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22. 산화(山火) 비(賁): 함께 고민하는 어른들

by 땅 작가

봄꽃으로 물들다.

학교에 꽃이 만발했다. 지난 주에는 매화가 피더니 이번 주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벚꽃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봄을 즐기는데 그들의 환한 얼굴이 꽃이다. 겨우내 말라 있던 분수에서 물꽃이 샘솟자 연못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움추렸던 학교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산처럼 우뚝 솟은 학교 건물 아래로 꽃이 환하게 피니 그 생동감이 서로를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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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전의>에는 산화 비(賁) 괘에 대해 "괘 됨이 산(☶) 아래에 불(☲)이 있으니, 산(☶)은 초목과 온갖 물건이 모이는 곳이요, 아래에 불(☲)이 있으면 그 위를 비춰서 초목과 물건들이 모두 그 광채를 입으니 꾸미는 상(象)이 있다. 이 때문에 비(꾸미다, 賁)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 선생님, 매화, 벚꽃, 목련, 민들레 등이 화려하게(☲) 서로를 꾸미는 름다운 모습에서 산화 비(䷕)의 상이 보인다.

䷕ 산화 비


학부모와 교사가 학교에서 만나다.

요즘 '혁신학교', '미래학교',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학교', '좋은 학교' 등 그럴싸한 간판을 걸어 놓은 학교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간판 가게만 좋은 일 시키는 것 같다. 개명 신고로 이름을 바꿨다고 그 사람이 바뀔까? 천만의 말씀이다. 학교 간판 바꾼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교가 바뀌려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근면한 사람이 되려면 '나는 근면한 사람이야.'라고 써붙이고 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고 싶다면 조용히 자기 침상을 정리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나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나는 올 한 해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 공동체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줄 것인가 고민했다. 눈을 감고 한참을 있다가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스쳐갔다. 학교는 최종적으로 학생을 위한 공간이인데 그 공간에서 학생들이 소외되고 있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고민이 무엇이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모습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학교라고 하는 공간에서 짧은 시간만을 지내다보니 학생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도구는 학교 생활이다. 수업 시간에 성실하지 않거나 교사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학생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그 아이의 일부 행동만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이다. 이런 오류는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가정에서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가끔 학교에서 학생이 저지른 일에 대해 가정에 연락하는 일이 있는데,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그런 아이가 이니라며 학교에서의 문제 행동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아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가정에서의 모습만 보고 지내다가 청소년기에 발현되는 아이의 모습을 만나면 학부모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해오다가 교사-학부모 배움 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모임 만드는 일을 서둘렀다.

학부모 총회가 열리던 날 나는 학부모님들께 모임의 취지를 설명했고 다행히 호응이 좋아 함께 모여 독서토론회를 갖기로 약속했다. 2주에 한 번 모이는 모임인데 이름은 학교 이름을 따서 '매화학당'으로 정했다. 이 사실을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에게도 알리니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후 2주가 지나 첫 모임을 열었고, 교사와 학부모 8명이 모인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모임을 시작하고 보니 어른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모습이 문득 산화 비(䷕)의 상과 유사함을 알게 되었다. 산화 비(䷕)의 하괘(☲)는 불이고, 태양이다. 온 세상을 밝힌다. 하 괘인 리(☲)와 의미가 반대되는 괘는 감(☵) 괘인데, 그 음양의 배열이 리 괘와는 반대가 되므로 어둡고, 어려운 뜻이 된다. 그렇게 본다면 리 괘(☲)는 세상을 훤히 아는 어른이요, 감 괘(☵)는 아직 세상을 모르는 방황하는 어린 아이로도 볼 수 있다.

산화 비의 상괘(☶)는 산이다. 간 괘(☶)는 산이므로, 장중함, 멈춤의 뜻이 있다. 괘의 형태로 보았을 때는 문과 유사하므로 건물이 될 수 있다. 간 괘(☶)와 의미가 반대되는 괘는 뢰 괘(☳)인데. 그 음양의 배열이 간 괘와는 반대가 되므로, 빠르고 부지런한 움직임의 뜻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산화 비(䷕)의 괘를 분석해 본다면 학교라는 공간(☶)에 어른들(☲)이 있는데(산화 비 괘, ), 그 모인 이유가 분발하여(☳) 어린 아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함(뇌수 해 괘, ䷧)이다. 산화 비 괘의 2,3,4효가 수 괘(☵), 2,4.5가 뇌 괘(☳)이므로 산화 비(賁, ䷕) 안에 어려움을 해결하는 해(解, ䷧) 괘의 의미가 담겨 있다.

䷕ 산화 비

䷧ 뇌수 해

매화학당, 문을 열다.

매화학당은 교사 4명, 학부모 4명으로 시작했다. 함께 읽기로 한 책은 <논어>이다. 직장일을 끝내고 부랴부랴 정신 없이 오신 학부모님도 있고,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으며 참여한 선생님도 있다. 방과후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모임은 두 시간 동안 이어졌고, <논어>의 주옥같은 말씀과 더불어 학생들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꽃에 향기가 있다지만 좋은 뜻으로 모인 어른들의 대화가 향기로웠다.

어른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꽃보다 밝고 소중한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아름다운 학교 공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