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중화(重火) 리(離): 폭포
날이 밝아 눈을 떠보니 오전 5시가 조금 넘었다. 하지가 다가와서인지 이른 아침인데도 맑은 햇살이 집 안 구석구석에 파고든다. 아침 햇살 가득한 집 안에서 문득 중화(重火) 리(離) 괘가 떠오른다. 중화(重火) 리(離,䷝)괘는 불(☲)이 중첩되어 있다. 밝은 태양(☲)이 비추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다.
중화(重火) 리(離)괘에 대해 <주역전의>에서는 "험난한 가운데에 빠지면(䷜) 반드시 붙는 바가 있음은 이치의 자연스러움이니, 음이 위아래의 양에 붙은 것(2효의 음은 1,3효의 양과 붙음, 5효의 음은 4,6효의 양과 붙음)을 취하면 부리(附麗, 붙음)의 뜻이 되고, 가운데가 허함을 취하면 밝은 뜻이 된다."라고 하였다. '계속되는 험난함'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계속 빠질 수 없다는 희망적인 의미로 '리(離)'를 '붙음, 걸림'의 뜻으로 새겼고, 그 형태가 두 양 가운데 음이 있어(☲) '속이 허함'이 불의 성질과 같으므로 '밝음'의 뜻으로 새긴 것이다.
'붙음', '걸림'의 뜻으로 사물을 본다면 아름다운 예술품이 걸려 있는 미술관의 벽, 화장실 벽에 붙어 있는 압착식 수건걸이, 하늘에 걸려 있는 해, 달, 별, 무지개도 '리(離)'의 상이라고 볼 수 있다. '밝음'의 뜻으로 사물을 본다면 하늘의 태양과 그 아래 반짝이는 사물들, 밝은 조명 아래에서 공부하는 총명한 아이의 모습, 세상을 바라보는 두 눈도 '리(離)'의 상이라 말할 수 있다.
지표 공간에서 '걸려 있는 것'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산천초목은 모두 땅에 걸려 있는 물건이요, 사람도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있으며,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마찰력도 일종의 '걸림'이다. 수많은 사물과 현상 중에서 '걸림'과 '빛남'을 동시에 만족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폭포이다. 폭포란 일반적으로 절벽에서 곧장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가리키는데, 그러한 낙차는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의 경연차·지각운동·하천의 유로변동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폭포는 형성원인에 의해 그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지만 매우 아름다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지형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런데 폭포는중화 리(䷝)의 상을 여러모로 닮아 있다. 중수 감(䷜, 중화 리의 앞에 위치한 괘)은 하염없이 흘러가는 물인데 중화(重火) 리(離, ䷝)에 이르러서 '반드시 붙는 바가 있다.'라고 했으니, '흘러가는 물이 붙어 있음'은 폭포의 모양이다. 중수 감(䷜)은 하천의 물줄기가 험지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데(䷜, 물이 험지로 빠져들어감), 중화(重火) 리(離, ䷝)가 되면 폭포의 물줄기(리 괘의 2,3,4,5효가 대감(大坎))가 절벽에 걸려 천하절경을 이룬다. 중화(重火) 리(離)는 폭포 상단부의 하천을 흐르던 물이(☱, 3,4,5효)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람에 흩날리는(☴, 2,3,4효)모습을 담고 있다.
세계에는 수많은 폭포들이 있는데 이 중 중화 리를 가장 닮은 것은 베네수엘라의 앙헬폭포(Salto Ángel, Angel Falls)이다. 볼리바르 주의 카나이마 국립공원에 위치한 이 폭포는 총 높이 979m, 최대 낙차 807m, 너비 15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이다. 홈 베르트랑의 다큐멘터리 <하늘에서 본 세계> 하천편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 이 폭포는 유수량이 적을 때는 물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물안개가 되어 하얀 비단처럼 되었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 폭포는 베네수엘라의 2만 볼리바르에 지폐에 들어가 이 지역의 상징이 되었다.
이 밖에도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위치한 나이이가라 폭포, 베네수엘라의 앙핼 폭포, 아프리카 잠비아와 짐바브웨 국경에 위치한 빅토리아 폭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위치한 이과수 폭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설악산 천당폭포, 철원 삼부연폭포와 직탕폭포, 강원도 두타산 무릉계곡의 폭포, 경북 주왕산의 폭포, 지리산의 불일폭포, 충북 괴산의 수옥폭포, 제주 직탕폭포 등이 유명하다.
학생 하나가 교무실 탁자에 앉아 씩씩대면서 성찰문(스스로 잘못을 성찰하라는 의미에서 쓰는 글)을 쓰고 있다. 평소에도 선생님들에게 무례하게 굴고, 친구들한테도 폭언을 해서 자주 불려오는 아이이다. 오늘은 무슨 일인가 보니 배가 고파 학교 밖에 나갔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왔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눈(☲)을 희뻔득하게 뜨고 노여운 감정(☲)을 내뿜고 있었다. 이대로는 이 아이에게도, 지도하는 선생님에게도 좋지 않겠다 싶어 나는 아이를 조용히 상담실로 데리고 갔다.
아이는 눈물을 보이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저 진짜 노력하고 있는 거 거든요. 저 중학교 때 학교도 안 나오고 나쁜 짓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학교 열심히 나오는 건데, 선생님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요. **선생님이 밖에 나갔다고 엄마한테 연락한다는데, 저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렸을 때 너무 속상하게 해드려서 전화가 가면 안되는데..."
순간 아이가 화가 나는 지점을 알게 되었다.
불은 심지에, 심지는 초에 붙어 있다. 초가 가진 에너지를 심지가 불에 옮긴다. 불이 방 안을 밝히지만 밝음의 본질은 초에 있다. 그래서 초가 사라지거나 심지를 없애면 불은 붙어 있을 도리가 없다.
사람 마음도 그렇다. 심지를 재워야 마음의 불이 꺼진다. 아이의 불안한 상태를 부모에게 알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도 상황 따라 해야 한다. 불같이 화를 내는 학생에게 '부모에게 알릴거야.'라고 겁을 주거나, 함께 화를 내는 것은 나쁜 감정에 기름을 붓는 행위이다.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엄마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했고 아이의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자고 약속을 했다. 내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이야기를 하니까 아이의 눈빛이 부드러워진다. 바지에 손을 넣고 삐딱하게 앉아 있던 놈이 갈 때는 넙죽 인사를 하고 간다. 신기한 일이다.
108배를 하며 아이가 마음 속의 불을 조절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리고 내 마음의 심지는 괜찮은지 눈을 감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