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20. 풍지(風地) 관(觀): 눈으로 봄

by 땅 작가

1990년대 후반 <날으는 새가 되어 땅 위를 살펴본다>라는 제목의 지리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경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등 주요 고속국도로 연결된 우리나라의 도시들을 지리학적 관점으로 풀어내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대지를 살피듯 지리학자의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땅을 꼼꼼히 분석한 이 책은 지은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느끼게 해준다.

새는 바람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니 책 제목의 '날으는 새'는 주역 8괘 중 풍(바람) 괘에 해당하고, '땅 위'는 지(땅) 괘와 통하니, 합쳐보면 이는 풍지 관의 상이다. <주역전의>에서 풍지 관(觀) 괘에 대해 "바람이 지상(地上)에 행하여 만물을 편촉(徧觸, 두루 접촉함)함은 두루 보는 상이요, 두 양(陽)이 위에 있고 네 음(陰)이 아래에 있어서 양강(陽剛)이 존위(尊位)에 거하여 여러 아랫사람들에게 봄이 됨은 우러러보는 뜻이다. 여러 효에 있어서는 오직 보는 뜻만을 취하였으니, 때에 따라 뜻을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괘의 모양에서 5효와 6효가 양효이고, 아래의 1,2,3,4효가 음효이니 여러 음효가 높은 곳의 양효를 우러러보는 모양이고, 위의 두 양효가 아래의 여러 음효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풍지 관은 어찌 됐든 '본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또한 1,2/3,4/5,6효들을 겹쳐 보았을 때 간 괘가 되므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뜻을 찾아볼 수 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내려다보는 방법, 지도

위의 책 <날으는 새가 되어 땅 위를 살펴본다>는 사실 필자의 대학교 은사님의 작품이다. 학창 시절 학생들은 교수님과 함께 일 년에 두 번씩 정기 답사를 다녔었는데, 시흥-안산 지역은 교수님과 함께 한 나의 첫 답사지였다. 교수님은 한창 조성 중인 안산의 도시 개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산 정상으로 학생들을 인솔했다. 교수님은 안산의 한 야산에 올라 안산시 일대를 내려다보며 "이 곳은 주거지와 산업단지가 산의 능선을 경계로 분리되어 도시가 계획되었다."라고 설명하였다. 서해안은 해발고도가 낮아 나지막한 산이라도 그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주변의 농경지, 공장, 주거지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더 넓게 볼 수 있기에 젊은 예비 지리교사들은 정기 답사 때가 되면 교수님 뒤를 따라 헉헉대며 높은 곳에 올랐다.

높은 곳에 올라가 '두 눈'으로 세상을 직접 보는 행위는 직관적이고 동물적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마치 내가 새가 된 듯한 착각을 하게 해 준다. 넓은 시야와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은 동물적 감각을 가진 인간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 그런데 세상만사가 양면성이 있듯이 높은 곳에 올랐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상 속에서 있을 때는 보였던 디테일이 높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높으면 높을수록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자세히 보고 싶으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넓은 시야를 가진 존재가 세상사 하나하나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신의 능력이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상히 들을 수 있는 관세음보살이 아닌 이상에야 인간은 넓은 스케일과 구체적 사실을 모두 만족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도구를 개발했으니, 그것이 바로 지도이다.

