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일기장도 같이
5학년이 된 아들과 새해부터 일기쓰기를 시작했다. 5년 치의 일기를 한 권에 쓸 수 있는 일기장을 한 권씩 사서 나눠가졌다. 지금부터 꾸준히 일기를 쓴다면 아들은 고등학생까지의 일상을 모아둘 수 있다. 물론 아들이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지는 않는다. 일기장을 던져주면 그제서야 침대에 누운 채 몇 자를 끄적이고 다시 내게 건네준다. 제 자리에 넣으라는 뜻이다. 아들의 일기장을 받고도 나는 관심 없는 척 나의 일기쓰기에 몰두한다. 나에게도 내 하루를 모아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일기를 쓰고 있으면 아들은 금세 잠에 든다. 빨리 불을 끄라며 재촉하는 것도 잠시뿐 아들의 일기장은 그때부터 고양이 앞의 생선이 된다.
아들의 일기장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속내를 털어놓는 나만의 일기장이 따로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특히나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쓰기를 꽤나 권장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이었다. 거짓으로나마 선생님께 들려 드려도 될 만한 일상을 꺼내 쓰며, 나는 선생님의 칭찬을 원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때의 일기장을 잘 모아둔 덕분에 그때 나의 일기는 그 시절 나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해 준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내 안의 꼬마 숙녀도 반갑게 그 속에 살아 있다.
사진기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나의 엄마는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궁금하지만 되돌려볼 수 없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또박또박 써둔 일기들이 그 시절의 젊은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해 준다. 이를 테면 오늘은 옆집 누구누구 언니네와 어디에 갔다,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외식을 했다, 엄마가 오늘은 피자를 만들어 주었다와 같은 평범한 일상이다. 그 일기를 보면 나의 엄마가 어린 시절 나의 숙제를 살뜰히 챙겼고, 책을 읽으라고 자주 말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얼마나 잘 키우고 싶어 했는지,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어떤 정성을 기울였는지가 담겨 있다. 지금의 엄마가 나의 반찬을 챙기고, 휴대폰의 새로운 기능들을 내게 묻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엄마가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그래서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를 일기장이 설명해 준다.
어린 시절 내 일기를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내가 글을 쓰며 먹고 살 거라는 걸 알았는지, 내 일기장들은 버려지지 않았고, 우리 집에 있다. 지금의 아들과 동갑인 5학년 짜리 여자애가 그 속에 살아 있다. 책상도 없던 시절 식탁에 앉아 일기를 쓰던 그 시절의 꼬마를 나는 아들과 일기장을 펼쳐서 만나러 간다.
"아들! 지금 너랑 친구야. 얘도 맞춤법 다 틀린다. 웃기지" 하며 여기저기를 들춰본다. 처음에는 아들에게 일기 쓰기를 권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속의 나와 만나며 엄마 아빠한테도 고마운 마음들이 생겼다. 외식도 자주 했었네, 옆집 살던 이 언니, 결혼 아직 안 했다던데.... 그러다가 우연히 엄마가 만들어주던 피자를 기억하는 내가, 오늘은 피자를 먹었다,라고 써둔 페이지를 만났을 때 '아, 이 일기장에 있는 애가 지금의 내가 맞는구나' 실감한다. 길을 가다 만나면 참 귀엽다, 말해줄 것 같은 일기장 속의 나. 내 아들과 같은 나이의 일기장 속 꼬마가 커서 지금의 내가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나의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확인이자, 그때의 내가 존재했음의 증명이기도 하다.
그 이후 일기를 열심히 쓴다. 내가 쓰고 있는 일기장은 칸이 넓지도 않아서, 긴 하루 중 어떤 일을 남겨둘지 고민하게 한다. 일기장을 펼쳤다가도 곧바로 쓰고 싶은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하루 이틀 건너뛰기도 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일들은 지워지고, 남겨두고 싶은 일들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들 얘기, 회사 일, 들었던 황당한 소식이나 읽었던 책의 내용 등 소재도 다양하다. 앞에서부터 넘겨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는 뿌듯함과 함께 빼곡히 모아진 지금까지의 삶이 날아가지 않아 감사하다.
이 감정을 아들도 느꼈으면 해서 아들에게도 일기쓰기를 권한다. 물론 처음 일기장을 구입할 때 아들의 의사를 물었다. 아들은 쓰겠다고 분명 대답했고,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중이다. 뱉은 말이 있으니 아들도 마지못해 펜을 들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정말 빨리 쓰고 일기장을 덮는다. 대체 뭐라고 쓰길래 저렇게 빨리 쓰는 거야? 누구라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펼쳐본 아들의 일기장에는 담백한 한 문장들이 있다. '기계 같은 하루, 째깍째깍, 외할아버지가 영면에 드셨다' 등등 기교 부리지 않은 아들의 문장들이 세상 어떤 미사여구보다 좋다. 그렇게라도 한 문장씩 남겨두었음에 고마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매년 연말이 되면 서로의 일기장을 펼쳐 보며 한 해를 결산할 생각이다. 5년 치를 한 권에 담아둘 수 있으니 앞으로 5년은 서로의 하루를 나눌 수 있다. 휘발되어 버리는 하루하루를 담아둔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들과 일기 쓰는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복기해 보는 고요한 순간이 좋다.
그리고 이 순간들이 모여 5년 후, 혹은 10년 후의 나에게, 혹은 아들에게 내가 그랬듯 이해하지 못할 어떤 순간들을 설명해 주는 따뜻한 순간이 되어 줄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고, 아들의 담담한 문장들을 남몰래 아껴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