라..’


그랬더니 대뜸 ‘제꺼 쓰세요.’ 하는 거다. 용량도 크고 좋은 거라며, 심지어 가지란다.


‘네? 정말..요?’


괜찮다고 사면 된다고 거절했지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오늘 너한테 이 배터리를 줄거야’라는 확신에 찬 권유.


결국 나는 배터리를 받아왔다.

물론 배터리 덕분에 취재도 잘 마쳤다.


작업인가?도 생각해봤으나,

그 뒤로 그분은 연락이 없었으며,

지금까지도 다른 취재에서 마주친 적이 없다.


이상했다.

처음 본 나에게,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나에게

도대체 왜 그걸 준 것일까.

내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결론 내렸다.

다른 사람 도와주길 좋아하고,

길가의 노점상 할머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심성 착한 청년.


그리고 그날 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만큼 안쓰러웠구나 생각했다.

상대방의 호의가 이토록 담백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경험했다.


괜히 받으면서도, 받아오고 나서도

그 사람의 호의 안에 진짜가 무엇인지를 파헤치려 한 내가 속물같이 느껴졌다.


그냥 준 배터리,

지금까지 잘 쓰고 있어요.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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