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학교
학교에는 고양이가 많다. 일 년에 두어 번씩 새끼를 낳는 동물이라 어미 고양이 한 마리가 터를 잡으면 얼마 후 그 일대에는 비슷하게 생긴 새끼 고양이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이 중 많은 놈들이 야위고 병들어 있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 학교에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고양이 멍멍'이라고 하는 동아리를 만들어 고양이를 돌본다. 내 옆자리 국어 선생님은 어미가 버린 새끼 고양이를 입양하여 지금은 침대 한 켠을 묘공에게 내주었다고 한다. 선생님, 학생, 급식실 조리종사원 등 학교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고양이들을 정성껏 돌보니 학교는 고양이 세상이 되었다.
따뜻한 보살핌 덕에 고양이들은 자신의 습성을 잃지 않고 품위 있게 살아간다. 고양이들은 자기를 돌본 사람들을 집사(執事)로 생각하여 그동안의 공로를 치하하며 몸을 비비고 핥는 성은(聖恩)을 베푼다. 아무리 바빠도 허둥지둥 대는 법이 없으며 대소변의 장소를 가리는 예의(禮儀)와 절도(節度)가 있으니 선대로부터 내려온 훌륭한 가풍(家風)을 지켜 온 묘공(猫公)의 후손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도 고양이들은 교정에 누워 눈을 감고 햇살을 즐기고 있다. 평화롭게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천택(天澤) 리(履)'의 상(象)을 읽는다.
우리 학교 고양이들(by 오T, 양T, 김T, 이T) 하늘 아래 연못, 천택(天澤) 리(履)
<주역전의>에서는 리(履) 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리(履)는 예(禮)이니, 예(禮)는 사람이 행하는 것이다. 괘 됨이 하늘(天)이 위에 있고 못(澤)이 아래에 있으니 하늘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처한 것은 높고(高) 낮음(下)의 구분과 귀(貴)하고 천(賤)함의 의(義)이니, 이치의 마땅함이요, 예(禮)의 근본이요, 떳떳이 행해야 할 도(道)이다."
䷉
천택 리
연못(☱) 위에 하늘(☰)이 있는 것이 '천택(天澤) 리(履)' 괘이다. 연못(☱)은 무엇을 담는 그릇이나 돌봄을 상징한다. 저수지가 택(☱)이고, 생각을 담고 있는 머리가 택(☱)이다. 학생들을 돌보는 학교가 택(☱)이고, 환자를 돌보는 병원이 택(☱)이다. 천(☰)은 우주의 법도요, 이상(理想)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우주의 힘이 천(☰)이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법도가 천(☰)이다.
천택(天澤) 리(履)는 하늘과 연못이 위아래로 놓여 있어 상하의 도리가 충돌하지 않는다. 군자는 맑은 하늘 아래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고 자신의 본분을 생각하니, 그 뜻이 마땅하여 떳떳하게 행동한다. <주역>은 '하늘 아래 연못의 상'을 통해 인간 세상의 마땅한 질서와 실천의 도를 말하고 있다.
고양이는 조용하고 고요하여 택(☱)에 가깝고, 예의와 범절에도 뛰어나니 택(☱)이라고 할 수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고요히 앉아 묘공의 도리를 추구하니, 이 모습은 전형적인 천택(天澤) 리(履) 괘의 상이다. 우리 학생들도 묘공의 도를 본받아 군자의 길로 밟아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동물원,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그릇(䷉)인가?
자연의 도리가 구현된 많은 동식물(☰)을 돌보고 가꾸니(☱) 동물원은 리 괘(䷉)의 상이다. 나는 야생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해마다 방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물원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라 믿고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동물원 투어를 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사는 동물들이 정형행동(Stereotypic Behavior,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나 놀이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닌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 자연 상태가 아닌 동물원과 같은 사육 상태의 동물들에게서 많이 발견. 협소한 사육 공간, 유아기 때의 놀잇감의 부족, 체험 행사 등에 의한 스트레스를 통해 발병됨)을 하며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들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삼을 만큼 모질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동물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
공간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동물원은 인간과 영토적 갈등 관계에 있다가 추방당한 동물들의 집합소이다. 동물원 운영자들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 '서식지 외 보호 기관', '생물 종 보전 기관' 등으로 동물원을 애써 미화하고 있지만 결국 동물원은 인간과의 영토 경쟁에서 밀린 동물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비생태적 공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동물원은 이미 추방했거나 앞으로 추방 예정인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모아 놓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 야만의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동물원 분포(지도출처: 강원발전연구원) 역사적으로 인간과 공간적으로 경쟁을 하거나 공간을 위협한 동물들은 대부분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다. 호랑이, 표범, 늑대는 적으로 간주되어 한반도 야생에서 이미 사라졌고, 지금도 돼지 열병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멧돼지는 유해 동물로 지정되어 무자비하게 사살되고 있다. 인간의 영역에 들어온 이방인들은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아니면 미생물이든 간에 추방되었다. 추방된 동물들은 더 깊은 야생으로 숨어 들어가거나 멸종되었으며, 운 좋게 보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종들은 '종의 유지와 보존'을 구실로 동물원에 끌려들어 왔다. 100㎢의 광대한 면적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 사냥하는 백두산 호랑이를 30㎡ 안팎의 좁은 우리에 가두어 사육하는 행위는 동물원을 '종의 보존', '공존'의 장소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묘공의 운명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도 위태로워 보인다. 강력한 쥐약의 개발, 해충 제거 전문 기업의 등장 등 인간이 쥐를 부정하는 방식이 갈수록 정교해지면서 쥐를 통해 인간과 공존의 계약을 맺었던 고양이는 더 이상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지 못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미모로 인기를 유지하는 아이돌 연예인이 나이가 들면 여지없이 퇴출되는 방송시장에서처럼 늙고 병든 초라해진 고양이는 인간사회에서 추방당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게다가 유기된 고양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진드기를 옮기는 숙주로 인식되면서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농림축산부 자료에 따르면 유기동물 구조한 현황은 2017년 102,593마리, 2018년 121,077 마리, 2019년 135,791 마리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이 중 23.5%인 31,910마리가 고양이이다. 이들 중 자연사·안락사 비율이 46.6%에 달하니 유기된 고양이들의 마지막이 애초롭다.
고양이와 사람의 평화로운 공존의 공간, 학교(by 이재정T) 하지만 동물을 유기하는 이기적인 사람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더 많다. 특히, 우리 학교에서는 구성원들이 유기된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사비를 들이고, 평화적으로 공간을 공유한다. 머리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랑을 실천한다(履).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면, 그 소중한 꿈을 보듬어 실천하는 공간은 학교(☱)이다.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교정에서 햇살을 맞으며 미래세대에게 전해줄 인간의 도리를 생각해본다.
참고자료
황진태 외, 2019, "발전주의적 코스모폴리틱스로서 동물카페", 문화역사지리 제31권 제3호(2019) 61-78
김준수, 2019, "돼지전쟁_아프리카돼지열병을 통해 바라본 인간 너머의 영토성", 문화역사지리 제31권 제3호 41-60
농림축산검역본부, 2019 반려동물 보호·복지실태조사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