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진안고원에는 마이산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은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이상한 것 중 첫 번째는 그 모양이다. 암 마이산과 숫 마이산 봉우리가 마치 말의 귀처럼 쫑긋하게 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봉우리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이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어떻게 이 각도로 서 있을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어지간한 암석이라면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벌써 붕괴하고도 남았을 각도이지만, 마이산은 중력을 비웃는 것처럼 도도하게 꼿꼿이 서 있다. 어떻게 마이산은 급경사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마이산을 구성하는 암석을 가까이에서 보면 그 모양이 공사현장에서 볼 수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와 같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래, 진흙과 같은 작은 입자와 자갈과 같은 굵은 입자들이 서로 어지럽게 섞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암석을 역암이라고 부른다. 마이산의 역암 돌벽을 못으로 긁어보면 잘 긁히지 않을 만큼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하다. 마이산의 역암은 모래, 자갈, 진흙 등의 다양한 암석 입자들과 조개껍질과 같은 생명체의 유해에서 기원한 석회질(탄산칼슘) 성분이 섞여 단단하게 굳어진 천연 콘크리트인 셈이다. 마이산은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암체이기 때문에 급경사의 절벽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상한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모래, 자갈, 진흙, 조개껍데기 등은 바다나 호수에서 형성되는 것들이다. 마이산은 해발 680m 정도 되는데 이것이 무슨 일인가? 마이산의 특이한 점 중 두 번째는 마이산의 형성 과정이다.
마이산이 위치한 진안고원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만나는 고원지대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억 년 전에는 마이산 일대가 해발고도가 낮은 분지였다. 마이산의 역암은 분지의 낮은 부분, 즉 호수 밑바닥에서 형성된 것인데, 신생대 3기 이후 한반도에 융기 운동이 일어나자 퇴적층(역암층)의 해발고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주변에 비해 역암의 강도가 강하여 풍화에 더 잘 견디면서 역암이 있는 곳만 높은 봉우리가 되었고 주변부는 풍화되어 사라졌다. 높은 곳이 낮은 곳이 되고, 낮은 곳이 높은 곳이 되는 기이한 과정을 오래도록 거치면서 마이산은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다.
수 천만 년을 견딘 마이산이건만
'산'은모진 풍파에도 꿋꿋이 버티는 강인한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높은 뜻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은 산과 같다고 한다. 삼국지의 명장 관우가 절개를 끝까지 지키는 모습은 산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애니메이션 <뮬란>에서 흉노족들이 황궁에 쳐들어와 황제가 위험에 처했을 때 황제는 "바람이 분다 한들 태산은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산에 빗대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으랴. 강인한 산도 결국은 무너진다. 자연이 가진 힘 앞에서는 영원할 수 없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조용히 파고드는 대기의 숨결 앞에서는 굳건한 산도 스러지는 것이 우주의 순리이다.
마이산이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이지만 마이산 봉우리 아래쪽에 쌓인 자갈들을 보면 우주의 순리가 이 장소에도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마이산 봉우리들의 남쪽 사면에는 자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이 자갈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봉우리의 경사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봉우리에는 벌레가 파먹은 듯한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마이산의 타포니(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역암층으로 이루어진 마이산의 경우, 물이 침투하여 흐른 곳을 중심으로 풍화 작용이 진전되어 역암의 자갈들이 이탈한 흔적들이 보인다. 남사면에 보이는 벌레 먹은 듯한 구멍들을 지리학 용어로 '타포니(Tafoni)'라고 부르는데, 물의 흐름, 온도와 습도 등 환경적 요인이 타포니의 발달에 영향을 주면서 마이산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타포니, 산에 벌레가 들다.
주역에서 산(山) 아래 바람이 든 것을 '고(蠱)'라고 이름 붙였다.
고(蠱) 괘는 <주역전의>에 "괘 됨이 산(山) 아래에 바람(風)이 있으니, 바람이 산 아래에 있다가 산(山)을 만나 돌면 물건이 혼란해지니, 이것이 고(蠱)의 상(象)이다. 고(蠱)의 뜻은 파괴되고 혼란함이다. 글자에 있어서는 충(벌레, 蟲)과 명(그릇, 皿)이 되니, 그릇에 벌레가 있음은 좀먹고 파괴되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앞서 언급한 타포니는 산풍 고 괘를 보고 이름을 지은 듯 형태와 뜻이 부합된다. 암석이 공기, 물, 생물 등 환경의 영향을 받아 점점 잘게 부서지는 현상을 '풍화작용(風化作用, weathering)이라고 하는데, '타포니(tafoni)'는 풍화작용의 한 결과로서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은 마이산 암석에 벌집 모양의 구멍을 내며 서서히 파괴시킨다. 암석에 박혀있는 자갈이 빠져나와 산 사면에는 구멍을 내고, 산 아래에는 둥근 자갈 무더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모양은 '좀먹고 파괴되는 뜻'과 부합한다.
일을 다스림
<주역전의>에 "괘의 상(象)으로 말하면 고(蠱)를 이룸이 되고, 괘의 재질(才質)로 말하면 고(蠱)를 다스림이 된다."라고 하였다. 풍화로 인해 부스러지는 것은 자연의 일이지만, 그것을 혼란스럽게 느끼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어떤 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기에 일을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뜻을 읽어서였을까. 마이산 아래에는 누군가가 일을 삼아 어지럽게 널브러진 자갈들로 쌓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이갑룡(1860~1957) 처사라는 분이 돌탑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도 돌탑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풍화된 암석으로 탑을 세워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마이산 석탑(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하립(1769~1831)이 쓴 《담락당운집(湛樂堂韻集)》에는 마이산 속에 탑이 여럿[重重]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속금산(束金山)속에 탑이 줄줄이 서 있는데 [束金山裡塔重重]
단풍나무 숲에서 저녁 종소리 듣네 [紅樹陰中聽晩鍾]
오래된 절이라 볼 것은 오로지 금불상뿐 [古寺惟看 金佛像]
바윗길 험하여 세간사람 발길 없네 [岩危不到 俗人筑]
마음 씻고 보니 三千界에 꽃 비가 가득 [洗心花雨三千界]
눈을 드니 구름노을 제일봉에 감도네 [聘目雲霞第一峯]
진경(眞景)이라고 자랑하는 늙은 스님 말을 듣고 [白衲爲言 眞景好]
신선의 자취 찾아 온종일 산속을 헤맸네 [山行盡日 覓仙踪]
(출처:진안군청 홈페이지)
이 시를 접하면 돌탑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사람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는 물건이 아님을 생각한다면 왜 이 탑들을 쌓았는지는 유추해볼 수 있다. 굳건한 산처럼 살고 싶으나 바람같은 유혹에 쉽게 흔들리며 괴로워 하는 것이 인생이다. 돌탑을 쌓아 산을 정리하는 것은 마음 닦는 선의 방편이었으리라. 사람의 마음은 위태로운 것이기에 항상 마음이 달아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잘 다스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