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 괘(☱)는 어떤 물건을 담는 '용기'를 상징하고 있다. 연못, 호수, 대야, 컵은 물을 담고 있으니 당연히 택 괘(☱)가 될 수 있고, 노트, 외장 하드 디스크, 일기장도 어지러운 생각이나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이니 택 괘(☱)라고 말할 수 있다. 지 괘(☷)는 어떤 것의 바탕, 터전을 상징한다. 물고기에게는 바다가 지(☷)요, 날짐승에게는 숲이 지(☷)이다. 종이라는 바탕이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지(☷)가 없다면 어떤 존재도 홀로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지택 림 괘(䷒)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바탕을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삶의 공간을 담는 그릇
사람에게는 무엇이 바탕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을까?
농사를 지으며 살던 시절 삶의 바탕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였다. 농토가 삶의 원천이므로 외부로부터 농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찍부터 사람들은 성벽을 쌓아 성곽도시를 만들거나 험준한 산에 둘러싸인 분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살았다. 또한, 휘돌아가는 물줄기를 성벽 삼아 마을을 담아내었고 그러한 공간에는 주거공간, 대장간, 상점, 행정시설 등 다양한 기능이 점진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토지를 바탕으로 형성된 삶의 공간과 이를 보호하는 지리적, 인문적 보호막은 지택 림의 괘(䷒)의 의미를 담고 있다.
휘돌아가는 물길의 보호를 받는 하회마을
공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공장에서 먹고살 방법을 찾았다.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받은 임금으로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했고 삶은 윤택해졌다. 상품이 빠른 속도로 유통하여 이윤을 냈고, 그것들을 쌓은 자는 부자가 되었다. 농작물을 토대로 부를 쌓았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부의 축적 속도가 빨라졌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농지를 버리고 공장이 있는 도시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미 공장이 있던 도시는 그 규모를 키웠고, 공장이 없는 마을에는 공장을 짓느라 농지를 시멘트로 메웠다. 기존의 도시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업 도시의 성격을 가진 곳도 있었고,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공장 운영을 위한 부지를 선정하여 산업단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처럼 공장을 품고 있는 공업도시 혹은 산업단지는 공장이라는 삶의 원천을 담아내기에 지택 림 괘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옥구봉에서 바라본 시화 공단의 전경
공장을 담고 있는 산업단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산업화가 진행 중인 국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울산 석유화학단지, 여수 석유화학단지, 대산 석유화학단지 등 정유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업 단지, 대덕 연구단지처럼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구축된 산업단지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산업 단지가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루트 128, 유럽의 소피아 앙티폴리스, 제3이탈리아, 사이언스시티, 실리콘 글랜 등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구축된 산업단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산업단지를 만들어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외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업종이 모여 있는 경우 원료를 함께 수입하거나 상품의 판로를 공동으로 개척할 수 있으며, 비슷한 공정이 있는 경우 시설을 함께 사용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다른 종류의 업종이 모인 산업단지의 경우에는 서로 정보를 교류하여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는 등 강력한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함께 모여 있으면 강력한 힘이 나온다.
지택 림 괘(䷒)에 대해 <주역전의>에서는 "괘 됨이 못 위에 땅이 있으니, 못 위의 땅은 강안(江岸)이니, 물과 서로 접해서 물에 임(臨)하여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임(臨)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택 림 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역전의>의 '가까이 있음'의 뜻만 가진 것이 아니다. 1,2 /3,4 /5,6괘를 중첩시켜보면 뇌 괘(☳)가 된다. 큰 우레(大雷)가 지택 림 괘(䷒)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레는 강하게 움직이고 빠르게 변하는 물건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가까이 임할 때 세상을 변화시킬 큰 힘이 나온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형상인 것이다. 산업단지나 혁신 클러스터가 특정 공간 안에서 인적, 물적 교류를 하며 숨겨진 잠재력을 끌어내어 강력한 시너지와 혁신을 이루는 모습이 지택 림 괘(䷒)인 것이다.
교무실에 모여
학기 초라 시행착오가 많다. 선생님들은 교무실에 모여 원격수업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아이들이 잘하고 못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 다양한 사안으로 지혜를 모은다.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를 맞대고 있으면 고민거리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학교라고 하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긴밀하게 우리의 미래 세대인 학생들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이곳저곳에서 번개처럼 반짝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지택 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