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17. 택뢰(澤雷) 수(隨): 암울한 현실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다.

by 땅 작가

코로나 19의 여파로 야외활동이 어려워졌다.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가자던 계획이 무산된 지 만 1년이 다 되어 간다. 쌍둥이 아이들은 몇 년째 다니던 태권도장을 쉬고 있고, 어른들은 오래도록 산책조차 못하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식구들 얼굴에는 살이 토실토실하고, 허리는 구부정한 것이 곧 병이 나겠다 싶었다. 가끔 마음도 울적해지고 정신도 맑지 못하니 실내에만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삶에 변화를 줄 겸 실내 자전거를 거실에 들여놓았다.

그 자전거는 다양한 기능이 있었다. 거리, 시간, 속도 측정은 물론이고 체지방 지수와 심박수를 체크하는 기능이 있었다. 이런 기능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을 올려놓을 수 있는 거치대가 가장 좋았다. 거치대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을 수 있으니 원하는 콘텐츠를 보고 들으며 운동할 수 있었다. 나는 몇 년째 미루고 보지 못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이번 기회에 몰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명작이라 소문난 작품을 만나기 위해 자전거 안장에 올라앉았다.


미스터 션샤인, 암울한 현실을 탈출하려는 젊은이들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환경이 자신의 의지를 구속할 때가 있다. 특히, 개인에게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모'와 '사회'는 거스르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 되는데, 부모는 나를 낳아준 존재이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요, 사회는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일시적으로 교정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부모가 악인이고, 사회가 폭력과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미스터 션사인>의 주요 인물은 쿠도 히나, 구동매, 유진 초이, 고애신, 김희성 등인데, 이들은 부모, 사회, 국가 등 자신을 가두고 있는 환경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고 있었다.

미스터 션샤인 광고 포스터. 왼쪽부터 쿠도 히나, 구동매, 유진 초이, 고애신, 김희성 역. (출처:tvn)

쿠도 히나는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익의 외동딸이다. 이완익은 그녀를 강제로 돈 많은 늙은 일본인에게 시집을 보냈으니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 남편이 죽자 쿠도 히나는 경성에서 가장 큰 호텔을 운영하여 많은 돈을 벌지만, 그 돈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은밀히 도우며 아버지 이완익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그녀는 글로리아 호텔을 강제로 점유하여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처단하기 위해 폭탄을 설치하고, 폭파되는 호텔과 함께 삶을 마감한다.

구동매는 일본으로 건너간 백정의 자식이다. 일본 낭인 조직에서 칼솜씨로 실력을 인정받아 낭인의 중간 보스가 되었으며, 조선으로 귀국한 후 조직의 힘을 이용해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을 백정이라고 무시한 이들을 죽인다. 일본 낭인 칼잡이로 살다가 어릴 적 자신을 도와준 고애신을 만나면서 삶의 태도가 바뀐다. 고애신을 돕기 위해 일본을 등진 구동매는 낭인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살해당한다.

유진 초이는 조선 최고의 세도가로부터 도망친 노비이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유진 초이는 진짜 미국인으로 살기 위해 미국 해병대에 지원하는데, 전쟁에서 공을 세워 미 해병대 장교로 승진한다. 유진 초이는 조선 주둔군 장교로 부임하여 어릴 적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흉들에게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조선 정부와 일본군에게 미국의 권력을 행사한다. 고애신을 사랑하게 된 후 그녀를 위한 삶을 살면서 미 해병대 장교직을 박탈당하게 되고 결국 그녀의 목숨을 지키다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고애신은 조선 명문 양반가의 딸이다. 명문가의 후예로서 조신하게 가정교육을 받고 정혼자와 결혼하라는 할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부모와 같은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는다. 조선 양반가 여성의 틀을 깨고 총포를 들고 일본군 요인들을 암살하는 역할을 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인생을 건다.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장 독립군의 사격 교관으로 활동하는 모습으로 극 중 역할을 마무리한다.

김희성은 조선 최고 갑부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지식인이다. 겉으로는 속없는 인물로 행세를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악행을 저지른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에 대한 반항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신문사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죽는다. 이러한 인물의 특징을 '자신을 속박하는 것'과 '속박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을 둘러싸고 속박하는 것은 택(☱) 괘로 볼 수 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뢰(☳) 괘로 볼 수 있다. (연못은 무엇을 담는 그릇의 상징이다. 우뢰는 강력하게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못 속에서 약동하는 우레이지만 못이 깊어 빠져나오지는 못하고 진동하고 있다. <미스터 션사인>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둘러싼 환경, 그것을 극복하려는 주인공들은 괘상으로 보면 택뢰 수(䷐)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택뢰 수

택뢰 수 괘에 대해 <주역전의>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택뢰 수

괘 됨이 태(兌)가 위에 있고 진(震)이 아래에 있으니, 태는 기뻐함이 되고 진은 동함이 되니, 기뻐하고 동하며 동하고 기뻐함이 모두 수(隨)의 뜻이다. 여자는 사람을 따르는 자이니 소녀로 장남을 따름은 수의 뜻이며. 또, 진(震)은 우레가 되고 태(兌)는 못이 되니 우레가 못 속에서 진동함에 못이 따라 움직임은 수(隨)의 상(象)이다.