지도의 고전적인 정의는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일정한 약속(축척, 도식 등)에 따라 2차원(평면)에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축척은 중요한 개념인데, 실제의 거리를 지도상에 줄였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지도에 1:50,000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할 경우 지도상의 거리 1cm는 실제 거리 50,000cm(500m)를 의미한다. 1:10만, 1:100만처럼 오른쪽 숫자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이 줄였기 때문에 지도에 나타나는 면적은 더욱 커지게 된다. 아래 그림 상단의 지도는 오른쪽부터 1:9,300만, 1:2,500만, 하단의 지도는 오른쪽부터 1:1,400만, 1:380만 축척으로 작성되었는데, 오른쪽 숫자가 작아질수록 표현하는 지역의 면적은 좁아지고 자세하게 된다. 보고 싶은 지역을 넓게도 보고, 자세히도 보고 싶다면 다양한 축척의 지도를 구하면 된다. 직관으로 해결되지 않는 시야의 문제를 인류는 지도의 축척으로 해결하며 신의 영역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위성사진이 지리정보체계(GIS)를 만나면서 지도는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인공위성이 보내오는 막대한 양의 위성사진이 지리정보체계에 의해 가공되면서 양질의 지리정보가 생산되었다. 아래 사진은 미국 오레건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비상상황 관리 애플리케이션 RAPTOR(Real-Time Assessment and Planning Tool for Oregon) 서비스이다. 실시간 산불 상황, 폭풍우, 재난 지정 지구 등을 미국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에 본사를 두고 있는 GIS 소프트웨어 제작업체 ESRI에 의해 제작된 최첨단 지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양질의 지리정보를 담고 있는 다양한 레이어들이 제공되어 원하는 재난 정보를 쉽게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난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마우스 스크롤 몇 번이면 그 지역의 자세한 상황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물건이다.


이미 알려진 구글 어스(GOOGLE EARTH)만 해도 지표의 상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아래의 왼쪽 그림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경기도 시흥 일대의 염전 지도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전쟁에 사용할 군수물자를 한반도에서 수탈해갔다. 조선총독부는 인천에서부터 시흥으로 이어진 갯벌을 소금밭(염전)으로 만들어 전쟁 중 필요한 소금을 수탈했다. 이 염전은 해방 이후 전매청과 민간 기업 등에 의해 운영되었다가 1980년대 들어 값싼 중국산 소금이 수입되면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그 결과 1996년을 마지막으로 소금 생산을 멈췄다. 소금 생산이 중단되자 이 염전 부지 대부분은 특별한 토지 이용 없이 방치되었는데,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시흥시가 폐염전의 일부를 공원화하였고, 지금은 소래습지생태공원, 갯골생태공원, 골프장 등으로 변신하여 시민들에게 삶의 안식처로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모습을 우리는 직접 이 곳에 가지 않고도 클릭 몇 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구글어스에서 캡처한 것인데 사진의 중앙부에는 갯골이 서에서 동으로 뻗어있고, 그 갯골 주변으로 염전의 흔적이 보인다. 또 오른쪽 아랫부분에서는 골프장과 공원이 건설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지도의 발달은 인간에게 하늘을 나는 새의 안목과 매의 눈을 선물해주었다.

왼쪽 그림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염전 지도. 오른쪽 그림은 현재의 모습을 담은 위성사진(출처:구글어스)


무언가를 본다는 것

점심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화단 앞을 서성이다가 함께 산책하던 우리 일행과 마주치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거 본 적 있어요?"

놀라웠다. 이 앞을 한 두 번 지나간 것도 아닌데 처음 보는 비석이 있었고,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이 무려 2009년도에 세워진 것이었다. 관심이 있어야 보이고, 자세히 봐야 예쁜 줄 안다더니 이렇게 생긴 시커먼 비석은 내 관심사가 애초에 아니었는지 너무도 낯설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교장 선생님 말씀.

"개교를 할 때 무슨 생각으로 비석을 박았을까요? 내 생각에는 개가 자기 영토를 표시하기 위해 여기저기 오줌 싸는 거, 그런 마음 아닐까 싶어요. 안 그래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세운 이런 식의 비석들이 세상에 널려 있다. 학교에 이 비석을 세운 장본인에 대해 교장선생님은 개가 나무에 오줌 지리느니만 못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설물에 국민 세금이 들었을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관심이 있어야 보이고, 볼만한 것이 있어야 우러러볼 수 있다. 풍지 관 괘를 생각하며 관심과 사랑으로 학생들을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학생들에게 부끄럽게 보이지는 않았나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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