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27. 산뢰(山雷) 이(頤): 사람을 먹여 기름

by 땅 작가

먹여 기르는 즐거움

장모님은 어버이날 자식들에게 받은 돈으로 갈비를 잔뜩 사오셨다. 병원갈 일도 많고 돈 쓸 일도 많은데 고기를 사서 한 동네에 모여 사는 세 딸들을 불러 모으셨다. 음식 솜씨 좋은 둘째 딸에게 갈비찜을 맡기고 본인은 김치와 나물을 무치신다. 큰 딸인 아내는 허리도 안 좋으면서 왜 또 일을 하냐고 성화를 부리고, 임신한 막내딸도 언니의 말을 거든다. 하지만 장모님은 딸들의 잔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신다. 집 안에 갈비찜 냄새가 진동하니 사위들과 손주들은 간만의 횡재에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요리가 완성되고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푹 쩌낸 갈비찜은 부드러워 먹기 좋다. 자식들이 떠들석하게 식사를 하는 동안 장모님은 바로 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자식들을 보신다. 세 딸과 손주들을 보는 표정이 그윽하다. 아들 녀석이 부지런히 고기를 씹는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을 돌이켜보면 장모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경>에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슬프고 슬프도다. 어버이시어,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셨도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고단하고 힘들어도 자식을 기르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나 싶다.

부드러운 고기를 씹는 자식의 입을 보며 산뢰(山雷) 이(頤) 괘의 의미를 떠올려본다. 상괘는 산이라 고정되어 있고, 하괘는 우레라 움직이니 그 상이 고정된 윗턱과 움직이는 아랫턱의 모양 같다. 이(頤) 괘는 초구(1)와 상구(6)가 2,3,4,5의 네 음을 감싸고 있어, 부드러운 음식을 턱으로 씹는 모양이며, 이렇게 해서 음식을 씹으니 몸이 길러지므로 '이(頤)'라는 글자는 '턱'의 의미에서 '기르다.'라는 의미로 뜻이 확대되었다.

䷚ 산뢰 이

<주역전의>는 이(頤) 괘에 대해 "괘가 위는 간(艮, ☶)이고 아래는 진(震, ☳)이어서 위아래의 두 양효(陽爻)가 가운데에 네 음(陰)을 포함하고 있고, 위로는 멈추고(艮) 아래는 동하며(震) 밖은 충실하고 안은 비었으니, 턱의 상이다. 이(頤)는 길러줌이니, 사람의 입은 마시고 먹어서 사람의 몸을 기르는 것이므로 이(頤)라 이름하였다."라고 하였다.


사람을 길러내는 농업

산뢰 이 괘의 하괘는 뢰(☳)인데 아래에서 기운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고, 상괘는 산(☶)이라 마침을 뜻한다. 2,3,4효의 내호괘(內互掛)와 3,4,5의 외호괘 (外互掛) 모두 땅(☷)인데, 땅은 만물을 품어 길러낸다. 따라서 하괘, 내외 상호괘, 상괘를 토대로 의미를 풀어보면 씨가 뿌려져 싹이 나고, 땅에서 길러지며, 추수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니 산뢰 이 괘에는 작물을 길러내는 '농업'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이야 농업이 낙후된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농업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산업이다. 사냥이 잘 안되거나 채집의 양이 적게 된 날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인간은 농업의 시대에 와서 자연을 길들일 수 있으며, 더 이상 자연의 변화에 굴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우연히 먹어본 맛좋은 열매를 다시 심어 싹이 나고 그것이 자라 더 많은 열매가 된다는 것을 학습한 인간은 더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반복적으로 실험했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지적 사고력을 촉진하는 동기가 되었으며, 지적 실험을 통해 보다 생산성이 큰 쌀, 밀, 옥수수 등의 주요 작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거름을 주거나 인공 수로 등을 개발하여 땅과 하늘의 도움으로부터 점차 독립할 수 있었으며, 안정적으로 작물을 재배하여 원하는 식량 자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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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재배하고 있는 다양한 농작물들. (위 왼쪽: 계단식 논에서의 벼농사, 위 오른쪽: 옥수수 밭, 아래 왼쪽: 포도 농장, 아래 오른쪽: 밀농장의 추수)

인간은 농업 기술을 발전시켜 문명이라는 값진 소득을 얻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공동 작업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모여살기 시작하였고, 마을과 도시가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농업 지식과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이웃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언어와 문자, 학문이 발달하게 되었다. 협동과 지식이 축적되면서 인간의 삶에서는 폭발적인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다양한 도구들을 개발하여 더 많은 생산품과 지식을 쌓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농업 생산성의 향상으로 잉여 생산물이 나타나면서 '네 것'과 '내 것'이라는 소유의 개념이 싹트게 되었고, 많이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계급이 발생하게 되었다. 집단 간 소유물을 두고 전쟁이 나면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거느린 강력한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나라(國)'라고 하는 개념이다.

