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만화만 읽어도 괜찮아요

4학년 아들의 책 읽기

by 이자까야 이작가

내 아들은 좀 남다르다. 아들바라기 어미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가끔 내 아들을 보고 주변에서도 그런 말들을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있다고 본다.



일단 책을 좋아하는 아들이다. 물론 만화책이지만, 같이 동네도서관에 가면 만화 코너로 곧장 직진해서 열댓 권을 순식간에 뽑아 든다. 3학년까지는 그 책을 들고 나르는 게 오롯이 나의 몫이었기에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힘이 어느 정도 커진 4학년이기에 아들이 빌린 책은 아들이 들도록 한다.


('즐겁고 싶은 자, 무게를 견뎌라...')


그래봤자 도서관 아동코너에서 주차장까지 정도이다. 어른인 내가 들어도 꽤 무거운 수준이기에 편도로만 들게 한다. 주차장에서 집까지는 항상 '이리 줘, 엄마가 들게.'라고 말하게 되는, 나는 모질지 못한 엄마다.


사실 도서관은 우리의 일주일 장보기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을뿐더러 홀로 아들을 키우는 나는 아들보다 늦게 집에 도착하는 워킹맘이다. 때문에 아들에게는 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올 때까지 휴대폰 시간이 남아있으면 휴대폰을 하다가 결국은 빌려온 책으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대부분은 나와 있는 저녁시간에도 책을 보곤 한다. 나의 퇴근과 동시에 나에게 참아왔던 하루동안의 에피소드를 쏟아내느라 바쁜 딸 같은 아들이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고 나면 이내 책으로 회귀한다.


물론 그 책들이 줄글로 된 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를 매번 생각했다. 너무 학습만화만 보는 건 아닐까? 하며 초등인기 도서를 만화책들 사이에 끼어 넣기도 하고, 사주기도 했다. 그리고 제 입맛에 맞으면 아들은 그런 책도 간혹 읽곤 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학습만화였다.


너무 만화책만 읽어요.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교육열은 없어도 책만은 가까이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은 엄마였다. 그래서 부단히 노력을 했고, 우리 아들은 글자를 깨우치면서부터는 서점가 공포시리즈 등등의 글밥 많은 책들을 섭렵하는 아들로 자라줬다. 그러나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만화를 보는 빈도가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처음은 마법천자문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나둘씩 인기 있는 학습만화를 빌려보더니 이제는 오히려 어릴 때보다 글밥 많은 책을 읽지 않게 된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더 주관이 뚜렷해진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들은 자주적으로 책을 골랐고 그 관심사는 무척 다양했다. 역사, 인물, 맞춤법, 공포 시리즈, 빈대가족.. 등등 이게 왜 재밌어? 할 법한 책들도 한번 꽂히면 그 시리즈는 전부 뽑아서 아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 댔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그러던 와중에 유명한 시인의 인터뷰를 하게 된 적이 있다.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직업적인 특권으로 그런 분을 만나 뵌 김에 나는 내 아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제 아들이 책은 안 읽고 만화책만 읽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습니다. 나쁜 책도 읽어봐야 그게 나쁜 걸 알게 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만화책을 언제까지 보겠어요?"


하시는 게 아닌가. 덤덤하게 툭 그 말씀을 뱉으시는데 왠지 모를 화끈함이 느껴졌다. 그래 맞아, 언제까지 보겠어? 그리고 안 보는 거보다 낫잖아?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동안 만화책을 읽는 아들의 뒤통수를 그토록 째려봤을까....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 아들, 맘껏 빌려 만화책!



그 이후로 나의 내적 째림에서 벗어난 아들은 이제 맘 편히 만화책을 보고 있다. 정확히는 내 맘이 편해졌다. 만화책만 보는 아들이어도 가끔 철학적인 질문을 건네는 걸 보면, 역시나 책은 책이며, 그 책으로 인해 우리 모자의 대화 주제가 더 넓어짐을 느낀다. 오히려 걱정은 내가 아니겠는가. 근무하는 동안 무수한 텍스트를 눈으로 삼켜야 하는 나는 퇴근과 동시에 읽기 버튼을 꺼버리고 숏츠에 뇌를 맡긴다. 후,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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