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오르면 날카로운 능선 위로 기묘한 모양의 암석들을 볼 수 있다. 변화무쌍한 능선 위에는 화강암질의 바위들이 위태롭게 있는데 누군가가 일부러 올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 살짝만 밀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암석의 형상은 산지 박 괘를 연상하게 한다.
䷖ 산지 박
산지 박 괘는 상괘가 산(☶), 하괘가 땅(☷)으로 이루워져 있는데, 괘의 모양이 차곡차곡 쌓인 높은 산 위에 놓여 있는 바위의 형상이다. 5개의 음효가 아래에 있고 한 개의 양효만이 꼭대기에 있어, 효를 간추려보면 간 괘(☶)와 같으나 6효가 홀로 양효이므로 양효가 나약하여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주역전의>에서는 산지 박 괘에 대해 "다섯 음(陰)에 한 양(陽)이 있고, 음(陰)이 처음 아래로부터 생겨서 점점 자라 성극(盛極)함에 이르러서 여러 음이 양을 삭박(削剝, 깎아서 벗김)하게 한다. 그러므로 박(剝)이라 한 것이다. 두 체(體)로 말하면 산이 땅에 붙어 있으니, 산은 땅 위에 높이 솟아 있는 것인데 도리어 땅에 붙어 있으니, 퇴박(頹剝, 쇠퇴하여 깎임)하는 상(象)이다."라고 하였다.
북한산 봉우리에 드러난 화강암
화강암의 노출
북한산의 가파른 절벽과 기묘한 모양의 암석들은 화강암과 관련이 있다. 화강암은 깊은 지하에 있던 마그마가 오랜 세월 서서히 굳으면서 형성되는 암석이다. 북한산 일대의 화강암은 중생대 중기(쥐라기) 대규모 지각운동이 있을 때 10km의 깊은 지하에서 서서히 굳으며 형성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강암은 중생대 백악기와 신생대를 거치면서 지표면이 침식되어 사라지면서 지표면에 서서히 노출되었는데, 지표에 노출되자 대기와 접촉하면서 침식작용과 풍화 작용을 받게 되었다. 세월의 모진 풍파를 거친 화강암은 지금의 모습으로 서울의 북쪽에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 되었다.
이렇게 지표면에 노출된 화강암체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화강암을 덮고 있던 지각의 압력이 제거되면 화강암에는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 때 지표면 방향으로 균열이 생겨 판처럼 떨어져 나는데, 이러한 균열을 판상절리라고 한다. 강화의 석모도에서 볼 수 있는 눈썹바위가 대표적인 판상절리인데, 암석의 바깥 부분이 판 모양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북한산 곳곳에서도 관찰할 수가 있다.
강화도 보문사의 눈썹바위. 화강암 돔의 판상절리가 보인다.(출처:강화군청 홈페이지)
북한산 곳곳에 나타나는 판상절리. 오른쪽 사진에는 양파 껍질 벗겨지듯 박리현상이 보인다.
판상절리의 표면에서는 암석이 부풀어 벗겨지는 미세한 작용이 나타나는데 이를 박리 현상(剝離, exfoliation)이라고 한다. 양파 껍질 벗겨지듯 화강암의 겉부분이 벗겨지면서 풍화가 진행된다.
땅 속 깊은 곳에서 형성된 화강암이 지표면에 노출되고, 그 노출된 암석의 겉 껍질이 판상절리와 박리현상처럼 벗겨져 떨어지는 모양이 산지 박과 닮아 있다.
거인의 공기돌, 토어(Tor)
북한산 봉우리에는 또 다른 풍화 지형이 있다. 산 봉우리에 공기돌처럼 놓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토어(tor)라고 한다. 토어는 화강암이 풍화 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 중 대표적인 지형이다.
토어의 형성과정 모식도(출처:AGU)
땅 속 깊은 곳에서는 지하수가 침투하여 암석들이 풍화를 받게 되는데, 이 때 절리가 발달한 부분은 쉽게 풍화되는데 비해 절리가 발달하지 않은 부분은 풍화를 견디게 된다. 풍화에 견딘 암석을 핵석이라고 하는데, 이 핵석이 지표면에 노출된 것을 토어(tor)라고 한다. 토어의 형성 원인을 몰랐던 옛 사람들이 이것을 '거인의 공기돌'이라 칭하였지만, 사실 이것은 누가 갖다 놓은 것이 아니라 제 자리에서 그대로 풍화되어 남은 것일 뿐이다. 깊은 땅 속에 있던 것이 모진 풍파를 다 견디고 산 꼭대기에 위태롭게 놓이게 되었으니 산지 박의 괘상과 맞아떨어진다.
북한산에 있는 토어. 윗 부분은 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군자가 위태롭다.
서울과 부산에서 재보궐 선거가 열렸다. 정치판은 예나 지금이나 진흙탕 개싸움 같다. 중지 곤 괘의 상육(上六, 맨 위에 위치한 6효)이 변하면 산지 박 괘가 되는데 중지 곤 괘의 상육(上六)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붙어 있다.
上六은 龍戰于野하니 其血이 玄黃이로다
象曰 龍戰于野는 其道窮也라
상육은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도다.
상에 가로되 용이 들에서 싸움은 그 도가 다함이라.
䷁중지 곤
䷖ 산지 박
이 효사는 정치인들이 피흘리며 싸우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싸움으로 도가 다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 말은 산지 박 괘의 6효인 유일한 양효가 1,2,3,4,5효의 음효에게 밀려 떨어져나가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 군자가 소인에게 밀려 도가 사라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용산에서의 사고가 아직 내 머리 속에서는 지워지지 않았는데, 선거의 결과를 보고 많이 놀랐다. 산지 박이 되기엔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는데 어쩌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