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08 수지(水地) 비(比) 괘: 협력과 사귐
반장과 부반장
학교를 옮기면서 오랜만에 고3 학급을 맡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낯선 공간에서 내 손길 한번 가지 않은 학생들과 만난다는 것은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금년 코로나 19의 여파로 학생들을 만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학기 초의 어색함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인 것은 우리 반 반장과 부반장이 나의 부족한 점을 잘 채워줬다는 점이다. 반장과 부반장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학생들이었다. 반장은 계획을 잘 세우고 실천하는 성격이라면 부반장은 직접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성격이었다. 예를 들어 체험학습이나 질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청소 당번이 비게 되면 반장은 청소 당번을 조정하는 반면 부반장은 구멍 난 청소 당번의 역할을 자신이 대신하는 리더십을 보였다. 두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우리 반의 리더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학급의 학생들도 이 두 사람을 믿고 잘 따르니 담임으로서 오랜만에 평화롭고 안정된 학급을 만나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반 학생들이 반장과 부반장을 믿고 따라 친밀하게 지내니 이 모습은 주역의 수지(水地) 비(比)의 모양과 비슷하다.
수지(水地) 비(比) 괘는 강직하고 바른 리더를 중심으로 모인 상(象)
<주역전의>에는 수지(水地) 비(比) 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比) 괘는 <서괘전>에 ‘여러 사람은 반드시 친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비(比) 괘로 받았다.’라고 하였다. 비(比)는 친애하고 도와주는 것이니, 사람의 무리는 반드시 서로 아끼고 도와준 뒤에 편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미 무리가 있으면 반드시 비친(比親)하는 바가 있는 것이니, 비(比) 괘가 이 때문에 사(師) 괘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 됨이 위는 감(坎)이고 아래는 곤(坤)이니, 두 체(體)로 말하면 물이 땅 위에 있으니, 물건이 서로 지극히 가까워 간격이 없음은 물이 지상에 있는 것보다 더 함이 없으므로 비가 된 것이요, 또 여러 효가 모두 음이고 홀로 5가 양강(陽剛)으로 군위(君位)에 거하여 무리가 친애하여 따르며 위 또한 아래를 친애하므로 비(比) 괘가 된 것이다.”
앞의 글(07)에서 살펴본 지수(地水) 사(師) 괘가 어떤 목표를 위해 모인 조직을 나타낸 것이라면 비(比) 괘는 그 조직이 잘 유지되기 위한 원리를 담고 있다. 다섯 개의 음효(陰爻) 가운데 홀로 있는 양효(陽爻)는 강직한 리더를 나타내며, 다섯 개의 음효는 리더를 친밀하게 따르는 무리이다. 강직한 리더와 순종하는 무리가 만나 격의 없이 사귀니 친밀함을 나타내는 의미가 된다.
갑골문에서 발견된 비(比) 자의 원형도 비(比) 괘의 의미와 비슷하다. 갑골문의 비(比)라는 글자는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다. 친밀한 두 사람이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허리를 숙이고 곡식을 함께 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비(比)라는 글자는 '친하다.', ‘견주다.’, ‘본뜨다.’, ‘비교하다.’, ‘사귀다.’ 등의 뜻이 담겨 있는데, 두 사람이 협력하여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맺을 수 있는 관계적 행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갑골문 비(比)(출처: hanziyuan.net)
아껴야 이웃이 곁에 있다.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인간은 모자란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 모자람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기 어려운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며, 누군가의 협력이 없으면 인생은 무척 괴로워진다. 따라서 필요한 시기에 자신에게 도움을 줄 인적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원리는 무엇일까? 비(比) 괘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사람의 무리는 반드시 서로 아끼고 도와준 뒤에 평안할 수 있다.”
‘아낀다’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랑하는 이와 결혼한 사람은 그 배우자에게 험한 일을 시키지 못한다. 몇 년 만에 어렵게 가진 금지옥엽(金枝玉葉) 자식에게 부모는 설거지 같은 사소한 일을 시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누군가를 아낀다는 것은 그 대상을 쓰면 안 되는 것이다. 대신 자신이 나서서 그가 할 일을 도와야 한다. 배우자를 대신하여 일하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그들을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친(親)함이 생겨나고 이것이 확대되면 친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개인, 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 더 나아가 국제 사회까지도 확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내 옆의 누군가를 아끼지 않고는 작은 인간 관계도 성사될 수 없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필요하면 상대가 필요할 때 도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될 때 우리는 '신뢰 관계가 성립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내 옆에 사람이 없다면 내가 평소 사람을 아끼며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국제사회의 협력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신뢰 관계를 맺는 원리는 국제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석유, 철광석 등 지하 자원이 부족하여 경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안정적인 자원 외교를 발판으로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산업 국가에서 가장 필요한 지하자원인 원유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원유 생산국들의 눈치를 봤지만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등 원유 주요 생산국들과 오래도록 신뢰 관계를 쌓으면서 안정적으로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국내 산업에서 사용할 석유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정유를 수출하는 국가로 성장하여, 2018년 BP(영국 석유기업)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유 정제 설비 능력이 세계 5위권에 들고, 처리물량은 6위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원 빈국이지만 자원 부국의 도움과 교류를 통해 세계적인 석유 판매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우리나라도 기술을 발전시켜 첨단기술이 부족한 국가에 다양한 첨단 상품들을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예처럼 다른 많은 국가들도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 등의 경제 블록을 형성하여 인접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과 외교적 노력은 인접국들의 공동 번영을 이루고 지구적 환경 문제, 세계 평화 문제를 해결하는 귀중한 황금 열쇠이다.
경제블록을 형성하여 경제 협력체를 만들고 있는 태평양 인접 국가들평화의 소녀상과 비(比) 괘의 지혜
그러나 언제나 국가 간에 협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9년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우리나라에 보복성 무역 규제를 가해왔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고순도 불화수소를 일본이 규제 품목으로 지정하여 통보를 했고 이에 우리나라는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내에서 개발하여 국산화함으로써 응수했다. 또한, 2020년 10월 일본은 독일의 베를린 시에 압력을 넣어 이미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수 시도를 진행 중이다.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이웃이기에 누구보다도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과거 제국주의의 망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 우리와 매우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버렸다.
일제 수탈의 상징인 (구)목포 세관 앞 '목포 평화의 소녀상'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 방법을 주역의 비(比) 괘에서 찾으면 어떨까 싶다.
"비(比)는 친애하고 도와주는 것이니, 사람의 무리는 반드시 서로 아끼고 도와준 뒤에 편안할 수 있다."
주역은 일본에게 국제 사회에서 사람의 무리로서 대우받고 번영과 평화를 원한다면 이웃 국가들을 소중히 아끼고, 협력하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