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24. 지뢰(地雷) 복(復): 새롭게 다시 시작함.

by 땅 작가

신규 선생님

우리 학교에 신규 지리 선생님이 발령을 받아 왔다. 스물 여섯의 앳된 얼굴에서는 열심히 해보겠다는 각오와 의지가 보인다. 밤 늦게까지 수업에 대해 궁리하고, 선배들에게 열심히 묻는 모습에서 이 선생님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선배의 조언을 순하게 받아들이고 분발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지뢰 복 괘가 보인다.

䷗ 지뢰 복 ↔ ䷖ 산지 박

지뢰(地雷) 복(復) 괘는 상 괘가 땅(☷), 하 괘가 우레(☳)로 이루어져 있다. 제 1효만 양이고, 2, 3, 4, 5, 6효가 음이므로 그 형태가 앞서 본 산지 박 괘와 반대이다. 산지 박 괘(䷖)가 양이 점점 쇠락하여 떨어져 버리는 괘인데 비해 지뢰 복 괘(䷗)는 양이 처음 시작되는 괘이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약동하는 에너지(☳)로 앞 길을 헤쳐나가는 모양(2,3,4,5,6효가 음효여서 가운데가 활짝 열린 길처럼 보인다.)이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신규 선생님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2, 3, 4효가 지 괘(☷), 3, 4, 5효가 또한 지 괘(☷)이므로 둘이 합쳐져 순음의 중지 곤 괘(䷁)가 되니, 지뢰 복 괘 안에는 땅의 순한 도리로써 만물을 수레처럼 받아들이는 뜻이 숨어 있다. 선배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받아들여 분발하는 신규 선생님의 마음가짐이 이 괘의 의미와 통한다.


나의 신규 시절

열정 넘치는 신규 선생님을 만나보니 나는 그 시절에 어땠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새로운 천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도에는 많은 이들이 희망에 부풀어 새로운 시대를 노래했다. 97년 IMF의 여파가 계속되었고 경기가 침체되어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셨다. 그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교사 임용 시험에 단번에 붙겠다는 일념으로 남들보다 덜 자고 더 오래 책상에 앉아 있었다.

4학년을 마치던 그 해 12월, 몇 년간 준비했던 교사 임용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합격의 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시험에 떨어진 나는 위축된 심리 상태로 좀비처럼 시간을 보냈고, 사회에 발을 들일 수는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더 이상 바닥을 찾을 수 없을 때 즈음하여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공고가 이곳저곳에 나붙었다. 휴직이나 병가 등으로 생긴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중고등학교에서는 2월달에 기간제 교사와 강사를 선발하는데, 사립고등학교 강사로 뽑혀 몇 년을 일하면 정교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선배들로부터 들었다. 나는 기약도 없이 늘어질 수 있는 미래가 불투명한 시험을 보기 보다는 사립학교 강사 자리를 얻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으로 사립학교 공고를 찾기 시작했다. 많은 사립학교에 지원서를 냈고 결국 서울 잠실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구나.' 하고 기뻐하며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했기에 교단에 오르면 학교 수업을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르쳐 보니 전공에 대한 지식은 얕았고, 수업에 요령도 없었다. 수업 시간 50분은 채워야 하는데, 그 시간을 알차게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교실 문을 닫고 나오며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 자신을 너무 모르고 덤볐다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이런 부족한 나에게 배우겠다고 인내하며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허둥지둥 두 달을 보내고 나니 첫 중간 고사 기간이 다가왔다. 처음 내는 시험 문항을 열심히 만들어서 선배 지리 선생님들께 보여드렸다. 선배 지리 선생님 중 한 분이 빨간 플러스펜을 들고 시험문제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 선생님은 1번부터 33번까지 내가 출제한 문항을 지적하며 시험에 올리지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주었다. 평가가 어떤 의미인지, 평가의 내용과 형식은 어떠해야하는지 설명해 주었고, 나의 문항에서 어떤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는지 분석하여 설명해주었다. 나는 코멘트를 받으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게 되었고, 내가 교사 임용 시험에 떨어진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 부족한 까닭이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을 모르고 세상을 원망했다.

한 학기를 간신히 마치고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렵게 얻은 직장을 상의도 없이 나온 것에 대해 실망하시는 눈치였고,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술을 드셨다. 부모님께는 죄송한 일이었지만 준비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은 나와 학생들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차분하게 교사 임용 시험을 다시 준비하기로 했다. 가르칠 때 어떠해야 하는지 훌륭한 선생님이 된 내 자신의 모습을 그려가며 공부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공공 도서관을 찾아 자리를 틀고 부족한 나 자신과 만나며 좋은 교사가 될 미래의 나에 대해 상상했다. 그 해 12월 나는 경기도 교사 임용 고사에 다시 응시했고, 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교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얄팍한 욕심에 취해 전전긍긍하며 사립학교 강사 자리를 얻은 것은 산지 박 괘(䷖)의 상이다.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내 마음 속에서 희미하게 있었던 자존심과 신념을 버리고 덤볐다가 결국 그것이 옳은 길이 아님을 나중에 깨달았다. 붙잡을 것이 아님을 알고 놓아버리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비록 쌓아올린 것이 없었지만 옳은 마음 가짐을 얻게 되었고(䷗), 그 후 분발하며 20년이라는 세월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다.

<주역전의>에는 지뢰 복 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박(剝)이 지극하면 복(復)이 오고, 음(陰)이 지극하면 양(陽)이 생기니, 양(陽)의 소멸(消蔑, 사라져 쇠약해짐)이 위에서 지극하여 다시 아래에서 생겨남은 위에서 지극함에 아래로 돌아옴이니, 복(復) 괘가 이 때문에 박(剝) 괘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 됨이 한 양이 다섯 음의 아래에서 생기니, 음이 지극함에 양이 회복한 것이다. 10월에 음이 성함이 이미 지극하다가 동지가 되면 한 양이 다시 땅 속에서 생기므로 복(復)이라 한 것이다. 양은 군자의 도이니, 양의 사라짐이 지극하다가 다시 돌아옴은 군자의 도가 사라짐이 지극하다가 다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善)으로 돌아오는 뜻이 된다."

신규 선생님이 쭈뼛쭈뼛 찾아와 자신이 낸 시험문제를 봐달라고 조언을 구했다. 옛 생각이 났다. 빨간 플러스 펜으로 따끔한 조언을 해주셨는 황○○ 선생님과 풋내기 시간 강사의 모습이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되살아났다. 우리 신규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해 본다.


돌아오지 않는 것

오늘은 4월 16일이다. 세월호가 물에 잠긴 지 만 7년이 되는 날이다. 학교에서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차분히 치뤄지고 있다. 눈 앞의 욕심에 눈이 먼 어른들에 의해 죄없는 아이들, 선생님들,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희생된 이들이 다시 부활(復活)할 수 있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가족의 심정을 차마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복(復)이라는 글자는 '회복하다.', '길을 되돌아오다'라는 의미가 있어 희망을 담은 글자이기도 하지만 '혼을 부른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글자이다. 초혼(招魂)할 때 쓰는 죽은 사람의 옷을 '복의(復衣)'라고 한다. 우리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슬픈 마음으로 복도 한 켠에 노란 리본을 걸며 아이들의 혼을 부르고 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글씨를 노란 메모지에 적어 수많은 메모지 속에 뭍으며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주역에서는 '지극하면 반드시 돌아온다'라고 했건만,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정의롭고 민주적인 교육을 하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희생된 이들과 유가족들에게 삼가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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