''이라는 글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지는데, 囗(에운담 위)와 或(혹시 혹)이 합쳐진 것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지키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國자와 或자의 상형자가 같다. 이는 둘 다 자신이 소유한 땅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라 국(國) 자가 땅을 에워싸고 지키고 있음은 두 양이 네 음을 지키는 모양인 산뢰 이 괘와도 연결이 된다.



나라국의 상형자.JPG 나라 국(國), 혹시 혹(或)의 상형자. 자신의 땅을 지키는 모양이다. (출처: https://hanziyuan.net)

이 땅에서 길러지는 사람, 78억 명

농업의 발달로 지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전세계 인구는 77억 9천 5백만 명이었으며 전년도보다 8천 만 명 증가했다. 인구 증가 속도가 이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앞으로 2년이 지나면 80억 명에 도달할 것이며, 이번 2050년 즈음에는 세계 인구가 100억 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변천.JPG 인구 성장(출처: https://www.worldometers.info/world-population)

인구 증가가 가속화되는 상황이라면 앞으로 인류는 이 인구를 어떻게 부양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식량 생산량을 늘린다.

유엔 식량기구(FAO)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오래 전부터 고민하였으며 식량 생산량을 급격히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식량 생산을 늘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지구는 평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곡창지대가 중위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냉한대 기후 지역이나 건조 기후 지역, 산간 지역처럼 농경에 불리한 지역이 있다. 중위도 지역의 곡창 지대는 이미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에서 식량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어려우며, 농경에 불리한 지역을 개발하는 것은 지구온난화, 소금 폭풍(토양 염류화), 산사태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커진다.

인구의 증가 속도도 지역마다 서로 다른데 어떤 지역에서는 인구가 안정기에 들어서 특별히 인구 증가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반면 어떤 지역의 국가들에게는 이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다. 아래 표는 전 세계 인구 증가율 상위 10위를 정리한 것인데, 바레인과 포클랜드 제도를 제외한 8개 국가가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다. 1위부터 20위까지 18개 국가가 아프리카 국가임을 생각해본다면 바레인과 포클랜드 제도가 상위권에 놓인 것이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인구증가순위.JPG

아래 표는 세계 영양실조인구 비율(2018)을 나타낸 것인데 전 세계 인구 76억명 중 8역명이 영양실조에 처해 있다. 이 중 5억명 이상이 아시아 사람이며, 2억 5천만 명이 아프리카 사람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인구 증가율이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낮기는 하지만 인구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 지역의 식량 부족 문제는 심각할 수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구 증가율이 높으면서도 내전, 물부족 및 관개시설의 부족, 낙후된 농업 기술 등의 악재로 인하여 영양실조에 걸린 이들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의 국가들은 농업 생산성 향상, 농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주요한 일이다.

FAO_빈곤비율.JPG 세계 영양결핍 인구 비율(출처:FAO)


둘째, 생산된 농업 생산물을 정의롭게 분배한다.

많은 학자들은 절대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전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유엔(UN·국제연합) 자문위원이었던 장 지글러 박사는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식량 문제가 '부족의 문제'가 아닌 '분배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농업생산량은 전 세계 인구의 두 배를 부양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나타나는 문제는 불평등과 분배의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식량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외의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정비하여 정의롭게 분배해야만 세상 사람들을 골고루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 곡물 거대 자본, 유전자 변형 농작물을 다루는 종자 산업, 농작물 유통 업체 등 거대 자본이 권력과 손을 잡고 이윤을 향해 내달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정의로운 분배란 헛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거대 자본에 맞서 공정 무역 농산품을 생산, 유통하고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무상급식에 대한 생각

교사와 학생의 스트레스가 절정에 오르는 4교시 끝나가 5분 전에는 서로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배고픔을 참고 있는 양자의 팽팽한 긴장상태를 5분 간만 무사히 견디면 점심시간이다. 종이 치면 학생들은 경보 선수 보다도 가볍게 급식실로 뛰어내려간다.

교실에서 급식실로 장소 바뀌었을 뿐인데 좀전의 그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은 천사의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다. 음식은 사람을 천사로 만든다. 이 행복을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 국가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누리지 못하게 한다면 이것 또한 옳지 않다. 행복하게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몸을 길러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세상 어디에도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금새 깨닫게 된다.

음식을 모두 먹고 급식판을 내려놓으며 세계 평화와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교육을 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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