괘의 모양으로만 보면 깊은 연못에 우레가 이는 상이다. 이는 주요 등장인물이 신분적, 사회적 속박이라는 깊은 연못에 가두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우레처럼 분연히 노력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이 밖에도 다양한 방식의 의미 부여를 통해 텍스트를 만들어낸다.

주역에서는 적은 것을 귀하게 여겨 의미를 부여한다. 여자가 많은 데에서는 수 적은 남자가 귀하게 대접받고, 남자가 많은 데서는 수 적은 여자가 귀하게 대접받는 것과 같다. 따라서 뢰(☳) 괘는 양이 의미를 주도하는 괘가 된다. 이를 사람으로 본다면 양이 나온 순서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므로 뢰(☳)는 장남, 수(☵)는 차남, 산(☶)은 소남이다.

같은 원리로 보면 풍(☴)은 장녀, 화(☲)는 차녀, 택(☱)은 소녀가 된다. 따라서 택뢰 수(䷐)는 장남((☳)) 위에 소녀(☱)가 있는 괘이다. 위의 <주역전의>의 택뢰 수의 풀이에서 '소녀가 장남을 따른다.'라는 뜻은 택을 소녀, 뢰를 장남으로 여기는 데서 나온 말이다. '우레가 진동하니 연못이 따라 움직인다.'라는 뜻은 소녀와 장남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쿠도 히나, 고애신이라는 두 여자 주인공(☱)과 유진 초이, 구동매, 김희성이라는 세 남자 주인공(☳) 사이에는 러브 라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하나가 동하면 다른 하나가 동하고, 그 하나가 동하면 또 다른 하나가 동한다.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으로 따르니 괘의 이름이 '수(따르다, 隨)'인 것이 자연스럽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올듯한 감정(☳)을 억제하며 눈빛으로 서로에게 사랑과 우정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처럼 빈번히 택뢰 수 괘가 드러나니 이 드라마에 <연못과 우레의 이야기>라고 부제를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코로나의 수렁을 탈출하자.

안타깝게도 주인공 대부분이 일제의 만행으로 죽고 끝나는 결말로 인해 며칠 동안 마음이 아팠다. 답답한 실내(☱)에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 마음이 가벼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감옥 아닌 감옥에서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드라마와 자전거가 이 위기를 벗어나는 정답은 아니지만 상황은 변하게 되어있다. 그것이 주역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이고 지혜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 위기를 인내하고 극복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실내 자전거 위에 앉아 페달을 구른다. 기분 좋아지는 드라마를 찾으러 실내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한걸음 더 지리 속으로: 마리아나 해구의 잠수함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는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마리아나 해구(Mariana Trench)이다. 태평양 판과 필리핀 판이 만나는 곳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는 평균 수심이 7,000m, 가장 깊은 곳은 최대 깊이는 10,984m라고 알려져 있다. 깊은 해저는 수압이 높아 탐험이 어렵기 때문에 잠수함이 개발되기 전에는 미지의 세계였다. 10m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오른다고 하니 1,000기압을 견딜만한 잠수함이 없이는 마리아나 해구에 접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JJQGDJMQWVQEGAPM6IV5GBQWEA.jpg 마리아니 해구의 위치

역사상 인간이 마리아나 해구 극심점에 도달한 사례는 단 세 차례밖에 없다. 첫 번째는 1960년 미국 해군 중위인 돈 월시와 스위스 엔지니어인 쟈크 피카르드가 바티스카프 트리에스테호에 타고 최초로 유인 탐사에 성공했다. 기록은 1만 911m였다. 두 번째는 2012년 영화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딥씨 챌린지’ 프로젝트를 진행해 1만 908m에 도달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2019년 '인사이트 에퀴티 홀딩스' 공동 창립자 빅터 베스코보가 세계 최초의 티타늄 소재 잠수정 '리미팅 팩터'로 극심점 탐험에 성공했다. 깊이는 1만 927m였다. 우주여행을 준비하는 시대이지만 지구 내부나 깊은 바다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이다.

택뢰 수의 괘상을 '깊은 못 속의 강한 움직임'으로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깊은 못은 태평양이고, 강한 움직임은 잠수함이니, 태평양 깊은 곳 마리아나 해구를 탐험하는 잠수함의 모습이 택뢰 수의 괘상과 닮아 있다.


자료출처: 중앙일보, 2019.05.13.'해저 1만927m 간 억만장자 "거기에도 쓰레기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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