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04 산수 몽(蒙) 괘: 어둠으로부터의 탈출
물, 석회암을 조각하고 동굴을 장식하다.
물은 석회암 지대를 흐르며 다양한 지형을 만들었다. 약 5억여 년 전 고생대 초기 스트로마톨라이트, 조개류, 산호류 등의 생명체들이 죽으면서 그 몸속에 있던 탄산칼슘 성분이 바다의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여 암석이 되었는데, 이를 석회암(limestone)이라고 한다. 아래 지도의 평남 분지, 옥천 습곡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생대 퇴적층인데, 이 중 조선 누층군에 석회암층이 넓게 발달해 있다. 이 지역은 오랜 세월 융기와 침강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육지로 남아 있는데,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남부, 충청북도 북부 지역이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지질구조 지표면에 노출된 석회암 지대는 다른 육지처럼 침식, 운반, 퇴적, 풍화 작용 등을 겪는데, 석회암은 산성의 물에 잘 녹는 화학적인 특성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섞인 빗물을 만나면 다양한 모양의 지형으로 탈바꿈한다. 빗물에 녹은 석회암은 움푹 파인 모양의 돌리네, 우발레가 되기도 하고, 녹고 남은 부분이 탑 형태의 기암괴석이나 산지가 되기도 한다. 또한, 땅 속에서는 지하수에 의해 녹아 이 공동(空洞)이 형성되어 석회동굴이 만들어지는데, 단양의 고수동굴, 노동동굴, 태백의 용연동굴, 삼척의 환선굴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석회암 동굴 내부에서는 탄산칼슘이 과포화되어 침전 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동굴 내부에서 침전 작용이 일어나면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산호, 곡석 등 2차 동굴 생성물들을 만들어내는데 이것들을 가리켜 '스펠레오뎀(Speleothem)'이라고 한다.
석회암 지형의 모식도(출처:한국지리교과서, 천재교육)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회암 동굴, 환선굴
한 줄기 빛도 파고들 수 없는 깊은 지하에서 조용히 물의 역사(役事)가 진행 중이다. 첩첩산중 백두대간 강원도 삼척의 환선굴에는 어둠 속을 헤매는 지하수가 중력이라는 이정표에 의지해 어딘가로 향한다. 지하수는 석회암 벽에 몸을 부대끼며 어디에 있을지 모를 빛이 내리는 출구를 찾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어둠을 벗어날 유일한 희망이기에 지하수는 동굴을 조금씩 넓혀가며 자신의 걸음을 재촉한다.
환선굴은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의 석회동굴을 대표한다. 동굴 내부를 흐르는 하천의 규모가 크다 보니 그 영향을 받아 굴의 내부가 다른 석회동굴에 비해 크다. 또한, 습도가 매우 높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 아래의 사진들처럼 다양한 형태의 스펠레오뎀이 어두운 동굴 속을 다채롭게 장식한다. 아래 사진의 계측기를 보면 동굴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924 PPM, 습도는 104.2%로 나타나는데, 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 417.9 PPM(<지구대기감시보고서>, 2019년 기준)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고 대기 중에 수분이 포화상태인 매우 습한 환경을 보여준다.
과학적인 지식이 없었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동굴 안의 다양한 지형들은 신비로움 자체였을 것이다. 동굴 안의 다양한 지형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리따운 처녀가 선녀가 되고, 스님이 신선이 되었다는 환선굴의 전설이 마치 사실처럼 느껴진다.
석회암을 녹이며 흐르는 지하수(좌)와 동굴 내부의 상태를 알려주는 계측기(우)
환선굴의 다양한 2차 동굴생성물들(유석(좌) , 기형 석순과 휴석소(우))
논두렁 모양의 휴석소(limstone pond)
산수(山水) 몽(蒙), 동굴에서 탈출하라.
환선굴에 흐르는 지하수는 '산수(山水) 몽(蒙)' 괘와 닮아 있다. '몽(蒙)'이라는 글자는 돼지라는 짐승 위에 움막과 초목이 덮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 '덮다', '어둡다'라는 뜻이 있고, 의미가 확대되어 '어리다', '어리석다'의 뜻을 가진다. 산 아래 어두운 지하에 흐르는 물의 형상이 어두운 곳에 갇혀 있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돼지를 연상케 한다.
산수 몽 괘에 대해 <주역전의>에서는 "괘 됨이 간이 위에 있고 감이 아래에 있으니, 간은 산이 되고 그침이 되며, 감은 물이 되고 험함이 된다. 산 아래 험함이 있으니, 험함을 만나 그쳐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 몽의 상이다. 물은 반드시 가는 물건이나 처음 나와서 갈 바가 없으므로 몽이 된 것이니, 나아감에 미치면 형통하는 뜻이 된다." 또한, "산 아래에 험함이 있으니. 안은 험하여 처할 수 없고 밖은 그쳐서 나아갈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므로 혼몽(昏懜)의 뜻이 된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환선굴과 같은 깊고 험한 동굴 속에 들어가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있다. 인공적인 빛이 없던 시절 동굴이라는 공간은 한발 디디기도 어려운 암흑과 불안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석회 동굴은 물이 흘러가는 방향대로 길이 나 있기 때문에 수직 절벽이 많아 추위를 피해 동굴로 들어온 동물들이 어둠 속에서 절벽에 떨어져 죽은 흔적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동굴의 세계는 세상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처럼 불안하고, 혼몽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암흑과 혼돈의 공간은 인간에게 계몽의 의지를 심어주었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다녔고, 무지의 세계에서 지혜의 세계로 나아갔다. 혼돈의 세계에서 헤매던 지하수가 결국은 동굴을 탈출하여 파란 하늘과 녹음의 숲을 만나듯 인간은 배움을 통해 무지의 어둠을 걷어냈다. 산수 몽 괘의 효사들이 모두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무지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 배움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산 서원의 '몽천', 아이들을 가르치는 책인 <격몽요결(擊蒙要訣)>, <동몽선습(童蒙先習)> 등에 몽(蒙) 자가 붙은 이유는, '몽'괘가 지닌 '몽매한 이들을 계몽하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갈 바를 모르고 인생의 계획이 불확실하여 답답할 때 여행지를 추천한다면 환선굴을 추천한다. 환선굴의 석회암에 새겨진 유구한 물의 흔적 속에서 자신의 무지에 대해 반성하며 새로운 배움의 계획을 세워 인생의 빛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결국, 지하수는 환선굴의 어둠을 을 벗어나 계곡을 흐른다.