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출근길은 여러가지 면에서 위험하다. 큰 트럭이 쌩하고 지나가면 작은 차들은 물벼락을 맞는다. 물벼락을 맞은 차는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아 난감해진다. 이럴 때 당황하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쏟아졌던 물은 금새 흘러 내려 곧 사라지기 때문에 차분하게 대처하면 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머리가 하얗게 된다. 나도 모르게 트럭 운전 기사와 도로공사 직원들을 원망한다. '조심히 운전 좀 하지', '도로 관리를 잘 좀 하지'하며 씨부렁 씨부렁 화를 내다가, '비오는데 오죽 바쁘면 저럴까?', '내가 이렇게 싫은데 도로공사 사람들은 얼마나 싫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나쁜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비가 많이 오면 도로의 상태가 나쁜 곳들이 있다. 저지대나 배수가 불량한 도로, 아스팔트를 이루는 입자들이 빗물에 침식되어 파손된 도로 등은 비가 오면 상태가 나빠진다. 저지대나 배수가 불량한 곳에 물이 많이 고이면 차량은 노 없는 배가 될 수도 있다. 침수된 곳에 잘못 들어간 차는 엔진 흡기 밸브에 물이라도 들어가면 폐차장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빗물에 의해 아스팔트를 구성하는 입자들이 침식된 곳은 항아리 모양의 구멍(포트홀, Pot Hole)이 생기는데, 여기에 타이어가 빠지면 차가 크게 덜컹거리거나 바퀴가 빠질 위험도 있다.
며칠 사이에 비가 자주 내렸다. 비가 오는 오늘도 출근길이 사나웠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놓인 물구덩이들과 격하게 씨름을 하고 학교 주차장에 도착하니 안도의 한숨과 함께 중수(重水) 감(坎) 괘가 눈 앞에 펼쳐진다.
䷜ 중수 감
감(坎)이라는 글자는 '구덩이'라는 뜻이다. <육서통자전>에서는 감(坎) 자를 '사람이 구덩이에 빠진 모양(아래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땅 아래 파진 깊숙한 구덩이에 사람이 빠졌으니 감(坎)은 '험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또한, 구덩이는 땅이 움푹 꺼져 있는 것이니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물이 고이게 된다. 그래서 감(坎)은 '물'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다산은 <주역사전>에서 '구덩이가 있어 물이 그쪽으로 나아간다. 큰 구덩이는 바다, 작은 구덩이는 연못이 되니 감(坎)이 물이 되는 이유이다.'라고 했다.
<육서통자전>의 전서체 감(坎) 자(字)(출처:https://hanziyuan.net)
중(重)은 '거듭'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중수(重水) 감(坎)'이라는 이름은 괘 안에 감(坎) 괘(☵)가 위아래로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거듭'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괘의 이름을 습감(習坎)이라고도 부른다. 습(習)이 '반복하여 익힌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坎)이 중첩되어 있는 중수 감 괘(䷜)는 구덩이가 여기저기 있는 모양, 물이 여기저기 있는 모양, 물이 끊임 없이 흐르는 모양, 험한 일이 첩첩 쌓인 모양 등으로 연상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침 출근길에 만난 험한 물구덩이들을 중수 감 괘(䷜)라고 말한 것이다.
주전자 모양의 지형, 포트홀
위에서 언급한 아스팔트의 '포트홀'은 지리학에서 먼저 사용했던 말이다. 'pot'은 항아리, 'hole'은 구멍이므로, 포트홀은 '항아리모양'의 지형을 이른다. 암석으로 된 하천 바닥에는 절리가 나타나는데, 그 틈속에 모래나 자갈이 빠르게 물과 함께 흘러가면 소용돌이를 치게 된다. 이 때 침투한 모래나 자갈이 절리의 틈을 마모시켜 구멍을 크고 깊게 만든다. 아래의 그림처럼 절리의 틈을 파고든 입자들이 기반암을 둥글게 깎아 모양이 항아리처럼 되는데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크기와 깊이가 수 미터가 되기도 한다.
모식도 출처: 강원고생대지질공원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포트홀을 볼 수 있는 하천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주천강 주변이다.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찾는 사람'은 없을 만큼 아름다운 요선암 일대의 장관은 중첩된 수많은 포트홀(☵,坎)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다. 요선암(邀仙岩)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인데, 조선시대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평창군수로 있을 때, 이곳의 경치를 즐기면서 암반 위에 ‘요선암’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요선암을 알차게 여행하는 방법이 있다. 요선암 계곡 입구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지리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을 방문하여 관장님께 안내해 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전직 지리 교사였던 관장님은 영월 일대의 지리적 설명을 맛깔나게 하시는 분이다.
강원도 영월 요선암 일대의 포트홀 경관(포트홀의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 아들을 등장시켰습니다.)
흐르는 물도 중수 감괘와 통한다.
무언가를 거듭해서 오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 <중용>에서는 "능히 오래하는 자 드물구나(鮮能久)!"라고 하였고, <논어>에서는 “군자가 도를 따라 행하다가 중도에 그만 두는 일이 많으나, 나는 중도에 그만 둘 수가 없다.(君子遵道而行 半塗而廢 吾不能已矣.)”라고 하였다.
그런 면에서 도도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직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중수 감 괘(䷜)의 2,3,4,5괘가 커다란 리(☲, 離)괘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리(☲)는 가운데가 비어 있어 욕심을 비운 군자의 모습이라 하여 '미더움'의 뜻을 가진다. 다산 선생은 "감 괘(☵)가 이미 중복되니(䷜), 가운데 대리(큰 리괘, 大離)가 형성된다. 리(☲, 離)는 믿음이 되니 이것이 '믿음을 두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거듭해서 물이 흐름'은 변함없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양이니, 물은 분수령에서 처음으로 물줄기((☵)가 시작되어 흐르면 바다(☵)에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중간에 사막이 있을지라도 물줄기는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가니 군자가 자신을 믿고 일을 완수하는 모양이다.
도도히 흐르는 아프리카의 나일강(출처:pixabay)
자신의 장점을 찾아 대비하라.
중수 감 괘(䷜)는 험함(☵)이 중복되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앞과 뒤가 모두 험지여서 진퇴가 불가능할 때 우리는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중수 감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호괘(3, 4, 5효)가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은 '멈춤',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문'이 된다. 험한 것이 들어오려고 할 때 그 길목에서 멈추어 막을 수 있는 산(☶)이 있다면 그 위기를 막을 수 있으니, 중수 감 괘에 대해 <단전>에서는 "땅의 험함은 산과 내와 언덕이니, 왕공이 험함을 베풀어서 그 나라를 지킨다. 험함의 때와 씀이 크도다."라고 한 말과 통한다. 험함 속에 오히려 자신의 강점을 알고 이용한 것이다. 서울의 남한산성, 단양의 온달산성, 부여의 가림성, 거제도의 구조라성 등 우리나라의 성들은 자연지물의 험함을 이용하여 외적을 막았으니, 험한 속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찾아 극복하는 지혜를 이용했다. 중수 감 괘의 지혜라 할 수 있다.
지형을 이용해 성벽을 쌓은 요새, 온달산성.
험난함도 영원하지 않다.
오후가 되니 하늘은 오랜만에 아껴둔 파란 색을 내보인다. 학생들은 졸업사진을 찍는다고 미리 준비한 코스프레 복장으로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인생은 겹겹이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험난함도 시간이 지나면 옛 일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